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장 파울 그의 시대와 문학

필자 (匹子) 2023. 9. 6. 11:14

장 파울은 횔덜린, 클라이스트와 함께 반고전주의 작가로 일려진 사람입니다. 그의 본명은 장 파울 프리드리히 리히터입니다. 그는 주로 소설을 집필했는데, 암시적 표현, 농담과 익살, 언어 유희 그리고 탁월한 단어 구사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설가입니다. 한국에서 장 파울의 소설이 번역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1798년 헤닝거에 의해 그려진 장 파울의 초상화. 초상화 두 장은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장 파울 프리드리히 리히터 (장 파울)은 교사이자 오르간 연주자의 아들로 17633월에 분지델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후 목사로 일했으며,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집은 가난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를 통하여 계몽주의 사상을 배웠습니다. 계몽이란 칸트에 의하면 스스로의 잘못에 의한 미성년의 상태로부터의 일탈 Ausgang aus der selbstverschuldeten Unmündigkeit을 뜻합니다. 계몽을 지닌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Habe Mut, dich deines eigenen Verstandes zu bedienen.!” 그대의 고유한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Sapere aude! 스스로 생각하라.

 

 

 

 

 

장 파울의 생가. 나무 뒤에 보이는 하얀 집이다.

 

1781년 장 파울은 라이프치히 대학교 신학과에 등록하였습니다. 그의 수업은 4년 지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공부 대신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책을 읽고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난이 그의 삶을 어렵게 했습니다. 그가 택한 것은 다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정교사 직이었습니다. 귀족의 자제들을 가르치는 접장 (Hofmeister)의 직업이었습니다. 피히테, 헤겔, 횔덜린, 실러 등 독일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생계를 위하여 이러한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784년에 가정교사직을 수락한 장 파울은 작품 집필에 매진하였습니다.

 

 

 

 

사진은 장 작 루소 (1712 - 1778)의 모습입니다. 장 파울은 루소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루소만큼 인간의 자유를 강하게 부르짖은 사상가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대로 행하지 않는 자세를 가리킨다." 진정한 자유인은 루소에 의하면 명령받지 않는 자입니다.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 자유를 저버리는 자는 결국에는 안일과 자유를 동시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편하게 살기 위해서 부자유를 감내하는 것 역시 진정한 자유인이 행하지 말아야 하는 자세라는 것입니다. 루소의 "에밀 Emile"은 가장 훌륭한 교육서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소는 가장 훌륭한 교육 사상가였지만, 가장 나쁜 아버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시끄럽게 한다는 이유로 다섯 자식을 고아원으로 보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여성작가 메리 셸리는 스스로 루소에 관한 전기를 썼습니다. 그미의 아버지는 윌리엄 골드윈이었으며, 어머니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습니다. 그미의 어머니는 여성운동가였고, 메리를 출산한 다음에 일찍 죽었습니다. 그래서 메리는 이복누이와 함께 외롭게 자랐습니다. 나중에 그미는 영국의 시인 퍼시 셸리와 결혼하였는데, 그의 도움으로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발표합니다. 메리 셸리는 루소의 전기를 집필하면서, 루소에게서 자신의 아버지의 면모를 읽었습니다. 마치 루소가 다섯 자식을 고아원에 보냈듯이, 윌리엄 골드윈은 두 딸을 마냥 방치하고, 집필에만 몰두하였던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소외감은 작품 프랑켄슈타인에게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자연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인조인간을 만들었지만, 인조인간은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감, 소속감 그리고 위안을 찾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괴물이라고 배척했을 때 인조인간은 살인을 저지릅니다.

 

 

사진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인조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품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입니다. 그는 탁월한 과학자로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여 인조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인조 인간은 키가 큰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를 친구로 인간으로 맞이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인조 인간은 본의 아니게 살인을 저지릅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불철주야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인물로서 장 작 루소 그리고 메리 셸리의 아버지 윌리엄 골드윈을 방불케 합니다. 메리 셀리는 루소를 연구하면서 그에게서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으며, 가족,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조 인간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장 파울은 정원에서 습작에 몰두하고 있다.

 

다시 장 파울로 돌아가겠습니다. 파울은 1793년 마침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귀빈석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괴테와 실러는 이 작품을 훌륭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작품 속에 반영된 유머, 알레고리와 풍자, 작품 내의 열광적인 분위기 등은 때로는 로코코 문학, 때로는 헬레니즘의 낙관주의를 유추하게 해주었으나, 괴테와 실러는 이를 작위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몹시 싫어했습니다. 괴테와 실러는 문학적 격식을 강조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 고전주의는 세 가지 특징을 지닙니다. (1) 온유함 Milde, (2) 여유 Musse 그리고 (3) 삶의 조화 Harmonie 의 분위기가 그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괴테와 실러는 제어할 수 없는 유머, 인간의 변화불측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마음속의 극한적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 파울에 대해서 결코 호감을 지닐 수 없었습니다.

 

 

 

 

 

사진은 장 파울의 "거인" 전권을 찍은 것입니다. 방대한 작품으로 현재 한국 연구재단에서 명저 번역으로 공모하고 있지만, 아직 어느 누구도 선뜻 번역을 착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번역하기 어려운 대작입니다. 장 파울은 무엇보다도 소설가였습니다. 괴테와 실러의 도움이 없이도 그는 나름대로의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생활비에 쪼들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장편 소설이 지니는 독특한 영향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베스트셀러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많은 돈을 받게 됩니다. 그에 비하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작가였습니다. 극작가는 순수예술을 지지해주는 스폰서를 발견하지 못하면,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작품의 출판은 물론이고, 극장이 마련되어야 하고, 배우들이 어느 정도의 보수를 받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더 이상 살아갈 여력을 지니지 못하게 됩니다.

 

 

 

그림은 장 파울이 살았던 지역을 차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대도시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은둔형의 작가. 장 파울은 오로지 문학 작품으로 세상과 조우하는 고독자였습니다. 도표는 그가 어디서 살았으며, 어느 지역을 맴돌았는가? 하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는 본제스, 에커스도르프 그리고 바이로이트를 제외하면,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많은 귀부인들은 그를 애호하였습니다. 그러나 장 파울은 시간만 나면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사진은 체코 근교의 바드 베르넥이라는 지역입니다. 이곳은 휴양지로서 온천이 유명합니다. 자고로 소설가의 직업은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글을 써야 합니다. 집필은 그야말로 중노동이지요. 그래서 작가 크리스토프 하인 Christoph Hein은 아침에 일어나서 책상으로 향하지 않으려고 화장실을 몇 번이고 들락거린다고 합니다. 작품을 쓰는 일은 힘들지 않는데, 작품을 쓰려고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는 게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Sanierung und Neubau im Bestand, Wunsiedel — Deutschland, Bild 1 von 6

 

장 파울이 즐겨 머물렀던 루이젠부르크  여기서 대작 "거인"에 대한 착상을 떠올렸다.

  

샤를로테 칼프 부인은 1796년 소설가 장 파울을 바이마르로 초청하였습니다. 2년후에 다시 초대를 받았는데, 이 시기 동안에 장 파울은 명작들 지벤케스, 크반투스 픽스라인의 생애등을 발표하였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그를 애호하였고, 카롤리네 폰 포이히터스레벤과 약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계층 간의 갈등으로 그미와의 관계는 힘들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미는 귀족이었고, 여러 가지 외부적 허례허식을 따졌습니다. 결국 파혼을 선언한 그는 당분간 결혼 자체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장 파울은 1798년부터 1800년까지 바이마르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괴테는 그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1800년 장 파울은 여행중에 카롤리네 마이어라는 여성을 알게 되었는데, 몇 년 후에 결혼합니다. 뒤이어 그는 자신을 애호하는 사람들이 모인 베를린으로 이주합니다.

 

 

 

위의 책은 장 파울의 "크빈투스 픽스라인의 생애"입니다 "O wer einmal jemand anders sein könnte! 오 누군가 달리 살아갈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이 문장은 뷔히너의 레옹세와 레나의 한 구절입니다. 인간은 누구든 간에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구를 품는 법입니다. 장 파울의 주인공 역시 그러했습니다. 크빈투스 픽스라인은 끝없는 공상을 품으면서 자신의 감정대로 살아가는 사내입니다. 언제나 바가지를 긁는 아내의 등살에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친구 라이프게버 Leibgeber에게 좋은 방도가 없는가? 하고 하소연합니다. 이때 그의 친구인 라이프게버는 하나의 잔꾀를 생각해 냅니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를 땅속에 파묻는 일이었습니다. 라이프게버는 크빈투스 픽스라인의 죽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린 다음에 그를 묘지 아래에 묻으려고 합니다. 크빈투스 픽스라인은 나중에 무덤에서 다시 기어나오, 바가지 긁는 아내와의 삶을 청산하게 되리라고 기뻐합니다. 멀리 떠나서 자신의 이름도 바꾸고, 다른 상냥한 처녀와 새 장가를 들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장 파울은 인간의 이기적이고 사악한 본성을 여지 없이 드러내려 했습니다.

 

 

 

 

코부르크에 있는 장 파울의 집필실 (그는 펜을 들면 두 시간 세시간 집중적으로 집필에 몰두하였습니다. 

말년의 삶: 장 파울의 거인, 개구장이의 시절등은 이 시기에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청년기의 열정이 드러나지 않지만, 오늘날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바이로이트에 있는 장파울의 거주지. 위의 사진에 담긴 단독주택은 20세기 후반에 다시 도색된 것이다.

 

1804년 그는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바이로이트로 이주하였습니다. 그후 마이닝겐과 코부르트에서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친구 E.T.A. 호프만을 방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바이로이트에 정주하였습니다. 그는 때로는 독일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발언으로 독일 대학동아리 deutsche Burschenschaften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사진은 이탈리아의 이시아 항구입니다. 장 파울의 거인은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배경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인간은 어떠한 역경을 닫고 일어서는 존재이며, 외부의 요구 사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반드시 구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알바노는 주위의 모든 술수 내지 권력 다툼으로부터 이리저리 이끌리며, 심지어는 부모 조차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가지만, 맨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인간적 면모를 완성해내고, 사회적으로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됩니다.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여러 명이 있는데, 특히 우리는 린다 그리고 로크바이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텍스트에서 자세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마이닝겐에 있는 장 파울의 기념비

 

 

 

장 파울의 어록

 

"등불을 든 자는 뒤따라오는 자보다 더 잘 넘어진다.Wer die Laterne trägt, stolpert

leichter als wer ihr folgt. ":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에 비하면 두 번째 사람은 선구자보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기억이란 우리가 결코 추방할 수 없는 천국이다. Die Erinnerung ist das einzige

Paradies, woraus wir nicht vertrieben werden können." 인간의 기억은 사람을 망치거나,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가령 끔찍한 파국에 대한 기억은 현재의 삶을 힘들고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찬란한 과거의 기억은 당사자로 하여금 현재의 추악한 현실을 과거의 찬란함으로 재구성하도록 자극하기도 합니다.

"저지른 잘못을 억지로 바로 잡으려하다가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다.

"Die schlimmsten Fehler werden gemacht in der Absicht, einen begangenen

Fehler wieder gutzumachen.

 

 

 

 

"겁에 질린 자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놀라고, 물병신은 끔찍한 사건이 진행 되는 동안에 놀라며, 용맹한 자는 끔찍한 사건이 지난 뒤에 놀란다.

Der Furchtsame erschrickt vor der Gefahr, der Feige in ihr, der Mutige nach ihr." 아,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유머는 세상에서 완전히 극복된 괴로움이다. Humor ist überwundenes Leiden

an der Welt." 삶의 고통 속에 처한 사람은 한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고통이 지나가면, 그것은 허망한 웃음으로 남습니다.

 

 

 

 

바이로이트에 있는장 파울 박물관.여기에는 그의 친필원고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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