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실러의 돈 카를로스

필자 (匹子) 2020. 10. 2. 10:44

친애하는 H, 프리드리히 실러 (1759 - 1805)의 「돈 카를로스 에스파냐 왕자 (Don Karlos. Infant von Spanien)」는 5막으로 이루어진 극시로서 1785년에 집필되었고, 1787년에 함부르크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실러는 이 작품을 애호한 나머지, 여러 번 개작을 시도했는데, 그의 대부분의 원고는 잡지 “라인 탈리아”에 실렸습니다. 「돈 카를로스」는 특히 얌부스 스타일의 운율을 사용하여, 무척 아름답고도 정교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쓰게된 계기는 만하임 극단의 단장이었던 달베르크 (Dahberg)가 이 소재로써 실러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1782년에 실러는 달베르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돈 카를로스에 관한 극작품을 시도하려 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1783년에 이른바 “바우어바흐 단장 (Bauerbacher Entwurf)”이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서는 가족의 초상화가 도입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실러의 다른 작품 「간계와 사랑」과 흡사합니다.

 

실러는 1784년 만하임 극단에서 전속 작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돈 카를로스 집필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간간이 초고를 약강격 (Jambus) 형식으로 바꾸어서, 작품을 새로이 집필했는데, 이로써 고전주의적 경향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1787년 완성 극작품에서는 특히 돈 카를로스의 친구인 마르키스 포자라는 인물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마르키스 포자는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고결한 의도를 관철하려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돈 카를로스의 포스터

 

돈 카를로스는 에스파냐 왕자인데, 사랑과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자신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는 엘리자베트를 극진히 사랑하지만, 돈 카를로스의 아버지, 필립 왕은 엘리자베트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자를 아버지에게 뺏긴 것입니다. 주인공의 죽마고우인 마르키스 포자는 자신의 고향 브뤼셀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르키스 포자는 에스파냐 지배하에 있는 네덜란드를 해방시킬 계획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자인 돈 카를로스가 사랑의 상실로 인하여, 번민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돈 카를로스의 이러한 태도는 마르키스 포자에게는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건/ 사자처럼 용맹스러운 젊은이의 태도가 아니야/ 억압당하는 민족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마르키스 포자는 돈 카를로스가 엘리자베트를 만나도록 주선해 줍니다. 그러나 이제 여왕이 된 엘리자베트는 돈 카를로스의 사랑을 거절합니다. 엘리자베트로서는 더 이상 돈 카를로스를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그미에게 중요한 것은 필립 왕의 사랑이 아니라, 에스파냐의 왕권이었던 것입니다. “엘리자베트는 자네의 첫 번째 사랑이었네/ 그미의 두 번째 사랑은 에스파냐라고 하네.”

 

다른 한편 필립 왕은 네덜란드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간파합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에스파냐로부터 군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독립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통치권을 더 이상 자신의 아들, 돈 카를로스에게 위탁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반란을 다스리기에는 너무 유약하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통치권을 쥐게 된 사람은 다름 아니라 알바 공작이었습니다.

 

필립 왕은 아들이 과거에 현재의 아내인 엘리자베트를 사랑한 적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연적 (戀敵)인 아들에게 어떠한 권한도 주지 않으려고 작심했는지 모릅니다. “그것과 아울러/ 가장 훌륭한 전사가 정복 욕구를 가지면/ 칼을 나의 살인자에게 맡기는 셈이 아닌가?”

 

사건은 제 2막에서 엘리자베트를 모시고 있는 에볼리 공주에 의해서 전개됩니다. 에볼리 공주는 비밀리에 돈 카를로스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미는 발신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연애편지를 돈 카를로스에게 보냅니다. 친애하는 H, 편지는 실러의 극작품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합니다. 예컨대 우리는「간계와 사랑」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돈 카를로스는 편지를 쓴 당사자가 엘리자베트라고 잘못 판단합니다.

 

주인공이 우연히 복도에서 에볼리 공주를 만났을 때, 그는 편지를 쓴 당사자가 에볼리 공주임을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에볼리 공주 역시 주인공과의 만남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는 돈 카를로스가 여왕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필립 왕이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에볼리 공주에게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에볼리 공주로서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육체를 탐하려는 필립 왕의 능글맞은 태도에 대해 수치심을 느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돈 카를로스에 대한 질투심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습니다. 에볼리 공주는 알바 공작과 도밍고 공작을 만나, 돈 카를로스와 엘리자베트 사이의 묘한 관계를 마구 지껄입니다. 즉 계모와 자식 사이의 “피를 더럽히는 포옹 (blutschändrische Unarmung)”에 관해 고자질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결국 이는 필립 왕의 귀에까지 전해집니다.

 

제 3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필립 왕은 에볼리 공주의 발언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임무를 맡게 된 사람은 다름 아니라 마르키스 포자였습니다. 마르키스 포자는 필립 왕과의 알현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전합니다. 즉 자신은 공화주의의 지조를 지니고 있으며, 네덜란드가 에스파냐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게 바로 자신의 견해였습니다. “이 손으로 모든 것을 다해낼 수 있습니다/ 땅이 새로이 창조될 것입니다 제발/ 사고의 자유를 부여하세요.” 이때 필립 왕은 네덜란드를 독립시키지 않고,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해야 한다고 반발합니다.

 

실망한 마르키스 포자는 다시 네덜란드로 떠납니다. 이때 그는 돈 카를로스에게 에볼리 공주의 밀고 사실을 전합니다. 에볼리는 왕자를 밀고한 뒤에 자신이 필립을 설득하여, 여왕이 되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질투심에 가득 찬 에볼리로서는 더 이상 돈 카를로스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꼴 보기 싫은 왕자와 여왕을 제거하고, 자신이 필립 왕비가 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필립 왕은 마르키스 포자로 하여금 돈 카를로스를 체포하게 합니다. 그러나 마르키스로서는 죽마고우를 차마 체포할 수 없습니다.

 

 

우유부단한 돈 카를로스,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다. 배우, 니콜라 마스트로베라디노, 연출, 안젤름 베버의 연출의 극작품의 한 장면

 

친애하는 H, 안타깝게도 돈 카를로스는 여전히 우유부단한 행동을 취합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이성을 잃은 탓일까요? 그는 에볼리 공주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이때 에볼리 공주는 다시금 돈 카를로스를 이용합니다. 즉 친구 사이를 갈라놓는 게 바로 그 계략이었습니다. 그미는 돈 카를로스에게 다음과 같이 거짓말합니다. “마르키스 포자가 필립 왕의 명을 받고, 네덜란드 침공의 군사권을 쥐고 있다.”는 게 바로 에볼리 공주의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때 돈 카를로스는 어리석게도 에볼리 공주의 말을 그대로 믿고, 친구를 증오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왕비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하여 당국에 체포됩니다. 필립 왕은 아들인 돈 카를로스를 처형하려고 합니다.

 

마르키스 포자는 친구의 오해를 푸는 문제, 친구의 목숨을 구제하는 방법 그리고 네덜란드의 독립을 성취할 수 있는 해결책 등을 숙고합니다. 그의 뇌리에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하나는 에볼리 공주를 죽일 것인가? 하는 물음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목숨을 장렬하게 던질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결국 마르키스 포자는 필립 왕에게 편지 한 통을 써서 즉시 보냅니다. 편지에는 “돈 카를로스가 아니라, 마르키스 자신이 엘리자베트의 감추어진 연인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편지로 인하여 돈 카를로스는 처형 직전에 누명을 벗게 됩니다. 마르키스 포자는 장렬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카를로스는 자신이 풀려날 시점에야 비로소 어째서 친구가 거짓 편지를 쓰고, 거짓 증언을 했는지 알게 됩니다. 말하자면 친구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네덜란드를 독립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마르키스 포자 그리고 엘리자베트의 도움으로 돈 카를로스는 어디론가 도망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알바 공작이 이를 사전에 알아차리고, 주인공을 다시 체포합니다. 필립 왕은 자신의 아들을 종교재판관에게 넘깁니다.

 

「돈 카를로스」는 질풍과 노도 그리고 고전주의 문예 사조 사이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갈등은 윤리적이자 가정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념극의 특성을 지닙니다. 이 작품에서의 비극적 요소는 18세기에 권력 집단의 가정 파괴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 사람들은 실러가 가정 문제 그리고 권력의 문제가 뒤엉키게 묘사한 데 대해서 반발하였습니다. 그러나 빌란트와 같은 작가는 실러를 두둔하였습니다. 특히 마르키스 포자의 인물이야 말로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