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블로흐: 물질 개념의 역사 (2)

필자 (匹子) 2020. 1. 15. 10:44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문제점이 명징하게 표현되리라고 여겨집니다. 즉 철학 사상의 거대한 방식이 어째서 지금까지 물질 이론과는 거의 무관하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물질 이론은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로 철학의 역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습니다. 나의 글이 다루려고 하는 내용을 고찰하면, 우리는 아마도 다음의 사항이 분명하게 밝혀지리라고 확신합니다. 즉 지금까지 관념론자들은 나름대로 물질을 깊이 연구해 왔는데, 바로 이러한 관념론 속에 물질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수많은 유산이 은폐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적대적으로, 신화적으로, 계층적으로, 엑스타시 내지 판타지의 특징으로써, 그게 아니라면 어떤 다른 껍질로 포장한 채 말입니다.

 

많은 시스템이 대부분의 경우 그러하듯이, “은폐된 물질 이론”은 언제나 주어진 현실의 이데올로기라는 장애물에 의해서 차단되지만 그럼에도 은밀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법입니다. 헤겔로부터 마르크스로의 이전을 가능하게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은폐된 물질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헤겔 이전 이미 많은 사상가들이 변증법적인 물질 개념에 관해서 놀라운 증언을 남긴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변증법적인 물질의 개념은 아직도 완전히 해명되지 않았으며, 완전히 개방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개념을 –특히 어떤 변증법적인 의미에서- 개방시키지도, 확정시키지 못했습니다. 헤겔의 사상에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물질의 특성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가능성”의 개념입니다. 가능성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한 물질의 특성인데, 지금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기능적 변모를 거듭해 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물질 개념을 규명하는 과업은 아직도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고찰할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규정하려던 물질의 개념은 기껏해야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는 미사여구의 사상 내지는 기묘한 고유성을 지닌 무엇으로 편입되었으며, 나중에는 급기야는 세인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개념으로 취급되고 말았습니다.

 

물질은 몇몇 학자들에게 이를테면 프란츠 바더Franz Baader의 경우에는 개연성이라고는 전혀 지니지 않은 무엇으로 이해되었으며, 이로 인해서 물질은 그야말로 불확실하고 흐릿한 존재로 취급되지 못했습니다. 설령 누군가 물질에 관한 기발하고 위대한 생각을 추적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다시 말해서 레닌의 표현대로 “영특한 물질 이론”을 도출해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종국에 이르러 주변적인 무엇이며, 토대 없는 무엇으로 취급당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물질 개념은 오늘날 탈신화적인 암시를 도출해낼 수 있는 지평의 관점에서 언급되는 실정입니다. 오로지 오이겐 뒤링Eugen Dühring만이 헤겔 그리고 셸링의 철학적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헤겔과 셸링의 철학적 관점을 한마디로 “어리석은 물질 이론”이라고 매도한 뒤링의 이러한 태도 속에는 그야말로 편협하기 이를 데 없는 교만함이 숨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엥겔스는 『반 뒤링론Anti- Dühring』(1877)의 「두 번째 서문」 (1885)에서 물질 이론의 방향을 설정하게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물질의 역사적 의미를 인정하고 이를 존중하는 일보다는, 카를 포크트가 그러했듯이 사상을 불신하는 천박한 태도로 물질을 기껏해야 고대의 자연 철학의 내용으로 매도하는 것은 훨씬 수월한 일이다. (..) 고대의 자연 철학에 대한 의식적 변증법적 자연과학의 관계는 유토피아에 대한 현대의 공산주의의 관계를 방불케 한다.”

 

엥겔스는 “어떤 의식적- 변증법적 자연과학”을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가 선구적 자세를 무엇보다도 발전 이론과 관련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엥겔스는 선구적 입장 자체가 아직도 보상받지 못한 채 그대로 있으며, 과거의 사상적 유산이 완전히 수용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엥겔스는 앞의 인용문에서 또 다른 모티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순수 사회과학의 발전 노선에 관한 것으로서, 유토피아주의자로부터 현대의 공산주의로 이전되는 진보의 과정은 의미심장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오로지 가상적 꿈의 상만 도외시한다면, 공산주의의 선구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무산계급을 흐릿하게 고찰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언급되는 무산계급은 자신의 혁명적 역할 그리고 혁명을 완성시키는 주체라는 사실을 아직 의식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반해서 낭만적 자연철학은 스스로 오로지 낭만적으로 머물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발전 이론을 포함한) 자연과학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겉보기에만 현대적 자연과학과 동일한 노선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찬란한 미래를 그야말로 흐릿하게 예견했을 뿐입니다.

 

낭만적 자연철학은 오히려 현대의 자연과학과는 다른 무엇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질적인 시대를 시대착오적으로 달리 해석하면서, “시적 감각적 광채”를 중시하면서 물질을 비아냥거렸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당시에는 질적인 단계가 공간으로부터 시간으로 이전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세계를 원구로 이루어진 접시로 상상했다면, 헤겔은 시간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으로서의 세계를 의식했던 것입니다.

 

고대인들에게 재구성된 바 있는 오래된 자연의 상은 상기한 방식으로 물질 이론에 연결되고 계승된 바 있습니다. 자연에 관한 이러한 마력적 상은 근대에 이르러 계몽된 기계주의의 사고 형태에 의해서 반박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은 자연의 파편적인 특성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우리가 단순히 이전과 이후의 시기를 비교함으로써 명징한 진보의 특징으로 밝혀낼 수 없는, 그러한 뒤섞인 영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변증법적 물질 이론은 철학적 역사학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 사이의 관점을 대담하게 중개하려는 놀라운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그것은 (질적 변증법을 내세우는) 헤겔의 사상 그리고 세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해명하려는 홉스의 사상 사이를 과감하게 연결시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엥겔스가 언급하는 변증법적 물질 이론 속에는 때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데모크리토스를 뛰어넘으며, 때로는 데모크리토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서로 상이한 사고의 영역을 혼합시킨 것으로서, 자연의 다양한 영역 그리고 철학의 역사 영역을 종합적으로 지양시킨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이전에는 거의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얼핏 보기에 우리는 헤겔의 이론으로부터 도출해낸 것이 오로지 변증법에 불과하고, 범 논리학 속에서 생동하는 자연의 실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변증법적 물질 이론에서 언급하는 물질의 개념이 가령 헤겔 사상의 몸통을 이루는 물질의 개념과 내용상 어긋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데모크리토스가 언급하는 아톰의 개념과는 질적으로 현격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게다가 변증법적 물질 이론이 뜻하는 물질의 개념은 조르다노 브루노의 “끓어오르는 실체”와는 상당히 다른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연 설명하건대 헤겔은 어떤 구체적 과정으로서의 세계, 즉 세계의 현존재를 해명할 때 이념을 언급했는데, 이 이념의 특성을 활용한 것이 다름 아니라 브루노의 발효하고 부글거리는 첫 번째 물질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나타난 물질의 개념은 오늘날 여전히 아직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 개념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관해서 깊이 파고들면 그럴수록- 내적으로 도처의 미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물질 자체와 마찬가지로 다양하게 출현할 수 있는 더 나은 미래의 삶을 고려해보십시오, (예컨대 헤겔이 사고한 “이념”의 개념 속에는 물질의 특성이 감추어져 있는데, 이는 수많은 제한이나 전제조건에 의해 포장되어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개념의 심층부에서 삭막하고 편협한 수학적 물질 이론의 무미건조한 특성을 떼 내어 파기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엥겔스는 그의 『반- 뒤링론』의 비록 간략하지만, 매우 중요한 단락에서 관념론이 수행해온 과도기의 시기를 첨가하였습니다. 이는 과히 이념에 관한 헤겔의 사고를 뛰어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고대 철학은 한마디로 말해서 자연을 풍요롭게 다룬, 근원적인 물질 이론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물질에 관한 사고를 무엇보다도 순수하게 개진하고 그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 고대의 물질 이론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관념론에 의해 비판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철학이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서 관념론 역시도 더 이상 유효성을 고수할 수 없게 되었고, 현대의 물질 이론에 의해 비판당하고 말았다. 현대의 물질 이론은 그야말로 부정의 부정으로 이해되지만, 결코 고대의 사상에 의해 단순히 도입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의 물질 이론은 지금까지 보존된 물질의 토대에다가 다음의 사항을 첨가시키고 있다. 즉 2000년 동안 발전되어온 철학과 자연과학 뿐 아니라, 2000년의 역사 그 자체에서 유래하는 모든 사상적 자양을 첨가시키고 있다.”

 

2000년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부정의 부정에다 객관적 가능성을 부여하는 물질에 관해 어떤 놀라운 의미를 찾으려고 한 게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