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4) 퐁트넬의 '아자앵 이야기'

필자 (匹子) 2023. 5. 4. 09:28

(앞에서 계속됩니다.)

 

17. 재화의 분배 그리고 물물교환: 농업은 국가에서 관리되고, 수공업 제품은 사적인 소유물로 용인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치즈, 호밀, 보리, 우유, 완두, 콩 등을 재배하여 풍족한 수확을 거두어들입니다. 특히 수공업 제품의 경우 얼마든지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국가는 사람들이 농사를 제대로 짓는지 깊이 관여하지는 않고, 그저 재화를 분배하는 일에 골몰합니다. 이를테면 어느 마을에서 과잉 생산된 곡식이나 물품들은 부족한 마을에 충당되곤 합니다. 도시든 시골이든 어디든지 물품 저장소가 있어서, 모든 생산품은 그곳에 보관됩니다. 아자오에서는 화폐가 사용되지 않습니다. 나아가 국가는 어부, 사냥꾼, 백정 그리고 빵 생산자 등을 고용합니다. 이들에 의해서 생산되는 소비제품 역시 물품 저장소에 일시적으로 보관되곤 합니다. 물품 저장소의 관리는 사람의 수에 따라 필요한 물품들을 개별 가정에 나누어줍니다. 물품의 분배는 일주일에 네 번 두 시간에 걸쳐 행해집니다. 그 밖의 지엽적인 소비재, 이를테면 장롱, 부엌물품, 신발, 모자 등은 개별적 물물교환의 방식으로 마련됩니다. 이곳 사람들은 사적으로 사사로운 물건을 교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일이 국가의 경제에 방해를 주지는 않습니다.

 

18. 과학 기술과 학문: 퐁트넬은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과 학문적 지식을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수준은 17세기 유럽의 그것보다 훨씬 낙후해 있습니다. 주인공은 아자오 사람들이 음악을 알지 못하고, 의학의 수준 역시 낮으며, 두터운 책을 단기간에 간행하는 기술 역시 지니지 않았다고 기술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연 친화적인 삶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려는 욕구를 처음부터 지니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퐁트넬의 자연과학과 기술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원주민들은 자연과학과 기술을 전적으로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과학과 기술에 대해서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물론 그들은 학문과 기술에 대해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새로운 기술을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하는 문제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주인공, 될베트를 유럽으로 돌려보내어, 인쇄술, 도자기 생산 기술 그리고 과일을 개량시키는 기술 등을 배우도록 합니다.

 

19. 노동의 의무: 퐁트넬의 무신론 공화국에서는 노동의 자원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노동하지 않는 자는 국가로부터 처벌 받습니다. 국가는 사람들이 무슨 직업을 선택하여 이를 수행하는지, 세밀하기 기록해둡니다. 작가는 직물생산자, 빵 생산자, 어부, 백정, 기계공, 대장장이 그리고 목수 등과 같은 수공업의 종류를 거론하지만, 아자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업입니다. 따라서 대부분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은 당연하며, 교육 역시 농업과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가령 청소년들은 휴식을 위해서 산책할 때에도 들판이나 풀밭에서 반드시 잡초를 제거하는 것을 불문율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베라스의 세바랑브에서도 청소년의 이러한 유형의 일감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하루 네 시간씩 논과 밭에서 일해야 합니다. 또한 퐁트넬의 공화국에서는 힘든 일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노예들이 있습니다.

 

20. 사치의 금지: 아자오 사람들은 모든 유형의 사치스러운 물품을 거부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자연으로부터 생산되는 것들을 무조건 절약하고 아끼는 것은 아닙니다. 아자오에서 포도주가 생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 사람들은 술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젊은이들은 소박한 식사로 만족하면서 살아갑니다. 아자오에서는 의사, 외과 수술사, 요리사, 재단사 등의 직업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연친화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병이란 인위적으로 취유될 성질의 것이 아니며, 맛깔스러운 음식과 찬란한 의복은 이곳에서는 금지되어 있으므로, 요리사와 재단사가 처음부터 불필요합니다. 법정이 존재하지만, 변호사, 서기 그리고 공증인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치스런 삶에 의해 패망한 범죄자의 등골을 빼먹는 자로 간주될 뿐입니다. 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현명한 가부장의 판결에 의해 선고될 뿐입니다. 상기한 사항을 통해서 우리는 퐁트넬이 고대에 남아 있던 즐거운 삶의 유토피아를 지양하고 반-향락주의적이고 극기적인 생활관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르나르 르 보비에 퐁트넬 (1657 - 1757) 그는 약 100년을 살았다.

 

 

21. 가부장적 일부다처제: 그렇다면 퐁트넬의 무신론자 공화국의 가정은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을까요? 가정은 가부장이 다스리는 대가족 체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가정은 한 명의 가장, 두 명의 부인, 자식들 그리고 노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Fontenelle 98: 54). 아이들은 만 5세까지 가족과 함께 살아갑니다. 결혼 전에 신랑은 미래의 아내가 될 두 명의 처녀의 몸 상태를 샅샅이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몸을 살펴보기 위한 예식을 별도로 치르는 것은 아닙니다. 상기한 사항을 고려한다면, 아자오 유토피아는 여성 해방에 관해 어떠한 입장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글을 읽을 수 있지만, 글쓰기를 배울 수는 없습니다. 여성들은 법적인 문제라든가 정치에 개입할 수 없으므로, 글쓰기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퐁트넬은 시민 주체를 이야기하지만, 여성의 시민주체로 이해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대신에 만 6세가 되면, 국가는 남자든 여자든 간에 부모를 떠나 공동체에서 함께 살면서 교육받도록 조처하고 있습니다. 아자오에서는 무기력한 자, 정신 나간 자, 성적으로 육체적으로 무능력한 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22. 남존여비에 근거하는 전근대적인 결혼관: 이미 언급했듯이 퐁트넬은 프랑스 귀족의 방종과 패륜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모든 가장으로 하여금 두 명의 아내를 취하도록 설계한 것은 일견 모순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퐁트넬은 일부일처제가 인간이 꿈꾸는 이상적 형태의 남녀관계이기 때문에 실제 현실에서 올바르게 지켜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일부다처제를 도입함으로써, 아자오의 가부장들로 하여금 다소 유연한 삶을 누리도록 했습니다. 대신에 퐁트넬은 매춘이라든가, 혼외정사는 용인될 수 없도록 조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혼 제도는 현대의 상식으로 그리고 인구 분포를 고려할 때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퐁트넬이 설계한 가정 체제는 오로지 남성의 시각만 고려하여 설계된 것입니다. 게다가 여성의 수는 남성의 수의 두 배일 수 없습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은 같은 수의 암수 비율의 새끼를 출산하지 않습니까?

 

23. 정치 구도와 관직: 아자오에서도 행정직을 수행하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한 가옥에는 스물 개의 가정이 살아갑니다. “민치라고 불리는 스무 명의 가장들은 선거를 통해서 두 명의 대표를 선출합니다. 이들은 민치스트라고 명명됩니다. 민치스트들은 2년 동안 각자 자신의 거대한 가옥을 감찰합니다. 이것이 정치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나아가 40명의 민치스트들은 선거를 통해서 두 명의 대표를 선출합니다. 이들은 민치스트코아라고 명명됩니다. 모든 행정 구역에는 80명의 민치스트코아”, 혹은 20명의 가옥 대표가 존재합니다. 이것이 정치의 두 번째 단계입니다. “민치스트코아는 하나의 행정 구역을 관장하는 자입니다. “민치스트코아는 함께 모여서 두 명의 민치스트코아-아도에를 선출합니다. 이들이 모여서 형성되는 게 도시의 평의회입니다. 이것이 정치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도시의 평의회는 다시금 가장 현명하고 경험 많은 민치스트코아-아도에를 선출합니다. 이들이 모이면, 아자오의 모든 정책을 관장하는 국가 위원회가 결성될 수 있습니다. (Saage: 69). 퐁트넬은 당시 네덜란드의 법을 대폭 받아들여서, 상기한 방식의 반-봉건적이고 반-절대주의적인 정치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물론 남자들이 모든 권력을 행사한다는 사항이 하나의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를 제외하면, 모든 관직은 개개인의 능력과 품성에 따라 정해질 뿐, 재산, 출신 내지 인간관계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은 하나의 장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행하는 것은 몇몇 특권을 지닌 자들의 과두 정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이를테면 높은 자리에서 일한 민치스트코아-아도에는 다시 동일한 직책을 맡아서 계속 일할 수는 없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