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흐 (1885 - 1972)는 1918년에 뮌헨/ 라이프치히에서 제 1고를 발표하였다. "유토피아의 정신"에서 유토피아의 개념은 한마디로 이상 사회 내지 이상 국가에 대한 설계를 고려한 게 아니라, 하나의 원칙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개인 그리고 모든 존재의 근원 속에는 유토피아의 정신적 그리고 형이상학적 면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질풍과 노도”의 문체를 담은 이 책을 통해 에른스트 블로흐는 유토피아의 철학을 개진하였으며, 이는 나중에 (40년대 미국에서 집필되어 1959년에서 1959년 라이프치히에서 완결된) "희망의 원리"에서 완전한 사상적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는 동시에 “미적 체험”에 어떤 유토피아의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30년대 중엽에 불붙었던 모더니즘 논쟁에 상당하게 기여하였다.
미적 체험이란 에른스트 블로흐에 의하면 회화, 문학, 음악 등의 예술 작품을 때하는 인간의 “자기와의 만남 (Selbstbegegnung)”이다. 블로흐는 자기 만남의 진행 과정을 -“장식의 생산”이라는 제목을 지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술 감상자는 그림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는 갑자기 그림 속에 있었고, 바로 이 모습이 순식간에 그려졌습니다.” 이로써 예술 감상자와 예술적 대상 사이의 차이는 없어지게 된다. 미적 체험은 예술 작품을 마치 하나의 거울로 만들고, 그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게 된다.
미적 체험은 (인간이 맞이할지 모르는) 현실적 상을 통해서 예술 작품 속에 미래상을 전달하게 기능한다. 이로써 예술적 (가)상은 어떤 멀리 떨어진, 그러나 도달될 수 있는 미래로 향해 있다. 유토피아의 주관적 예견은 예술 작품에서 개관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모습으로 재현된다. (여기서 유토피아란 하나의 문학적 장르도, 그렇다고 해서 사회학적 개념도 아니다. 그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오히려 현실의 단순한 반영으로 뛰어 넘으려는 인간의 의지로 이해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주관적 의지로 인하여 미적 체험은 유토피아의 기능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또한 어떤 가능한 미래에 스스로 영향을 끼치려는 하나의 창조적 동기를 지니게 된다. (미적 체험은 나중에 블로흐의 예술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측된 상 (Vorschein)”을 형성시키는 모티브가 된다.)
일단 "유토피아의 정신"의 내용을 약술해 보자. 문학에 관한 장, 「우스꽝스러운 영웅」은 돈 키호테를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블로흐는 사적인 유토피아, 다시 말해 단순한 꿈들, 주어진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추하려는 노력을 담지 않은 사고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밖의 내용은 게오르크 루카치와의 의견 대립 그리고 비극에 관한 루카치의 내적 입장에 대한 반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극이란 블로흐에 의하면 “친절함의 선험 철학 그리고 현존재의 신적 충만성”을 지향한다고 한다.
블로흐는 바흐로부터 구스타프 말러와 슈트라우스에 이르는 음악 이론 및 음악사를 토대로 하여, 자신의 고유한 「음악의 철학」을 발전시킨다. 음악이란 블로흐에 의하면 미학의 영역 속에 있는 유토피아적 요소를 가장 이상적으로 전해주는 매개체라고 한다. 음악속의 “들리는 음성”은 인간의 “역사적 내적 방향”을 보여주는 데 적합한 예술적 장르인데, 이는 그림 (미술)과 글 (문학)에 비할 바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블로흐는 자신의 미적 개념이 오로지 미학의 영역에 국한되어 이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미적 체험과 미의 개념은 -「카를 마르크스, 죽음 그리고 묵시록」에서 기술되어 있는 바- 역사적 정치적 사회 과정에 원용되는 무엇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개념은 블로흐에 의하면 참다움과 선함과 결부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술적 혁명은 진선미의 결합이요, 정치적 혁명은 평등사상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일 수밖에 없다. 블로흐의 이러한 미학 이론은 표현주의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러시아 혁명의 철학과 결부될 수밖에 없었다.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은 1923년에 그리고 1964년에 다른 판으로 발표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기본적 골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아니다. 1923년도 판은 비교적 긴장감을 지닌 조직적 구도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 시대의 사상적 분위기에 대하여”라는 장은 과감히 생략되어 있다. 1964년 판은 1923년도 판을 약간 개작한 것이다. 작품은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비약적으로 때로는 예언자적 어조로 기술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의 정신"은 이후의 저작물에 비해서 일관적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1964년 판의 후기에서 블로흐는 본서가 자신의 사상을 예견하는 의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본 작품은 표현주의의 출현 당시 열광적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음악 비평가들의 반론에 부딪치기도 했다. 본서는 나중에 신비로우며 비약적인 언어 구사 때문에 독자들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의 유토피아적 입장은 나중에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비록 그의 이론이 아도르노에게서 비판적으로 수용되긴 했지만 말이다.
'27 Bloch 저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어떻게 블로흐와 접하게 되었는가? (0) | 2019.08.21 |
---|---|
블로흐 읽기 (3) 목차 (0) | 2019.05.15 |
자항과 반역의 기독교 문의 사항 (0) | 2019.02.10 |
테오도르 아도르노 versus 에른스트 블로흐 (0) | 2019.01.08 |
서로박: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 (2) (0) | 2017.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