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외국시

서로박: 캄파넬라의 옥중 시선 (13)

필자 (匹子) 2015. 11. 11. 10:41

(앞에서 계속되는 글입니다.)

 

"침대를 불지르고 미쳐버린 Di se stesso, quando, ecc." - 이 소네트는 추측컨대 1602년에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1599년에 캄파넬라는 일시적으로 자유의 몸이 됩니다. 이때 그는 칼라브리아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젊은이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에스파냐의 폭정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거대한 무력 투쟁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캄파넬라는 이들을 만나, 자신의 신권주의에 입각한 공산주의 사고를 전하면서 그들을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혁명의 시대는 점성술을 통해서 이미 검증되었다고 말하면서 동지들의 의지를 강화시킵니다.

 

그런데 캄파넬라는 다시 체포됩니다. 그의 혐의는 두 가지 사항이었습니다. 그 하나는 반역 행위이며, 다른 하나는 이단 행위였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 사람들은 그에게 이단의 혐의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를 바티칸으로 송치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때 이탈리아 당국은 열혈 지식인인 캄파넬라에게 이단 그리고 반역의 혐의를 동시에 씌웠습니다. 1600년 2월 7일 캄파넬라는 수차례 고문을 당합니다. 고문이라는 극도의 형벌을 견디면서, 깊이 생각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까, 그게 아니라면 끝까지 살아남아서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나을까? 하고 말입니다.

 

결국 캄파넬라는 모든 사실을 자백하고 고문실에서 초죽음이 되어 감방으로 향합니다. 자신이 교수형 당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캄파넬라는 법학의 지식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친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단자로 처형될 수 없는데, 이는 로마의 “만민법 ius gentium”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었습니다. 그래서 캄파넬라는 몰래 밀짚을 구해서 자신의 독방에 불을 지릅니다. 불이 나서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면, 할 수 없는 일이고, 만약 살아남는다면, 자신은 미친 수인으로 간주되어 처형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방화는 미친 사람으로 곡해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치 횔덜린이 "나는 자코뱅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정신 이상의 증세를 드러내었듯이, 캄파넬라 역시 권력의 잔악한 폭력에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 미친 척해야 했던 것입니다. 방화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 후에도 캄파넬라는 다시 고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무엇보다도 감방 방화사건이 14개월 후에 그의 처형을 모면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대신에 캄파넬라는 27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철창 속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