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헤름린의 작품은 그의 삶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유대인의 대부호의 집에서 태어난 그는 (본명은 루돌프 레더였다) 1931년에 공산당 청년 동맹에 가담하였다. 그후 1936년 에스파냐 내전에 참가했으며,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1947년 동독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초기 시집은 자신이 겪어온 사회적 궤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파시즘에 대한 투쟁, 전후 시대, 쟁전 시대 그리고 1953년 이후의 경직된 사회주의 등이 그의 작품의 배후를 장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헤름린의 문학적 자양은 프랑스 문학에서 발견된다. 실제로 헤름린은 말라르메, 엘뤼아르, 아폴리네르 등의 문학 작품에서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50년대와 60년대에 그는 동서독에서 비판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서독 사람들은 헤름린의 시에 나타난 부자연스러움 내지 장식 투의 묘사를 비아냥거린 반면에, 동독 사람들은 헤름린의 시가 퇴폐적이고, 형식주의적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동독 평론가들의 비판은 오래 지속되어 60년대 말까지 이어지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반응 때문에 슈테판 헤름린은 60년대 이후에는 거의 시를 쓰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헤름린의 시는 게오르크 라센 (G. Laschen)의 표현에 의하면 “특정 메타퍼 그리고 상을 세밀히 고르고, 보다 멋진 표현을 찾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분명한 언어를 거부”하는 경향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름린은 50년대에 유럽 예술적 사조에 혁신을 가져다준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게다가 소설, 에세이, 번역 등의 작업으로 헤름린의 작품은 언제나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헤름린은 30년대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시는 내용상 당면한 현실적 사건과 깊이 관련된 것들인데, 불법 팸플릿으로 사용될 정도로 정치적 선동에 기여하였다. 헤름린은 이 작품들을 자신의 이후 시집에서 배제하였고, 많은 작품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1940년부터 헤름린은 프랑스 그리고 스위스 등지에 머물면서, 시를 썼다. 이로써 1945년에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대도시에 관한 12편의 담시 (Zwölfballaden von den großen Städten)", 1946년 독일에서 "공포의 거리 (Die Strassen der Furcht)" 그리고 이듬해에 "22편의 담시들 (Zweiundzwanzig Balladen)"을 발표하였다.
시집에서 다루어진 것은 유럽의 대도시에 관한 것들이었다. 헤름린의 “담시 (Ballade)”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장르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서사적 파노라마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헤름린은 상기한 시집에서 주로 게오르크 하임 (G. Heym)의 대도시 시편들을 표현주의적으로 답습한 것처럼 보인다. 묵시록을 방불케 하는 장면들은 찬가의 부르짖음 등이 시적 주류를 이루고 있다.
헤름린의 시행 (詩行)은 비교적 길며, 문장, 시적 운율, 각운 그리고 연 등의 구조에 의해 질서 잡혀 있다. “우리의 이마는 화살에 꽂힌 채 피를 흘리고 있고/ 거기서 유령들은 리벳과 망치질하며 마구 웃고 있다/ 어느 눈 하나는 비스듬히 우리를 노려보고, 번쩍이는/ 빛은 어느 가스 가득 찬 갱로에서 썩어가고 있다.”
헤름린이 묘사하는 탈-인간적인 도시들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공간과 거의 일치한다. 서정적 자아는 우울한 고독의 상황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언제나 반복해서 파시즘과 투쟁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그는 아름다움의 향유 그리고 사적 행복 등에 대한 동경을 하나의 위험으로 간주한다. 서정적 자아는 이러한 감정이 시민적 개인주의에서 비롯한 것으로서 어쩌면 퇴보를 가져다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치명적인 동경으로부터/ 고유한 명령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를 일깨운다.”
1942년에 집필된 시 「사모트라케의 니케 (Nike von Samothrake)」는 이러한 모순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루브르의 계단에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는 고전적 아름다움의 예술의 상징적 상을 제공하며, 사회주의는 조만간 도래할 시대에서 인간성의 이념을 실현시키고 있다. “그래, 바로 이것이야! ... 우리의 심층부는 한 쌍의/ 날개 속에서 한없이 펼쳐질 테지// 거대한 비약의 계단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탄생하고 있네./ 여신은 돌진한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되리라고.”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헤름린의 시에는 파시즘 희생자에 대한 기억, 그리고 승리에 대한 확신 등이 냉정히 묘사되고 있다. 1945년 이후에 젊은이들이 품었던 역사적 가능성은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헤름린은 이에 대한 실망을 「헛된 여름 이후의 담시」 그리고 「기적의 시간」에서 정확히 지적한다. “기적의 시간은 사라졌다. 세월은 헛되이 흘렀다.”
그럼에도 헤름린은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그들을 더 나은 미래를 가리키는 사람들이라고 칭송하였다. 말하자면 망각과 기억은 하나의 평행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도래한 무엇의 가장 달콤한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다./ 죽은 자들이 들려주는 오보에 음은 내 피를 황홀하게 만든다/ 미래의 하얀 도시여! 살해당한/ 그대의 윤무여! 보호받을 수 있도록 나를 맞아다오!”
헤름린은 전통적 시 기법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그는 극한적으로 파괴된 현실 공간을 형상화하는 데 전통적 기법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헤름린의 전통적인 언어 기법이 도래하는 시대의 요청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많은 평론가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한다. 냉전 시대, 즉 50년대에 헤름린은 문학이 당파성을 표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투쟁이 극렬하게 첨예화되는 시대에 문학 작품은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하나는 결국 사멸될 수밖에 없는 무엇에 동조하면서, 자신을 파는 행위이며, 다른 하나는 진보의 측면에서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축소화시키는 행위이다.”
1952년에 간행된 시집, "비둘기의 비행 (Der Flug der Taube)"은 당시의 문화 정책이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 시집에서 헤름린은 당국에서 요구하는, 이른바 서정시의 실질적 사용 가능성 그리고 현실을 민중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개인적 문제는 사회주의의 주제로 인하여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다. "비둘기의 비행"에서 시인은 소련, 10월 혁명, 세계대전 당시에 레닌그라드에서의 저항 운동, 1952년 비인의 세계 평화 축제 등을 찬양하고 있다. 많은 시들이 빌헬름 피크 그리고 스탈린을 찬양하고 있다. 이러한 찬양의 시들은 1956년에 간행된 작품 모음집, "작품들 (Dichtungen)"에는 실리지 않았다.
그후 헤름린은 간간이 시를 발표했다. 가령 「새들과 실험 (Die Vögel und der Test)」에서 헤름린은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을 비판하였다. 1958년 헤름린은 자신의 마지막 시를 발표한다. 그것은 「시인의 죽음. 요한네스 베허를 기억하며」라는 시이다. 여기서 시인은 베혀의 죽음 뿐 아니라, 자신의 명성에 대해서 성찰하고 있다.
여기서 헤름린은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송시, 표현 형식 등을 동원하여, 정치적인 영향력이 완전히 배제된 시인의 입장을 은근하게 담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시작품을 통해서 동시대인들에게 정치적 예술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시인은 “더 이상 여기도 거기도 없으며/ 쓰라린 갈등”을 달랠 수 있을 뿐이다. 시인의 작업은 후세의 평가를 기다리는 대신에, 현 사회에서 진부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것은 사회적 진보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헤름린의 시문학은 70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평가되었다. 70년에 이르러서야 헤름린 연구는 활발하게 진척되었다. 서독에서는 에르틀 (Ertl), 플로레스 (Flores), 동독에서는 바이스바흐 (Weisbach), 실비아 슐렌슈테트 (Schlenstedt) 등이 연구가들이다. 헤름린 문학은 부분적으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으나, 과도기의 사회를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손색이 없으며, 그의 문학 외적 노력 역시 놀라운 것이었다. 헤름린은 서구 사회, 특히 프랑스의 전위 문학을 동독에 소개했으며, 비어만, 브라운 등과 같은 젊은 시인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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