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헤겔에 관한 루카치와 블로흐의 입장 차이

필자 (匹子) 2019. 1. 26. 21:42

1.

소련의 안드레이 츠다노프는 1947헤겔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해결되었다고 천명한 바 있다. 왜냐하면 헤겔은 모든 통상적인 학문 내용들을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자신의 카테고리 속으로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서 루카치와 블로흐는 헤겔의 사상을 추적하였다.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헤겔의 사상 속에는 긍정적인 경향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른 관점에서 이를 피력했다.

 

2.

루카치는 그의 연구서 "젊은 헤겔 (Der junge Hegel)"에서 헤겔의 정확한 역사적 분석을 추적한다. 말하자면 그는 처음부터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헤겔을 고찰하고 해석하려고 의도한다. 루카치는 다음의 사항을 무엇보다도 염두에 두고 있다. 즉 헤겔이 살았던 시기에는 독일 지식인들이 자신의 중요한 방향을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헤겔은 과거의 정신적 투쟁 속에서 미래를 위한 하나의 분명한 방향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루카치는 무엇보다도 헤겔의 이른바 능동성 (Positivität)”의 개념을 논의의 핵심 사항으로 설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헤겔은 능동성의 개념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서서히 변모시키는데, 이 점이 루카치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젊은 헤겔은 공화주의를 추종하면서, 기독교의 능동적인 종교에 대해서 단호한 자세로 싸워 나간다. 루카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의 능동적인 교회로 발전하여, 기독교 창시자가 원래 내세웠던 사적인 도덕을 하나의 독단적인 위선으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독단적 위선은 젊은 헤겔의 견해에 의하면 사적 관심사에 토대를 둔 사회, 즉 부르주아의 사회에 필연적이고 적절한 종교라고 한다.”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헤겔에 의하면 고대인들의 자유 의식을 혁신시키고, 인간의 자발적인 행위를 고취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젊은 헤겔은 기독교의 이러한 능동성을 극복하려는 모든 시도를 처음부터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서 거부한다. 왜냐하면 사회의 모든 형태가 기독교의 전파 및 지배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이 사라지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기독교의 능동성은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3.

그런데 헤겔은 1797년에서 1800년까지 프랑크푸르트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때 그는 기독교적 능동성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발전시킨다. 기독교는 말하자면 삶의 죽은형태나 다름이 없는데, 이는 인간 자신의 사회적 행위의 필연적인 생산물로 판명되고 있다. 헤겔은 아담 스미스로부터 노동의 개념을 빌어와서, 능동성의 개념을 역사적으로 진척시킨다. 헤겔은 "정신 현상학"에서 자신의 이러한 사고를 하나의 정점으로 부각시킨다. 그리하여 외화 (Entäußerung)”그리고 소외 (Entfremdung)”라는 개념은 헤겔의 시스템 속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루카치에 의하면 헤겔은 외화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3단계로 구분한다. 1. 모든 노동, 인간의 모든 경제적 사회적 행위와 결부된 보다 복잡한 주체- 객체의 관계, 2. (나중에 마르크스가 물신 숭배라고 표현한 바 있는) 특수한 자본주의의 형태. 헤겔은 여기서 명확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물신 숭배의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3. 철학적으로 보편화된 개념. 외화는 대상성 내지 사물성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4.

루카치는 이와 관련하여 젊은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을 지적한다. 헤겔의 변증법이 어째서 위대하고 어떠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실질적 원인을 밝히는 것은 결국 헤겔과 마르크스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파악하는 밑거름이 된다. 만약 우리가 헤겔의 변증법을 이른바 변증법적 유물론 속에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다음의 사항은 백일하에 밝혀질 것이다. 즉 이상주의의 변증법을 완성한 자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스스로 규명하려고 애쓴, 그야말로 유일한 철학자였다는 사실 말이다. 헤겔이 발전시킨 변증법의 모든 특수한 형태는 자본주의 사회의 제반 문제를 비판적으로 규명하는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루카치는 젊은 헤겔을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그 하나는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의 관점이요, 다른 하나는 서서히 발전되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의 관점이다.

 

5.

루카치와는 달리 블로흐는 '주체와 객체"에서 헤겔에 관해서쓰려고 하는 게 아니라, 헤겔에게 향해서, 헤겔과 함께 그리고 헤겔을 넘어서는 모든 것을 기술하려고 한다. 블로흐는 현재 현실을 분석하는 데에 헤겔을 끌어들이려고 의도한다. 헤겔의 작품 속에서 아직 보상받지 못한 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문화 유산의 철학적 실체라고 한다. 문화 유산의 새로운 실체가 신선하면 신선할수록, 그것은 더욱더 많은 무엇을 시사해준다고 한다. 문화적 유산의 문제는 철학의 과거사일 뿐 아니라, 철학의 현재 사건에 해당한다. 블로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겔은 미래를 부인했다. 그러나 어떠한 미래도 헤겔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블로흐는 역사적 맥락에 입각하여 헤겔을 다루지 않는다. "주체와 객체"의 테마는 헤겔의 제반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울러 그것을 파기하는 일이다. 블로흐는 정신 현상학을 다루는 부분에서 헤겔의 소외 개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헤겔은 소외의 파기를 오로지 철학적 지식 내에서, 그의 지고한 에테르 속에서 이해하고 있을 뿐, 결코 실천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을 제외한다면 헤겔이 중시한 바 있는 현상학의 관건으로서의 실질적 자기 인식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노동과 역사를 통해 무언가를 창출하는 인간 능력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6.

블로흐는 헤겔의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현실적인 것으로 이행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헤겔은 자신의 은폐된 유물론적 사고를 바로 이 작품에서 가장 훌륭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그는 주체를 객체와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주체와 객체는 정신의 개념 속에서 유동하고 모사되며, 모사되고 유동하고 있다. 블로흐는 나아가 자연의 철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자연의 진리는블로흐에 의하면 인간에 대한 자연의 발전 역사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그는 이미 헤겔에서 자연의 변증법을 발견하고 있다. 가령 그는 헤겔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유물론 속에 도사리고 있는 열광으로 가득 찬 다음과 같은 노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즉 이중적인 세계를 동일한 것으로 상상하는 이원론을 넘어서며, 원래 하나였던 이러한 분할을 완전히 지양하려는 그러한 노력 말이다.” (헤겔: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

 

7.

나아가 블로흐는 헤겔이 자신의 철학적 시스템 속에 역사 철학의 영역을 소홀히 했다고 비판한다. “헤겔의 역사 철학은 헤겔의 경우 기껏해야 국가의 단순한 마지막 부속물로서의 국가의 헌법의 토대 위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몹시 놀랍기 이를 데 없다. 왜냐하면 헤겔에 있어서 모든 것은 철학적 주변 사항, 철학 외적인 사항 그리고 그 자체 역사철학이기 때문이다.” 블로흐는 역사 철학에서 표현된 헤겔의 용어, “이성의 술수 (List der Vernunft)”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언급한다. 헤겔은 너무 이른 시기에 역사적 이성으로서의 우주를 지적하고 있는데, 만일 변화하는 무엇을 주도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지식이 그러한 우주를 창조하지 않는다면, 역사적 이성으로서의 우주는 세상에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8.

블로흐는 헤겔의 법철학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헤겔의 법철학은 단순히 프로이센 권력 찬양의 범주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헤겔에게서 법이란 형법의 카테고리를 훨씬 넘어서서, 개인적 부정의 부정이기를 원한다.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이념은 일견 보수주의적이기는 하나, 미래를 시사해주는 것이다.”

 

블로흐는 나아가 예술 및 종교에 관한 헤겔의 철학적 태도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블로흐가 헤겔의 시스템을 규명하려는 까닭은 헤겔의 이론을 뒤집기 위함이 아니라, 블로흐 자신의 철학적 카테고리인 이른바 역사 그리고 희망의 관점 하에서 헤겔을 비판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