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외국시

서로박: 캄파넬라의 옥중 시선 (14)

필자 (匹子) 2015. 11. 11. 10:42

(앞에서 계속됩니다.)

 

그렇다면 캄파넬라는 정말 자살하려고 자신의 감방에 불을 질렀을까요, 아니면 광인으로 이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의도적으로 불을 지른 것일까요? 이에 관해서 우리는 그저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캄파넬라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아니 로마 가톨릭 신앙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처음부터 비판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배움에 대한 애틋한 열망 때문에 도미니크 사원에 들어갔지만, 교단의 철저한 규정에 대해서 그리고 이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수사들에 대해서 비판의 칼날을 세우곤 하였습니다. 사실 로마 가톨릭의 계율에 의하면 자살은 그 자체 절대로 행해져서는 안 되는 반윤리적 행위라고 합니다.

 

언젠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기실 기독교 역사를 고찰할 때 미덕을 지닌 자치고 자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캄파넬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러한 견해를 내심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예언자 요나는 스스로 죽으려고 선원으로 하여금 바다에 자신의 몸을 던지게 한 사람이 아닙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자살은 적어도 캄파넬라에게는 하나의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제 3권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특정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미친 척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영특하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미친 사람은 노예로 끌려가지 않아도 되고, 갈레 선에서 뼈 빠지게 노를 젓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캄파넬라는 미친 척함으로써 죽음을 모면했으며,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권력기관은 감옥에 불을 지른 미치광이 반역자를 이단자로 처형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탈리아 당국은 그에게서 어떤 일말의 범법 혐의를 계속 추궁하고 싶었습니다. 캄파넬라는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자신의 시의 제목을 완전하게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자신이 쓴 글이 당국에 의해서 압수되는 날이면, 스스로 저지른 미친 행세는 들통이 나고 말 테니까 말입니다.

 

마지막 연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해줍니다. “나 또한 성스러운 마음으로/ 희생물을 바쳤다, 방화를 저지름으로써.” 캄파넬라는 광인 행세를 하는 희생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끝까지 살기를 바란 것일까요? 어쩌면 종신형의 형벌교수형보다도 더 끈질기고 잔악한 게 아닐까요? 만약 우리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희생자로서의 시인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살아남기 위하여 교활한 궁여지책을 사용하는 자는 자신의 삶을 더럽”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