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제 3부는 “후궤나우 혹은 즉물주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후궤나우라는 인물은 이제 가치의 전통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그는 시대에 상응하게 상인으로 살아간다. 후궤나우의 관심사는 오로지 경제적 이윤 추구로 향한다. 그렇지만 본인은 정작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감지하지 못한다. 주위에는 인간적 가치를 상실한 인간들은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끝내 미치거나 자살해버린다. 에쉬는 후궤나우에 의해서 살해된다. 한마디로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던 자는 결국 자본주의의 화신에 의해서 몰락을 맞이하는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은 가치 파괴의 극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가치의 어떤 전환점이기도 하다.
작가는 특히 제 3부를 아주 방대하게 서술하였다. 이전의 이야기는 새로운 인간의 이야기에 첨부되고 있다. 주인공 “나”는 베를린에서의 구세군 이야기를 낭독한다. “나”의 정신적 태도는 마치 베르트란트를 방불케 하는데,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분석한다. 그러한 한 화자는 신즉물주의의 세계관과 유사한 체념적 시각을 지닌 서술자이다.
화자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1. 구세군 처녀 마리는 누헴이라고 불리는 유대인 남자를 사랑한다. 마리와 루헴은 격렬하게 서로 사랑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성취될 수 없다. 사회가 그들을 서로 이별하게 한다.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추상적 신앙 밖에 없다. 2. 야레츠키 중위는 끔찍한 전쟁을 체험한 탓인지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는 마구 헛소리를 지껄인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근본적으로 고립되었기 때문에 끔찍한 전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녀가 서로 아우르거나 함께 상부상조하며 살았더라면, 끔찍한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야레츠키 중위는 자신의 오른 팔을 절단해야 하는데, 작가는 외팔이의 삶 자체를 하나의 시대적 특성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3. 한나 벤들링이라는 여성은 이와 유사하게 자신의 삶이 축소화되고 황폐화되었다는 것을 피부로 절감한다. 그미는 젊었지만, 남편, 결혼 그리고 주위 환경 등과 절연한 채 외로이 살아간다. 그미는 오로지 이름도 모르는 남자들과 잠깐 만나 정을 통한다. 짤막한 쾌락만이 한나에게 감지될 뿐이다. 결국 그미는 고립 속에서 자결한다. 4. 괴디케라는 남자는 원래 벽돌공으로 일하다가 군인으로 징집되었는데, 전쟁 도중에 마치 두더지처럼 폐허 속에 파묻힌다. 사람들이 폐허 속에서 그를 발견했을 때, 괴디케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 서서히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의 자아를 고수하기 위하여 새로이 어떤 가상적 세계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작가 브로흐는 소설 속에서 전쟁 이후의 흩어진 가치의 시스템을 마치 만화경처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른 한편 작가는 역사와 논리와는 무관한 여러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서술한다. 예컨대 브로흐가 다루고 있는 에피소드 가운데에는 하나의 유토피아로 작용하는 신앙 공동체의 이상을 다룬 것들이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의 인용문), 때로는 여러 가지 표현 양식을 동원한 이야기들이 서로 무관하게 나열되어 있기도 하다. 소크라테스 방식의 질문, 소네트, 산문 우화 등이 삽입되어 있으며, 소설 내용의 수많은 모티브 등은 독자로 하여금 세계 속의 소우주를 이해하게 한다.
이로써 작품 "몽유병자들"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방불케 한다. 소설의 하자로서 우리는 결론 부분을 지적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 헤르만 브로흐는 모든 흩어진 이야기들을 하나로 집약시킨다. 이는 모든 장인들에게서 엿보이는 인원성의 신비성에 대한 추적이라고 명명될 수 있지만, 무척 작위적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종교인의 황홀을 느끼게 하는 서술 방식이다. 화자는 지상의 모든 사고나 언어 그리고 행위가 역사적으로 조건화되어 있다는 것을 예리하게 간파하지만, 스스로는 그것들로부터 냉정하게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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