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블로흐: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2)

필자 (匹子) 2017. 8. 5. 11:14

(앞에서 계속됩니다.)

 

뒤이어 물질에 대한 관심사를 강하게 드러낸 학자는 알렉산드로스 아프로디시아스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리스토텔레스 문헌 해석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는데, 이 영향은 중세까지 이어졌습니다. 그의 연구는 아비켄나, 아비케브론 그리고 아베로에스의 연구를 낳게 됩니다. 우리는 중세의 철학 강의에서 이를 다시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일단 우리는 소재와 형태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기억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좌파 사상을 연구하는 데 핵심적 사항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아비켄나Avicenna는 타지키스탄, 혹은 페르시아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는 위대한 철학자인데, 어디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아라비아인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부호로 지역에서 활동한 아비켄나에게 소재와 형태는 매우 근친해 있습니다.

 

그의 철학에서 이른바 산출하는 자연natura naturans의 첫 번째 흔적이 나타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은 자연을 스스로 잉태해내는데, 여기서 기여하는 게 물질이라고 합니다. 물질은 스스로의 존재를 품에 안다가 밖으로 출산하는 자궁처럼 기능한다고 합니다. 이때 작용하는 것은 가능성 뿐 아니라, 세력입니다. 물질이라는 자궁에서 자연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지요.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아비케브론Avicebron의 경우는 더욱 놀랍습니다. 그는 살로몬 이븐 가비롤Salomon ibn Gabirol이라는 본명 때문에 오랫동안 아라비아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아비케브론은 물질을 심지어 천사의 존재 내지 신의 왕관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은 아비케브론에 의하면 자신의 겸허한 마음으로 물질의 존재로부터 이탈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세계는 아비케브론에 의하면 그 자체 우주적 물질materia universalis로서 존재의 일원적인 토대라고 합니다.

 

12세기의 코르도바 출신의 아라비아 철학자, 아베로에스의 경우 산출하는 자연의 개념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산출하는 자연은 의미론적으로 부호화된 물질과 동일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파우스트지령의 노래에서 산출하는 자연과 산출되는 자연이라는 두 개념을 분명하게 인지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흐름에서, 행위의 폭풍에서/ 오르락내리락 골고루 관장하고/ 이리저리 누비며 옷을 짜낸다!/ (...) 하여 나는 시간이라는 소란한 베틀에 앉아/ 신의 생동하는 옷을 짜고 있다.” 이것은 지령 (地霊)으로서 모든 것을 창조하는 자연을 가리킵니다. “산출하는 자연잠재성 속의 세력potentia in der Potentialität을 가리키지요. 출산하는 자연이 창조하는 것은 이 자체가 창조되는 자연으로서의 산출되는 자연natura naturata을 가리킵니다. 이에 비하면 신은 외부로부터 출현하지 않습니다. 신적 존재는 물질 내부에 자리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은 물질의 움직임 속에 계시면서 물질의 형체를 창조한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사항이야 말로 사물을 창조하고 출산하는 자연의 본성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베로에스에게서 모든 것을 창조하는 권한을 지닌 막강한 물질의 근원적 특성을 접할 수 있습니다. 아베로에스는 어떤 초월적 창조자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다고 내세웁니다.

 

여러분들께서 짐작하겠지만, 기독교를 신봉하는 서구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에서 나타난 아베로에스의 이러한 견해를 활발하게 수용하지도 않았으며, 이로써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베로에스의 사상은 이단 사상 가운데에서 가장 사악하고 끔찍할 정도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베로에스는 신의 존재에 관한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물음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에서는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존재όμοουσια인가, 아니면 유사한 존재όμοιουσια인가? 라는 하찮은 문제로 논란을 벌였습니다.

 

그밖에 기도를 마치고 성호를 그을 때 두 손가락을 사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세 손가락을 사용해야 하는가? 등과 같은 지엽적인 물음으로 이단인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서구 기독교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하찮은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화형대에서 불에 타죽어야 했습니다. 이단으로 간주되는 이러한 유형의 행동은 13세기 남부 프랑스에서 아말리 종파를 이끌었던 베나 출신의 아말릭Amalrich 의 사상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말릭의 사상을 염두에 두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지극히 어리석게도 신이 첫 번째 물질이라고 주장하였다.Stultissime posuit Deum esse materiam primam.” 그렇지만 아말릭의 주장은 우리에게는 그렇게 어리석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