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횔덜린의 "히페리온" (3)

필자 (匹子) 2022. 1. 2. 11:24

(앞에서 계속됩니다.)

 

(8) 제 1부, 히페리온의 아테네 서한: 제 1권의 마지막 편지는 흔히 “아테네 서한” 내지 “아테네 연설”이라고 명명되는데 소설의 주제를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히페리온은 여기에서 아테네 사람들을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구분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스스로 자라났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세계와의 행복한 일치감 속에서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신과 일치되는 본원적인 존재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히페리온은 고대인들이 의식한 “칼로카가티아 καλοκἀγαθία”의 이상을 디오티마에게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과 아름다움은 구체적으로 드러난 절대성으로서 현실화된 유토피아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히페리온은 그것을 인간과 세계를 결합시키는 일종의 인본 사상 내지 신적 유사성의 표식으로서의 고대적 아름다움으로 이해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고대적 삶의 형식과 예술, 정치 그리고 철학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디오티마로 향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진정한 것처럼, 오늘날의 현실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고대 삶의 원천을 재현시키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횔덜린은 주인공의 이러한 연설을 통하여 프랑스 혁명 속에 숨겨져 있는 근대적 국가와 문화의 복구 시도를 다시금 성찰하도록 요청합니다.

 

 

횔덜린의 애인, 수제테 곤타르의 조각상. 그미는 아름다움과 선함을 동시에 지닌 이상적인 존재로 각인되었다. 그미는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의 아내였는데, 횔덜린을 깊이 이해하고 그의 예술적 정신을 흠모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미는 19세기 초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이후에 횔덜린은 어떠한 여성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

 

(9) 제 2부, 알라반다의 혁명 투쟁: 다시 작품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디오티마는 근원적 조화로움으로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알라반다는 주인공에게 편지를 한 통 보냅니다. 편지에서 그는 펠로폰네소스에서 봉기한 농민의 편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터키 제국 사이의 알력관계와 전쟁 발발 사태가 그리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를 알라반다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히페리온은 그와 화해하고, 그리스의 해방을 위한 전선에 뛰어듭니다. (당시에는 터키가 그리스를 침공하여 그곳을 무력으로 장악하고 있었는데, 1770년에 그리스인들의 무력 봉기가 발생한 바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횔덜린은 집필 시에 프랑스 혁명을 무엇보다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알라반다는 오로지 무력을 통해서만이 사회적 유토피아는 실현될 수 있다고 믿으며, 이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정신의 동맹체는 그냥 공중에서 살 수는 없다. 아름다움이라는 성스러운 관료주의는 어떤 자유의 나라에서 거주해야 한다. 이러한 나라가 이 세상에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반드시 그 자리를 정복해야 하리라.” 히페리온은 어느 산(山)에 거주하는 민중의 힘으로 자신의 이상향을 실현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10) 실패로 돌아간 무력 혁명: 그러나 고대 그리스를 혁신적으로 부활시키려는 주인공의 꿈은 실제의 전쟁 상황에서 좌절을 겪습니다. 고결한 전쟁에 참가한 의용병들이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면서, 도시 이시스트라시에 엄청난 피해를 가하게 된 것입니다. 혁명 동지들은 엄청난 환멸을 느끼고 의용병들의 작태로부터 등을 돌리게 됩니다. 여기서 횔덜린은 한 가지 입장을 은밀히 암시합니다. 그것은 주어진 현실을 무력으로써 변화시키려는 거사를 거부하는 자세입니다. 이는 프랑스 혁명의 진행 과정에 대한 시인 자신의 거부적 반응과 관련됩니다. 작품 속에서 산에 거주하는 민중은 프랑스 자코뱅주의자를 암시합니다. 

 

실제로 프랑스 자코뱅주의자들은 자신의 당을 산당 (山黨, Montagnards)이라고 지칭한 것을 생각해 보세요.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주어진 폭정과 가난을 떨치기 위한 혁명적 목표는 배반에 의해서, 혁명가의 초조감에 의해서 도중에 사악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이를테면 로베스피에르의 잔인한 처형과 같은 무력 행위를 생각해 보세요. 그렇지만 주인공은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히페리온은 무력 혁명에 동참하기를 거부하지만, 장기적인 의식 개혁을 위한 교육 혁명을 멈출 수 없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금 아테네에서 정치적 행위의 필연성을 절감하여, 민중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기로 굳게 결심합니다. “성스러운 자연이여! 그대는 내 마음 속에 그리고 내 바깥에 있구나! 내 밖에 있는 것을 내 안의 신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것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으리라.

 

 

그리스의 고림된 작은 섬. 이곳이 티나인지는 확실치 않다.

 

(11) 알라반다와 디오티마의 죽음: 결국 알라반다와 디오티마는 안타깝게도 죽음을 맞이합니다. 알라반다의 생명은 자유를 위한 전쟁터에서 장렬히 산화하게 되고, 디오티마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병에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주인공의 마음속에 남게 된 것은 어떤 커다란 공허감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적인 전원생활의 꿈마저 허망하게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히페리온은 허탈한 심경으로 그리스를 떠나 독일로 향합니다. 거기서 주인공은 독일 현실을 가장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나는 독일 사람들보다 더 와해된 민족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네.” “직업인은 있지만 인간은 없고, 사상가는 있지만, 인간은 없다. 목사는 있지만, 인간이 없으며, 주인과 고용인, 청년과 어른은 있지만, 인간이 없다. 이것은 마치 손발이나 사지가 뿔뿔이 흩어져 유별나게 흘린 피가 모래를 물들이는 처참한 전장과 같지 않은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