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계 문화

고대 그리스 그리고 스파르타 (2)

필자 (匹子) 2022. 1. 28. 09:13

 

 

이번에는 스파르타에 관해서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스파르타는 과거에는 라코니아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당시에 "라케다이모니오이 Λακεδαιμόνιοι"라고 명명되었는데, 이곳 지명을 따서 그렇게 불리운 것입니다. 지도에서 나타나듯이 스파르타는 아테네로부터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스파르타는 왕권제 그리고 관료제 그리고 민주제가 혼합된 체제로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특수한 경우입니다. 왕권이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제한되고,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관료가 작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며, 시민 모두가 군인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스파르타에서는 세 가지 제도가 뒤섞여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남자들은 노예를 제외하면 일체의 생업에 종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무술을 연마하고 우정을 쌓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하였습니다. 스파르타의 남자들이 무술에 능하고 강건하게 된 까닭은 그 때문입니다.

 

 

 

 

 

 

스파르타 인들이 사용하던 칼입니다. 한 손으로는 방패를 들기 때문에 칼이 너무 길거나 무거우면, 전사들이 휘두르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스파르타 전사들은 칼끝으로 적을 찌르거나, 날렵하게 휘둘러서 적을 베어서 죽이곤 하였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이 타고 다니던 선박. 사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훌륭한 해양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소이사아의 페니키아 상인들이 조선 기술에 있어서 탁월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대서양으로 진출하여 영국과 교역을 행할 정도였지요. 가령 지브롤터 해협에 위치한 헤라클레스의 기둥에는 "더 이상 나은 곳은 없다 Non plus ultra" 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대서양의 험난한 상황을 지적함으로써 오로지 자신들만 독점적으로 무역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스파르타인들의 배는 단순히 탈것에 불과했으며, 마치 거북선처럼 방어와 공격을 위한 무기를 갖춘 게 아니었습니다.

 

 

 

 스파르타 지역에 있는 뮈시스트라스 궁전. 이 건물은 스파르타의 유적지입니다. 궁전은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고대와 중세의 건물의 흔적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1200년에서 1245년 사이에 심자군 전쟁 당시에 축조된 것으로서 1406년에는 게오르기아스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신플라톤 학파의 학교를 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1460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소유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1825년에 독립 운동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여자들의 모습.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무조건 여성들을 억압하고 차별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계급적으로 낮았습니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얼마든지 정치적 토론에 참석할 수 있었으며, 남편의 허락 하에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어떻게 해서든 도시 국가의 인구를 늘이려는 정책 때문에 타나나 풍습입니다. 이렇듯 하나의 성도덕은 특정 사회의 상황에 의해서 출현한 것입니다. 이는 플루타르코스의 "리쿠르고스의 삶"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결혼 후에도 남자들이 무술 연마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성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아이를 키우고 가사에 몰두하곤 하였습니다.

 

 

 

 

 

스파르타의 여인들에게는 노예들이 배속되어 있었습니다. 길쌈이라든가, 육아 그리고 요리 등은 모두 노예의 몫이었습니다. 남존여비의 풍습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이조시대만큼 철저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위 여성들은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중요한 결정권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뤼시스트라세라는 극작품을 읽으면, 우리는 여성들이 전쟁에 참가하는 남자들에게 직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남녀 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계층 차이였습니다. 자신의 계층은 천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현재 그리스의 모습을 살펴 봅시다. 그리스는 유로 존의 국가에 속합니다.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프랑스와 독일은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받아들여 그리스의 경제 상태를 향상시키려고 합니다. 사진은 유로 존의 국가들이 그리스를 대하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스야 네가 숙제를 끝내야, 용돈을 얻을 수 있어." 혹자는 "유로 존 Euro-zone"이 축소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혹자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자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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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그리스 남부의 도시 기티온의 항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의 인구는 불과 7000명에 불과합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대도시에 밀집해 있습니다. 예나 지금에나 간에 그리스 사람들은 바다 산업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는 휴양지 내지 생태 관광으로 수입을 벌어들입니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체조를 통해서 신속성유연성을 키웠습니다. 오늘날 독일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김나지움 Gymnasium이라고 합니다. 김나지움은 "체조를 뜻하는 김나스틱 Gymnastik"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여기서도 드러나듯이 교육에 있어서 체조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남자아기들이 육체적으로 장애를 지닌 경우에는 어릴 때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하곤 하였습니다. 자식 하나 잃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를 잃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진은 스파르타에 있는 "테르모필레 Thermopylen" 계곡 앞의 해안입니다. 여기서 스파르타 사람들은 불과 300여명이 합심하여 좁은 계곡 앞에서 버티면서 페르시아의 수만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좁은 협곡에서는 전사의 수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좁기 때문에 많은 군사가 한꺼번에 싸울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스파르타 사람들은 지형 지물을 활용하여 죽을 각오로 싸워 수만의 페르사 군대를 무찔렀습니다. 이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불가사이한 사건으로 손꼽힙니다.

 

 

다음을 클릭하면 영화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2분 22)

 

https://www.youtube.com/watch?v=rGrEp9FqF3c

 

다음을 클릭하면 영화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2분 22초)

 

https://www.youtube.com/watch?v=VNcJbQRYh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