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헤름린의 산문 "저녁노을"은 1979년에 발표되었다. 작가는 60년대에 거의 시를 쓰지 않고, 주로 산문 등을 썼다. 가령 "소설집 (Erzählungen)", 횔덜린을 소재로 한 방송극,「스카르다넬리 (Scardanelli)」 등이 그것들이다. 헤름린은 "저녁노을" 외에도 「카스베르크」 (1965), 「코르네리우스의 다리」 (1968), 「나의 평화」 (1975) 등을 스케치한 바 있다. "저녁노을"은 참으로 아름다운 산문집이다. 이 책은 총 27개의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시적 제스처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헤름린의 유년 시절, 30년대 40년대 정치적 사회적 투쟁, 젊은 시절의 꿈과 실망 그리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젊은이의 희망 등이 차례로 담겨져 있다. 헤름린의 책에는 로베르트 발저 (R. Walser)의 다음과 같은 말을 모토로 씌어져 있다. “사람들은 저녁노을 속에서 자기의 고향으로 향하는 길을 바라보았다.”
이 작품의 무대는 30년대 베를린의 거대한 집이다. 헤름린은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히틀러 집권 이후에 망명을 떠난 바 있다. 맨 처음 서언과 같은 장에서 헤름린은 어릴 때 체험했던 전원적인 풍경을 시적으로 묘사한다. 마지막 대목에는 서술자가 고독하게 방랑하던, 평화롭고도 고대적인 알프스 산의 정경이 첨가되어 있다. 헤름린은 작센하우젠의 어느 강제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던 아버지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나중에 평론가, 칼 코리노는 이 내용이 거짓이라고 주장하였다. 헤름린의 아버지, 다비드 레더는 영국에서 의 사의 오진 (誤診)으로 인해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나아가 헤름린은 자신의 형님에 관해서도 묘사한다. 그의 형님은 영국 공군의 비행기 조종사로서 전쟁에 참전하여 장렬히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코리노에 의하면 이것도 거짓이라고 한다. 실제로 헤름린의 형은 캐나다에서 회계사의 연수를 받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자신이 공산주의에 경도하게 된 과정, 베를린 거리의 실업자들을 대하면서 감동 깊게 읽었던 공산주의 선언, 16세의 나이에 공산주의 청년 동맹에 가담하게 된 경위 등이 시적 언어로 내정하게 묘사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거리에서 직접 당에 가입하곤 했다. 어떠한 담보 내지 조건도 없었고, 어떠한 후보자도 없었다. 동지가 된 사람에게 어떠한 꽃다발도 안겨주지 않았다.” 국가 사회주의가 권력을 쥐게 되자, 화자는 행여나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까 하고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번복의 행위를 일종의 자기 부정으로 간주하였다.
헤름린의 정치적 결단은 처음부터 양친의 세계와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양친의 세계는 어린 헤름린에게 견고한 풍요로움, 편안한 느낌 그리고 소속감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특히 음악과 문학의 영역에 있어서 무제한의 발전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내 앞에는 언제나 우유와 빵이 주어졌으며, 나의 침대에는 언제나 바이올린 그리고 책 한 권이 놓여져 있었다.” 어린 헤름린의 세계 한 복판에는 아버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헤름린의 아버지, 다비드 레더는 섬세한 예술품 수집가였고, 음악 애호가로서 피아노 없이는 살 수 없었으며, 칸딘스키 등과 같은 예술가들과 교제하였다고 한다.
화자는 30년대의 정치적인 분위기를 은근히 묘사하고 있다. 당시 국가 사회주의자들은 히틀러의 권력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전쟁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강자 (強者)이기를 원하는 욕구는 결코 길들여질 수 없었다.” 헤름린은 외부의 우편향주의의 분위기 그리고 내부의 사회 비판적인 분위기를 대비시키고 있다. 당시에 그의 마음을 끌어당겼던 것은 마르크스주의 문학 작품들이었다. 헤름린의 눈에는 마르크주의야말로 개인과 사회의 외부적 형태에 하나의 틀을 제공하는 보편적인 사상으로 비쳤던 것이다.
작품의 핵심적 내용은 “압박 (Bedrängnis)”이라고 불리는 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화자는 “맑스와 레닌의 이론은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서서히 핵심적 부분으로 판명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이론의 영역에서는 어떤 합당한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다. 헤름린은 나중에, 즉 5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경악에 사로잡히면서 비밀스러운 무엇을 발견한다. 즉 수십 년간에 걸쳐 헤름린은 "공산당 선언"의 핵심적 문장을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을 “모든 개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모든 개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이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에 대한 전제 조건”이라는 것이다. 루소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보편적 자발성 volonte générale”이 “모든 개인의 자발성”이 아니라, 이와 반대로 모든 개인의 자발성이 전체의 보편적 자발성에 대한 전제 조건이다.
헤름린의 "저녁노을"은 비가조로 서술된 평화로운 책이다. 그러나 감상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작가는 구동독 사회 내에서 사회주의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사회가 도달한 무엇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사회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개인이 철저히 배제되고 말았다는 데 대한 아쉬움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입장은 비단 헤름린에게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예컨대 볼프의 "유년의 틀" (1976) 그리고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곳" (1979)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은 문체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스 마이어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이 산문의 순결함은 너무나 생생하다. 우리는 시인 귄터 아이히가 죽은 뒤에 어디서도 이를 발견할 수 없지 않는가? (...)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감동에 사로잡힐 수 있었다.” 이 책은 박소은씨에 의해 번역되어 송두율 교수의 추천사와 함께 한국에서 출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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