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브리기테 라이만의 '프란치스카 링커한트'

필자 (匹子) 2021. 5. 8. 11:03

동독 출신의 작가, 브리기테 라이만 (Brigitte Reimann, 1933 - 1973)의 장편 소설 ?프란치스카 링커한트 (Franziska Linkerhand)?는 1974년 유고작으로 발표되었다. 그미는 불치의 암으로 인하여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1963년부터 라이만은 방대한 장편 소설에 몰두하였다. 그 전에 그미는 비교적 짤막한 소설 그리고 방송극 등을 발표했다. 가령 1960년에 발표된 「자백 (Geständnis)」, 1961년에 발표된 ?일상의 도달 (Ankunft im Alltag)? 등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동베를린의 “새로운 삶”- 출판사 사장인 발터 레베렌츠는 소설 유고를 -몇몇 대목을 조금 신중하게 삭제한 다음에- 그것을 원문 그대로 간행하였다.

 

 

 

 

 

주인공, 프란치스카 링커한트는 여류 건축가로서 적극적이고, 열성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소설적 화자 역시 “그미”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건의 진행 과정은 그미에 의해 관찰되고 있다. 소설 속에서 프란치스카는 자신이 주관적으로 높게 설정한 이상 그리고 머뭇거리는 현실의 상황 사이에서 내적인 갈등을 느낀다. 이는 자전적 요소를 지닌다. (라이만 역시 자신의 작업 역시 다른 문제로 자주 차단당한다. 브리기테 라이만은 1963년부터 동독 작가 동맹의 수석 위원으로 일해 왔다.) 프란치스카는 동독의 소도시 노이슈타트로 이주한다.

 

노이슈타트는 현재는 시골과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조만간 미래의 산업적 중심지가 되리라고 한다. 따라서 도시의 시설 계획 담당자들은 도시의 중심부가 새롭게 건축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작업에 주인공 프란치스카가 참여하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건축학 전공자 레거 밑에서 건축 설계 수업을 체계적으로 받았다. 레거는 동독 내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가로 손꼽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프란치스카는 처음부터 어떤 혁신적이고 인간적이며 아울러 미적인 건축에 대한 꿈을 품고 있었으며, 이를 실제 작업에 활용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의 작업은 도시 계획 담당 부서의 할당액 숫자에 의해서 느릿느릿 진척된다. 도시 계획 부서 내의 여러 작업은 건축 기사인 “샤프호이틀라인”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샤프호이틀라인은 마치 컴퓨터와 같은 빛을 발하고 있다.” 프란치스카는 그의 관료주의적인 경직성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 “도시의 건설은 아직 조직 내지 계획 단계에 머물고 있다 (...) 내 생각에는 열심히 작업을 끝내는 게 가장 훌륭한 해결책이다 (...) 이러한 우둔함이야말로 완성된 우둔함일 것이다.” 프란치스카는 몹시 흥분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도시 중심부 설계도가 샤프호이틀라인의 상상력이 배제된 건축적 입장 때문에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카의 눈에 그는 “현실주의자에게서 발견되는 이른바 저주스러운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으로 비친다. 이를테면 샤프호이틀라인은 당에 의해서 결정된 주어진 제반 규정에 언제나 순종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새로운 무엇에 대한 열광, 창조적 열정 그리고 유연한 융통성은 조금도 발견되지 않는다. 샤프호이틀라인은 계획 경제 하에서 거대하게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기능하는 부품 하나에 불과하다. 물론 샤프호이틀라인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기계적 인간은 아니다. 그는 프란치스카의 열정적 주장에 자극을 받고, 자신의 입장에 관해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중도적 무사안일주의에 관해 서서히 의심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제각기 지닌 질적 가치를 상호 높이 평가한다.

 

라이만의 소설은 노동의 문제 뿐 아니라, 아울러 복잡한 연애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 프란치스카는 볼프강 트로야노비치를 사랑한다. 그는 소설 속에서 “벤”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볼프강은 건설 현장의 단순 노동자이다. 그는 파란만장한 과거사를 지니고 있다. 그는 베를린 출신의 노동자로서 50년대에 동독의 재건에 열광하였고, FDJ (자유 청년 동맹)의 열성적 당원이었으며, 저널리스트 내지는 대학교 조교로 활동적으로 일한 바 있다. 볼프강은 서독으로 건너간 친구와의 공동 작업으로 인하여 당국의 의심을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4년 구금 형에 처해졌다. 볼프강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열광이라든가 꿈을 견지하지 않은 채 현실을 날카롭게 관찰한다.

 

우연히 프란치스카는 볼프강을 만나, 토론하곤 한다. 프란치스카는 냉정하게 모든 것을 바라보는 “벤”을 자극한다. 볼프강은 현재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현실로부터 거리감을 취하지만, 프란치스카는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해서 열정적으로 토론하면서, 매사에 “쿨”한 태도를 변화시키려고 애쓴다. 그러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성격상으로는 전혀 맞지 않지만,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은 공동으로 상처 입게 된 그들의 희망을 매개로 발전되어 나간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의 이질성은 끝내 하나로 연결되지 못한다. 볼프강은 어떠한 일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자신의 체념적 태도를 극복하지 못한다. 프란치스카 또한 너무나 강하게 자신의 이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다.

 

 

 

 

 

마지막 장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그미는 노이슈타트로 되돌아간다. “절대로 쥐죽은 듯 침묵하지 말자. 무너지지도 말고. 오늘과 내일 사이에는 영리한 종합이 존재해야 한다. 암담한 블록 건설 그리고 즐겁고 생기 넘치는 거리 사이에, 필연성 그리고 아름다움 사이에는. 나는 기개를 발휘하여, 찬란한 미래로 향할 수 있는 흔적을 발견하려고 했다. 아, 나는 얼마나 조심스러웠던가. 언젠가는 흔적을 발견하게 되겠지.” 소설은 프란치스카의 발전 과정을 일직선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프란치스카는 시민 가정 출신이고, 엘리트 계급에 속하는 교수 밑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노동자와의 결혼 생활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소설은 어떠한 완전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개방되어 있다. 사회주의 국가 내의 일상을 고려할 때 ?프란치스카 링커한트?는 볼프의 ?크리스타 T.를 생각하며?와 일맥상통하는 작품이다.

 

라이만은 제반 서술에 있어서 치밀성을 보여주며, 때로는 사실에 대한 세밀한 객관적 묘사 역시 생략하지 않았다. 동독 내에서 한 여성의 발전 과정이 심리적 측면에서 이처럼 설득력 있게 다루어지는 경우도 무척 드물다. “기억, 체험 그리고 대화 사이에 둥둥 떠 있기” - 이는 한마디로 요약된 라이만 특유의 서술 방식인 셈이다. ?프란치스카 링커한트?를 통하여 그미는 이른바 60년대의 도달 문학을 벗어나서, 전 독일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 작품을 창조해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