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블로흐: 물질 개념의 역사 (1)

필자 (匹子) 2020. 1. 15. 10:44

물질을 구명하려는 오랜 (학문적) 과정은 끝난 것 같지만,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수많은 난제가 여전히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기계주의의 사고는 아직도 오랫동안 더 나은 무엇과 교체되지 않고 있습니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역사에 나타난 모든 사건은 내적으로 기계주의의 운동을 완전히 멈추도록 작용한다. (...) 이를 위한 첫 번째 과업은, 학문의 첫 번째 과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일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엥겔스는 루드비히 뷔히너, 그리고 오이겐 뒤링이라든가, 이러한 유형의 자유사상가의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경박한 사고에 대해 단호한 자세로 어떤 경멸감을 표명하였습니다. 젊은 마르크스 역시 물질 이론 der Materialismus”이라는 단어로부터 스스로 거리감을 취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단어는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오로지 객관적이고 기계주의의 측면에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역사적 변증법적 물질 이론의 새로움만큼 객관적 기계주의와 완전히 구분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경제 철학 수고에서 기계주의의 물질 이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적어도 1844년 당시에는- 이러한 기계주의의 객관적 물질 이론 외에는 다른 견해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실제 현실에서 적용되어온 자연주의 혹은 인본주의가 이데아 이론 뿐 아니라, 물질 이론으로부터 전적으로 구분되며, 동시에 두 가지 모두 근본적으로 진리를 부정한다는 점을 간파하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르크스는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어떤 새로운 황금, 구체적으로 말해서 헤겔의 철학에서 언급되는, 이른바 변증법이라는 새로운 황금을 도출해내어 물질 이론의 찬란한 명예의 깃발과 연결시켰으며, -하나의 유일한 철학으로서- 세계 역사의 행위로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증법적 물질은 아직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으며, 정확한 의미로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누군가 이 개념을 사악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오늘날 전혀 필요하지 않는 무엇으로 매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로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신의 세련된 모습을 부각시키면서, 앞에서 언급한 마르크스의 문장을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변증법뿐 아니라, 물질 이론마저 쓸모없는 것으로 파기하기 위해서 진력하였습니다. 이로써 들어서게 된 공산주의의 파당주의는 그야말로 단순한 토대만을 부각시킴으로써 변증법적 물질 이론의 사상적 긴장감을 현저하게 약화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채택한 것은 변증법적 물질 이론 대신에, 오로지 기계적 물질이론,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변증법적인 무엇을 그저 단순한 표시 내지는 하나의 치장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했으며, 지금까지 사물의 근원으로 이해되어온 물질을 -마치 야곱 몰레쇼가 그러했듯이- 어떤 불변하는 정태적인 무엇이라는 수식어로 매도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기계주의자들은 과거에 활동한 사상가들 가운데 세계를 오로지 원자로 이루어졌다고 파악하는 자들만을 언급했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데모크리토스라든가, 라메트리La Mettrie 내지 돌바크d’Holbach 등의 일반적 발언on-dit”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유형의 도식주의는 (물질을 하나의 틀 내지 고착된 무엇으로 고찰하고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인데) 봉건 사회의 토마스 아퀴나스, 혹은 불명료한 초기 시민 사회의 브루노에 유래하는 것입니다. 토마스는 물질을 날카로운 시각에서 세부적으로 구분하였으며, 브루노는 우주의 관점에서 물질을 역동적으로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봉건 시대는 사라지고 불명료한 초기 시민 사회 역시 사라진 뒤에 물질에 대한 관심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