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블로흐: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1)

필자 (匹子) 2017. 8. 5. 11:13

다음의 글은 블로흐의 책 고대 철학, 라이프치히 철학사 강의에 실려 있다.

Etnst Bloch: Leipziger Vorlesungen zur Geschichte der Philosophie Bd. 1, Frankfurt a. M. 1985, S. 274 -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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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개념 가운데 소재 그리고 형태 사이의 관련성이 이후의 시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 아비켄나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좌파에서 이 문제에 관해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재와 형태 사이의 관련성 그리고 이에 관한 영향력에 관해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사상가들에게서 이를 분명하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이를테면 고양이가 어디 있는가?”와 같은 그림 찾기를 연상시킬 정도입니다. 누군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세의 영향력을 한 번 접한 자는 아미 이전에 한 번도 접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그것을 더 이상 파악하지 못했음을 감지할 테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사상가들은 소재 그리고 형태의 상관관계를 아주 정확하게 발전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소재는 어느 정도의 높이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재의 개념 속에는 어떤 이중적인 경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재는 한편으로는 가급적이면 미약하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입니다. 원래 그것은 우리에게 거의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소재가 어원상 플라톤이 언급한 바 있는 -존재μή ν의 개념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분명히 눈에 뜨입니다. 게다가 소재는 그다지 비우호적인 시각에 의거한 것으로서 차단시키는 무엇, 흩어진 무엇 등과 같은 이른바 다양성의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개념이었습니다. 소재는 분화될 수 없는 원칙principium individuationis”에 따르지만, 역설적으로 분할의 원칙에 종속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떡갈나무는 단 하나로 존재하지만, 수천 개 수백만 개로 이루어져 있음을 생각해보세요. 하나의 이념, 하나의 형태는 구분될 수 없지만, 오로지 소재만이 분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잠재적 역동적 존재 δυνάμει ν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념은 다양한 광채로 우리를 현혹시킵니다. 왜냐하면 잠재적 역동성δύναμις이라는 개념 속에는 독일어로 ,“가능성Möglichkeit”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세력 내지 능력Vermögen”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잠재적 역동성이라는 외래어에서 다만 세력을 도출해내어 이를 활용했습니다. 예컨대 역동적인”, “동력선등과 같은 단어들은 능동적 의미에서 에너지를 지칭하는 잠재적 역동성δύναμις에서 유래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어에서는 어떤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의미가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독일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는 역동적인 인간을 말할 때 느슨하고 무언가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참을성을 지닌 사람으로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와 반대이지요. 그렇지만 잠재적 역동성은 그리스어에 의하면 느슨하면서도 가능한 무엇의 의미를 지니며, 왁스와 같으며 동시에 에너지를 지닌 무엇으로 이해됩니다.

 

후기 그리스의 철학 내지 헬레니즘 사상은 더욱더 인간의 내면과 영혼을 강조하는 경향을 표방하였는데, 이와 반대되는 사상적 조류가 바로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추구하는 학자들이었습니다. 자연을 연구하는 학자도 많지 않았으며, 그들의 문헌 또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사람들은 물질 내부에 자리하는 세력에 집중적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학파에 속하던 자연 연구가들이었으며, “잠재적 역동성가운데 능동적 특성에 해당하는 세력의 문제에 골몰했습니다. 형태에 자연의 구체적 의미를 부여하고 물질 개념을 이러한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승화시킨 사람은 다름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친구이자 그의 사상을 계승한 테오프라스토스였습니다. 특히 테오프라스토스가 연구하여 제시한 인간의 성격은 특히 몰리에르의 극작품들, 특히 희극 작품에서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바 있습니다.

 

잠재적 역동성 가운데 세력의 측면을 강조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세 번째 후계자인 스트라톤Straton에게서 나타납니다. 특히 스트라톤은 세인들로부터 물리학자φυσικός라고 명명되곤 하였습니다. 여기서 소재와 형태의 구분은 완전히 파기되고 있습니다. 스트라톤에 의하면 형태를 지니지 않은 소재는 거의 없으며, 소재를 지니지 않은 형태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언급한 천사의 존재를 뜻하는 이른바 순수한 형태 또한 포함됩니다. 스트라톤은 형태를 육체의 영역으로 이해하며, 소재는 형태 속에서 조직화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모든 형태 속에서 어떤 우주적인 토대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재는 결코 중단되는 법이 없으며, 소재로 착색되지 않은 정신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재는 부호화된 물질materia signata이며, 정신은 바로 그 속에서 각인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트라톤이 영혼이 없으며, 의식이 없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부정하고 의식을 부정한 사람은 먼 훗날의 무신론자 루드비히 뷔히너Ludwig Büchner 그리고 야콥 몰레쇼Jacob Moleschott 등이었습니다. 아니, 정신적인 것 역시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트라톤에 의하면 소재와 결착되어 있습니다. 정신적인 것은 하나의 보다 높은 조직의 형태 내지 소재의 조직화된 현상으로 이해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세상에는 소재를 토대로 하지 않거나, 소재라는 실체 내지 내용을 지니지 않은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자인 스트라톤은 이렇게 주장하였지만, 당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경향적으로 초월에 관하여 커다란 관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범신론이라든가 스토아 사상가들 가운데 유물론을 표방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말입니다. 스토아 사상가에게서 물질이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자연적 물질과 거리감을 드러내면서 정신의 특성을 강하게 드러낸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