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중세 문헌

서로박: 중세 소설 장미 이야기

필자 (匹子) 2020. 6. 30. 09:31

-“오늘 아침 이룬 기쁨이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머문다면

사랑은 진리처럼 언제나 내 가까이 머물고

영원히 떠나 있으리라”- (Hildegart von Bingen)

 

(1) 얼짱 (혹은 몸짱) 그리고 장미: 친애하는 N, 독일의 시인, 릴케 (R. M. Rilke)는 장미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서 잠들지 않을 기쁨이여.” 그래, 장미는 꽃 중의 꽃이며,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그밖에 장미는 천국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가령 단테 Dante Aligiri는 신곡에서 천국의 장미를 천국의 완전성으로 비유했습니다. 이 경우 장미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물 mediator Dei et hominum”이지요. 그렇지만 모든 꽃들이 그 자체 아름다움을 지니는 게 아닐까요? 대부분의 수컷들은 자신의 눈만을 맹신합니다. 그저 시각적 아름다움에 혹하여, 장미 가까이 접근하다가 가시에 찔려 피 흘리곤 하니까요. 이에 비하면 천리향의 향기는 얼마나 생명체의 후각을 자극하는가요? 비록 호박꽃의 색깔이 천박한 “노랑”을 띄고 있지만, 인간은 정작 대수롭게 생각합니다, 호박이 얼마나 달콤한 맛과 영양을 선사하는지를.

 

(2) 하나의 작품을 집필한 두 명의 작가: 친애하는 N, 오늘은 중세에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던 소설, 『장미 이야기 Le roman de la rose』에 관해서 논해보겠습니다. 이 소설은 기욤 드 로리스 (Guillaume de Lorris, 1200? - 1240?)에 의해서 씌어졌으며, 나중에 장 드 묑 (Jean de Meung, 1240 - 1305?)은 기욤의 작품을 바탕으로 속편을 탄생시킵니다. “장미 이야기”는 “소설”이라고 칭해지지만, 알레고리의 기법을 담고 있는 운율 소설입니다. 기욤이 쓴 제 1부는 1230년에서 1240년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장이 쓴 제 2부는 1275년에서 1280년 사이에 씌어졌다고 합니다. “장미 이야기”는 두 사람에 의해 씌어진 소설이지만, 집필 동기에 있어서 거의 동일합니다. 물론 주제 및 작가의 의도에 있어서 두 편은 서로 이질적이지만 말입니다. 장 드 묑은 기욤의 미완성 소설을 완결시킨 셈인데, 작품에다 어떤 다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3) 사랑 혹은 작품 집필의 계기 그리고 사랑: 기욤 드 로리스는 4000행의 시를 집필할 무렵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양을 쌓은 사람으로서 특히 동시대의 귀족들을 위해서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안드레아스 카펠라누스 Andreas Capellanus의 후속 세대로서 “새로운 사랑의 기술”을 기술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기욤은 시적 형식을 고려할 때 중세 기사들의 궁정 문학에서 많은 것을 모방한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모험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장미 이야기”는 “연애 봉사 Minne”를 소재로 채택했다는 게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관한 표현은 20세 나이의 작가가 꿈속에서 체험했다고 주장하듯이 어떤 알레고리의 형식 속에 담겨 있습니다.

 

(4) 등장인물, 상징적 존재들: 친애하는 N, 당신의 이해를 위하여 첫 번째 기욤의 작품 줄거리를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5월 어느 날 아침에 시인은 시골길을 산책합니다. 이때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장벽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벽은 아름다운 정원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벽에 그려진 이상한 우화적인 형상들은 정원 출입을 통제하는 상징적 존재로 보입니다. 궁정의 여유를 뜻하는 “오이제우스”는 시인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정원 주인 “연애욕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연애 욕구”는 여자 친구 “즐거움”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안에서 궁정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들의 노래 소리 그리고 즐거운 대화 그리고 웃음으로 인하여 시인은 황홀해 합니다. 그의 눈은 환상적인 분수로 향하다가 어느 장려하게 피어있는 장미로 향합니다. “아모르”는 여러 가지의 화살을 쏘면서 연인에게 가까이 근접하고 있다고 시인에게 알려줍니다. 그의 화살은 제각기 “미”, “단순성”, “정직함”, “사교성”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 등의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모르”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성에 봉사하고, 충직함 그리고 관대함 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5) 장미 속으로 들어가기: 그렇지만 장미 주위에는 “중상모략”과 같은 파수병이 서성거립니다. “수치심” 그리고 “두려움”은 시인으로 하여금 장미에로의 접근을 가로막습니다. 높은 탑에서 모든 것을 관망하던 “이성”은 사랑으로부터 등 돌리라고 시인에게 충고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어떻게 하든 간에 장미의 내부로 향하려고 의도합니다. “친구”는 어떻게 하면 파수병을 따돌릴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시인에게 조언을 전합니다. 시인은 드디어 장미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렇지만 “순결”이 나타나 시인의 접근을 방해합니다. 마침내 비너스 여신이 이를 중재하여 시인은 마침내 연인과 키스하게 됩니다. 장미와의 키스는 달콤하지만, 그저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순간 파수병들은 모든 것을 알아차립니다. “중상모략”, “질투”는 장미 정원 주위에다 장벽과 탑을 설치해 둡니다. 지금까지 시인에게 조언해주며, 궁정 연애 책임자인 “선한 영접” 역시 여기에 갇히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첫 번째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6) 개인에게는 이름이 없다. 신만이 하나의 이름을 지닐 뿐이다. 혹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 알레고리는 중세 말기에 흔히 사용되던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중세의 작가들은 개개인을 거명하는 대신에 온갖 추상 명사들을 등장인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중세 작가들은 문학적 주제를 개인의 범주 속으로 편입하지 않는 대신에, 보편적 익명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N, 당신은 다음의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개개인의 사랑이라는 보편적 익명성은 신이라는 절대 진리로서의 명사적 일원성에 가리어져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사랑받는 여인은 독자적인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궁정 여인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장미”로 지칭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궁정 여인에게 해당되는 “수치심”, “두려움”, “순결” 등은 전혀 개인적 고유성을 지니지 않습니다.

 

(7) 장 드 묑의장미 이야기”: 그러면 장 드 묑이 발표한 두 번째 작품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두 번째 작품은 무려 18,000 행에 해당하는 대작입니다. 작가는 전통적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내용상 완전히 다른 작품을 남겼습니다. [장 드 묑은 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궁정 문학에 대해 비판적 거리감을 취했음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장이 깊은 교양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중세의 시대에 평민이 글 배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장 드 묑은 보에티우스 Boetius 그리고 베게티우스 Vegetius 등의 저서를 번역하는 등 고대 작가에 대해 매우 친숙해 있었습니다.]

 

 

 

(8) 탁월한 문학은 사랑 이야기에다 많은 의미를 감추어둔다: “이성”은 여러 번에 걸쳐 탑에서 내려옵니다. 작가는 2000행에 걸쳐 고대의 여러 논문 등에서 수많은 예를 끄집어내어, 사랑 그리고 열정을 묘사합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사랑에 관한 궁정 문학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반박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시민의 전통에 따라 여성은 위험에 처합니다. 사랑을 탐하는 젊은 사내는 아무런 연애 경험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벼운 행동은 오로지 청춘으로 인하여 용서 받을 뿐입니다.

 

등장인물 “친구” 역시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중얼거립니다. 이러한 독백을 통하여 우리는 “친구”가 자유의 정신을 추구하는 자라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친구의 말은 주인공인 사랑을 탐하는 젊은 사내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줍니다. 이때 등장인물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는 궁정 국가의 장벽을 마구 허물려고 합니다.

 

(9) 하나의 절대적 진리로서의 장미 한 송이 찾기: “사랑” 주위에는 신부와 수사들의 “위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위선”은 거짓말쟁이로서 한 번도 참회하는 적이 없습니다. 등장인물 “위선”은 선량한 사람들을 기만하고, 교만한 사람들에게 거짓을 전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위선”은 모든 저열함을 내적으로 간직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합니다. 여기서 “위선”은 “사랑”과 대화를 나누면서, 수사들의 표리부동한 삶을 비아냥거립니다. 이러한 대화가 끝난 다음에 “위선”은 “사랑”과 동맹을 맺습니다. 가령 “위선”은 “중상모략”을 목 졸라 죽이고, “선한 영접”을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줍니다. 이때 시인은 드디어 장미를 꺾으려고 시도하지만, “두려움” 그리고 “수치심”이 순간적으로 출현하여, 이를 방해합니다.

 

(10) 중세의 자연에 관하여: 하마터면 “위선”과 “사랑”은 “두려움”과 “수치심”에 대항하여 싸울 뻔 합니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끊임없이 뒤에서 알레고리들을 조종하니까요. 이때 시인은 화제를 바꾸어, 삶을 창조하는 자연 그리고 자연에 관해 묘사합니다. 모든 사물의 창조주인 “자연”은 모든 생명을 관장하는 “게니우스” 앞에서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고백합니다. 자연의 고백은 알랭 드릴 (Alain de Lille)의 “자연의 식물에 관하여 De planctu naturae”의 책을 은근히 모방한 것 같아 보입니다.

 

예컨대 “자연”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고유한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자연”은 자유 의지, 꿈의 중요성 그리고 천문학의 가치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게니우스”는 무언가 대답하지만, 이는 복잡하게 뒤엉킨 논의 속에서 의미를 잃고 맙니다. 이러한 토론이 거의 끝나갈 무렵 소설은 어느새 종국을 맞이합니다. 즉 정원의 성이 함락되고, 시인은 마침내 열망하던 장미를 꺾게 됩니다.

 

(11) 스콜라 학에 관한 은폐된 토론: 장 드 묑의 장미 소설은 근본적으로 고찰하면, 중세의 철학자 아베로에스 Averroë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어쩌면 장미 소설은 장미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의 질 내지 사랑의 정체를 파헤치는 게 아니라, 13세기 철학과 문화에 관한 감추어진 토론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쩌면 사랑은 절대 진리의 문제를 암시하고 있지만,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어쩌면 부차적인 관심사일지 모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미 이야기를 둘러싼 물리적 윤리적 토론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 드 묑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진리에 관한 “이성” 그리고 “위선” 등의 논의일 것입니다. 모든 내용은 근본적으로 스콜라 학문에 관한 은폐된 토론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