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마르쿠제의 '예술과 혁명'

필자 (匹子) 2019. 3. 18. 11:10

 

 (1955년 미국에서 찍은 사진)

 

 

 

허버드 마르쿠제 (1898 - 1979)의 "예술과 혁명 (Art and Revolution)"은 1972년 보스턴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예술과 혁명"은 마르쿠제의 후기 예술론을 담고 있는데, 신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과 혁명적 실천에 관한 직접적 전망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마르쿠제는 (「자유에 관한 에세이 (An Essay on Liberation, 1969)」에 기술된 바 있는) 해방된 사회 그리고 어떤 “새로운 감성 (neue Sensibilität)”을 담은 삶의 형태로서의 미학적 유토피아를 계속 진척시키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는 -1937년에 쓴 「문화의 긍정적 특성 (The Affirmative Character of Culture)」을 재론하면서- 고전적 시민주의 예술 작품 속에 담긴 비판적 이상주의를 다시금 언급한다.

 

미적인 형태를 높이 평가하면서, 마르쿠제는 동시대의 문화 혁명적 반 예술을 비판하고 있다. “(TV나 영화에 대항하는) 무대 연극 (Living Theatre)” 그리고 “언론 출판의 자유 (free press)”를 주창하는 문학 작품은 주지하다시피 문화 혁명적 반역을 표방한다. 그것들은 마르쿠제에 의하면 문학과 예술을 부정적인 것으로 돌변케 만든다고 한다. 이로써 예술은 전통적 형식의 “단순한 원소화”에 바탕을 둔 반 형식으로서 파기되거나 시 작품 역시 “산문을 쪼개 만든 텍스트”로 전락된다고 한다. 무릇 예술은 예술적 형태로써 주어진 질서에 대해 스스로의 초월성을 상실하며, 단지 예술의 내재성에 예속될 뿐이다. 따라서 예술은 직접적 삶의 현실이라는 일차원성속에서 용해된다. 그러니까 직접적 삶의 진실성은 마르쿠제에 의하면 반예술을 파괴시키고 반예술이 부르짖는 내용을 파기시킨다고 한다.

 

미적 형식의 개념은 마르쿠제에 의하면 상기한 비판적 기능을 지닌다. 그것은 예술 작품으로 하여금 “고유한 구조와 질서를 지닌 폐쇄된 전체성”을 견지하게 한다. 예술의 구현이나 양식은 미의 법칙이 지배하는 어떤 다른 질서의 현실에 종속된다. 미적 변형의 이러한 상은 어떤 그 자체 폐쇄된 우주를 창조하는데, 어떤 영원히 다른 무엇으로서 주어진 자연과 현실을 초월시킨다. 고전적 예술 작품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듯이- 어떤 억압된 사회를 공고히 하는 동인으로서 작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품 속에서는 예술적인 상이 내재해 있는데, 이러한 상을 통해서 주어진 현실이 가상적으로 변형되고 있다.

 

가령 코르네유의 연극 작품, 괴테의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 (1787)와 「토크바토 타소」 (1790) 등은 긍정적 미메시스와 궁정 이데올로기의 산물만은 아니다. 오히려 작품은 내재적으로 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이상화시키고 있는데, 이로써 예술의 “체제 비판적 진리”가 실현된다고 한다. 데포 (Defoe), 레싱, 플로베르, 디킨스, 입센, 토마스 만 등의 작품에는 대체로 시민적 갈등과 해결이 묘사되고 있다. 이는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갈등과 화해인 셈이다. 특히 감각, 꿈, 기억과 동경 등의 극한적 상태를 표현함으로써 작품은 우리에게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을 전달해 준다. 이는 가능한 해방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마르쿠제의 묘비. 베를린의 도로테엔슈타트 공동묘지에 있다.)

 

예술의 급진적 잠재성은 오로지 고유한 언어와 상상의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가능하다. 예술의 고유한 언어와 상상의 세계는 일상의 언어 및 “세상에 관한 산문 (prose du monde)”을 무력하게 만든다. 사회가 언어의 우주적 특성을 완전히 장악하는 상태로 근접하면, 그럴수록 언어는 더욱더 막강하게 지배의 도구로 전락한다. (이러한 입장은 아도르노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에 반해 고전 연극의 시 구절은 일상 언어의 규칙을 따르고 있지만, 이차원적 세계의 지배적 소리를 내세운다. 그러니까 시민 연극은 (시민 혁명이 주창한) 평등의 이념에 의해서 현실적 우주성을 파기시킨다. 입센과 하우프트만의 경우 시민적 세계는 파국과 해방을 알리는 상징적 형체 내지는 전체적 모습에 의해서 파괴되고 있다. 가령 정착된 우주적 현실을 파기시키는 예술 작품으로서 마르쿠제는 B. 브레히트, A. 긴스버그의 시 그리고 사뮈엘 베케트의 극작품을 들고 있다.

 

마르쿠제는 미적 형식을 옹호하고 있는데, 이는 나중에 예술의 영원성 (Die Permanenz der Kunst)」 (1977)에서 정통 마르크주의의 미학에 대항해서 집필된 것이다. 따라서 마르쿠제의 입장은 고전적 미학 그리고 예술 작품의 자율성에 관한 이상주의적 이념을 추종하고 있다. 혁명적 미적 유토피아로부터 등을 돌림으로써 마르쿠제는 정치로부터 거리감을 취하고 고전 예술론으로 회귀하였다. “예술 작품속에서 정치적 목표는 오로지 미적 형태의 수단에 의한 변형 속에서 드러날 뿐이다.”

 

마르쿠제가 (의고전주의적이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형식의 개념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비판될 수 있다. 그렇지만 미적 형식을 강조하는 마르쿠제의 입장은 예술의 존재 조건을 예술속에서 그리고 잠재적 사회 비판에서 발견하려고 한다. 이로써 마르쿠제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예술과 대중 문화를 긍정적으로 통합시키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에 반대해야 하는 이론적 논거를 내세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