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과 보편적 사랑" 해석
자기 사랑은 인간을 긴장시키는 게 아니라, 맥없이 만듭니다. 인간에게는 허영심이 많습니다. 아무런 고귀함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마치 자신이 고귀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지요.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허영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남들을 칭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는 타인으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 그러한 행동을 취합니다. 따라서 아첨, 아양, 칭찬의 말씀을 추적해 나가면, 우리는 그 속에 이기심 내지 자기 사랑에 대한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사랑은 무언가를 얻으려는 어떤 질시 내지는 탐욕 등과 관련되지요 그렇지만 공동의 사랑은 자기 사랑과는 다릅니다. 신의 사랑은 무언가를 바라는 감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에게서 무언가를 바라기 위해 베푸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 없는 사랑을 추적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없는 사랑은 무척 소중한 것입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나의 이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요. 자기 없는 사랑을 실천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머리를 한없이 낮추어야 합니다. 도의 길을 걸어가야 하지요. 여기서 말하는 “도 道”란 “머리 首”를 아래로 낮추는 일입니다. 낮추면, 상부의 고귀한 사랑이 보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 ὅτι πᾶς ὁ ὑψῶν ἑαυτὸν ταπεινωθήσεται καὶ ὁ ταπεινῶν ἑαυτὸν ὑψωθήσεται.” (루카의 복음서 14절 11절)
진정한 사랑은 프란체스코의 사랑하는 마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데서 비롯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물고기와 새를 자신의 친구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프란체스코는 삼라만상의 생명체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들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고기와 새들을 오로지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지요. 그렇기에 물고기와 새들이 그저 반항하는 존재 내지 부끄러움을 타는 존재로 인지될 뿐입니다.
'22 외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수한 영혼의 눈 - 천국의 사물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0) | 2021.04.13 |
---|---|
서로박: 캄파넬라의 옥중시선 (3) (0) | 2020.11.30 |
서로박: 캄파넬라의 옥중 시선 (1) (0) | 2020.09.14 |
산도르 페퇴피의 시 (10) 팔 파토씨 (0) | 2020.05.05 |
산도르 페퇴피의 시 (9) 들판에는 무엇이 흐르는가? (0) | 2020.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