유럽 생태 공동체 (5)

 

앙리 망드라 (1927 - 2003) Henry Mendras

 

앙리 망드라의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 여행』(1979)은 상기한 두 편의 문헌과는 달리 예컨대 머레이 북친 Murray Bookchin이 권고한 사회생태주의의 실천을 중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망드라의 공동체는 무정부주의적인 소규모 공동체의 전통을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망드라는 20세기 초 러시아의 알렉산더 차야노프 Alexander Tschajanow의 농업 유토피아의 전통을 계승할 뿐 아니라, 프랑스의 고전 작가 프랑스와 라블레François Rabelais의 텔렘 사원의 유토피아 내지 표드르 크로포트킨 Pjotr Kropotkin의 무정부주의의 상호부조의 정신을 과감히 수용하고 있다.

 

게다가 망드라의 유토피아에는 68 학생운동세대들이 추구했던 문화 혁명의 방향성이 담겨 있다. 망드라는 20세기 후반에는 물질 추구의 삶이 종언을 고했음을 분명히 지적한다. 물질 추구의 삶은 자본주의가 극대화하려는 이윤 추구와 관련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더 이상 부(富)를 축적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행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이는 어떤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관한 질문이며, 대안의 삶을 모색하기 위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망드라의 “시골 유토피아의 공동체 Pays de l’Utopie Rustique” (PUR)는 놀랍게도 지상의 산업국가의 한복판, 즉 프랑스의 남서부 지방, 가스코뉴 Gascogne에 건립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자본주의 이용 가치를 전제로 한 것으로서, 잘못된 도시 계획을 부분적으로 전환시키게 할 뿐 아니라, 사회의 무조건적인 양적 성장에 제동을 가한다는 점에서 구체적 혁명성을 표방하고 있다.

 

망드라는 처음부터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즉 프랑스 전체의 사회 경제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독립적인 자치 공동체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망드라의 유토피아는 고전적 유토피아의 어떤 특성을 과감하게 파기하고 있다. 토마스 모어 이래로 고전적 유토피아는 유럽 사회와는 전혀 관계없는, 먼 곳의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가 프랑스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마치 제러드 윈스탠리 Gerrard Winstanley의 『자유의 법 The Law of Freedom』(1652)의 경우처럼 무엇보다도 유토피아의 구체적 실현을 중시한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망드라의 생태공동체는 일곱 가지의 특성을 내세운다. (1) 자본주의와 산업화로부터 일단 등을 돌리고, 농업을 발전시켜 자급자족한다. (부언하건대 지금 당장 완전한 자급자족을 실천하자는 것은 아니다.), (2) 자연 친화적인 삶 그리고 계몽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 인구 분산을 위해서 마을의 구조를 개선해 나간다. (3) 첨단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물론 이 경우 기술은 온건하고 부드럽게 활용되어야 한다.

 

 

(4)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가 강조하는 것은 교육 그리고 문화이다. 이를 위해서 구성원들이 고유한 일상적 예술적 삶을 자발적으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5) 공동체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키도록 노력한다. 공동체는 자치적으로 관리되고,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

 

(6) 전통적 가족제도는 파기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이 존속되면 가족 이기주의가 창궐하여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만남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반드시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배려, 존경심과 책임감 등이 작동되어야 한다.

 

(7) 자본주의의 이윤추구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공동으로 일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재화가 창출되어야 한다. 노동의 의무는 면제되고, 의무 노동 시간 역시 확정되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공장 하나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생산 중심의 사회는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동만을 행하는, 이른바 용역 중심의 공동체로 이행되어야 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대체로 농업에 종사하지만, 제각기 다양한 직업을 수행하며, 이질적 삶의 방식을 실천에 옮긴다.

 

 

망드라의 공동체는 과도기적으로 행해질 수 있는 생태주의 유토피아의 모델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일차적으로 사회적 시장 경제 체제에 의존하고 있다. 공동체는 자치권, 세금 납부 내지 국가의 보조 등에 이르기까지 국가 내지 지방 자치의 행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전의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돈을 필요로 하고, 동시에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나타나는 장점들을 도출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도와주는 용역의 일감은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 얼마든지 유효하게 활용될 수 있다.

 

그렇지만 망드라의 공동체의 취약점은 어떤 목표 지향성 내지 과정에 관한 어떤 실현가능한 로드맵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체는 과연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그리고 어떤 계기로 미래에 프랑스의 제반 정책으로부터 거리감을 표방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망드라는 명확한 대답을 마련해놓지 못하고 있다. 앙리 망드라의 시골 유토피아의 공동체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사람들이 국적을 포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국적을 포기함으로써 특정 국가에 대해 더 이상 정치적인 책임을 지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