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게오르크 지멜의 돈의 철학

필자 (匹子) 2018. 12. 19. 13:48

오늘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약한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 (Georg Simmel, 1858 - 1918)의 대표작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1900년에 발표된 『돈의 철학 (Philosophie des Geldes)』입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지멜은 오랜 시일에 걸쳐 추구해온 가치이론 그리고 서구 철학의 문화사를 망라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사회학 그리고 역사 철학을 총결산한 셈입니다. 이 책은 두 가지 차원에서 놀라움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항은 철학사에 있어서의 세기말의 다양한 전환기적 사고들을 “제반 철학들”이 아니라, 단수인 “철학”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세기말의 문화적 풍토는 급변하는 사회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듯이 수많은 예술적 사조를 드러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멜은 “돈”이라는 교환 수단으로 사회적 현상을 요약하려고 시도합니다. 두 번째 사항은 지멜의 모든 개념이 구체적이고, 서술 방식에 있어서 에세이 형식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게오르크 지멜 (1858 - 1918): 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가치 교환에 관심을 기울였다.

 

지멜에 의하면 “돈”은 신시대의 문화에서 나타나는 기초적 상징으로 출현합니다. 돈은 사회 전체의 모든 교환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모든 경제적 수단, 물질 내지 범례들은 “현존재의 외부적 현상들과 내부적 이념의 잠재성 사이에 주어져 있는 관계의 표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교환의 관계이며, 관계의 표현의 돈의 교환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돈의 가치는 막강합니다. 나아가 돈은 제반 가치와 인식을 절대적으로 상대화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돈은 절대적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특성을 상징합니다.

 

지멜의 책은 상기한 내용을 고려하여 세 개의 단락으로 구분됩니다. 첫째 단락에서 저자는 가치, 교환 그리고 진리 등이 나타나는 현상에서 현대 세계의 가장 기초가 되는 특성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바로 실체화된 상대성으로서의 돈을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돈 자체는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재화 사이에서 끝없이 오고가며, 교환될 뿐입니다. 돈의 대체 기능 그리고 가치의 증명 기능은 끝없이 교차됩니다. 이로써 지멜은 개인주의에 입각한 가치 이론을 내세우는 셈입니다. 실체의 가치는 돈에 의해서 기능 가치로 이전됩니다. 이로 인하여 드러나는 것은 상대 관계로서의 진리이며, 지멜은 이를 강하게 주장합니다. 가령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생각은 오로지 다른 무엇에 대한 관계 속에서 참일 수 있다.” 지멜에게서는 진리의 기능 이론 외에도 실증주의, 가상주의, 심리주의 등의 차원에서 고찰한 (참되거나 차단된) 입장 등이 발견됩니다. 이것들은 서로 합쳐질 수 없는 이질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일치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두 번째의 장에서 저자는 실체적 존재로서의 사고가 돈에 의해서 어떻게 기능적 존재로서의 사고로 변화되는가를 추적합니다. 다시 말해서 돈의 역사는 실체의 사고로부터 기능의 사고로의 변화 과정과 평행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의 발전은 인간 삶의 지적 요소의 증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지멜은 두 가지 사항, 즉 돈에 의해서 변화되는 사고의 기능화 그리고 돈에 의해서 강화되는 지적 특성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멜에 의하면 상호 작용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호 작용은 지멜이 말하는 전문용어, “상호 상관 개념  (Korrelationsbegriff)”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의 장에서 저자는 삶의 거대한 경향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 삶의 질적 특성은 돈에 의해서 상대화되고, 급기야는 양적 특성으로 축소화된다는 것입니다. 돈은 이러한 발전 과정의 정점에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장에서 지멜은 개인적 자유와 돈 사이의 제반 관계를 분명히 규정하려고 합니다. 이로써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내려고 합니다. 즉 모든 인간관계는 직접적이었으나, 돈에 의해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령 우리는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채권자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각서에 사인만 할 뿐입니다. 이로써 형성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유 그리고 사물의 객관성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경제적 종속 관계 내지 가장 기초적인 소외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야 말로 지멜이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마르크스주의의 변형된 수용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지멜은 돈의 사용으로 인한 인간의 의식 구조 변화 그리고 기능적 사고의 발전, 돈의 사용으로 인한 인간 소외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다만 자신의 진리의 상대주의라는 입장에 근거하여 개진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돈의 끝없는 교환 과정 그리고 내면과 외부 사이의 끝없는 작용을 해명함으로써,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