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남한에서는 아도르노의 예술론을 많이 다루곤 한다. 사실 아도르노의 학문은 유대인의 시각에서 유럽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점에서 연구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나는 아도르노의 책 가운데에서 개인적으로 "미니마 모랄리아 (최문규 교수는 이 책을 한줌의 도덕으로 번역하였다.", "미학 이론 (홍승용 교수 역)" 등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인간의 희망과 전투적 낙관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아시아인들이 아도르노의 사상을 무작정 채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동양의 역사라는 배경이 있고, 핍박당하며 살아온 배달인으로서 어떤 미래지향적 이상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문학자들은 왜 그렇게 아도르노의 번역서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오히려 우리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문헌에서 미래의 삶에 대한 놀라운 사상적 단초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아도르노는 조심스럽게 체제옹호적 태도를 취했다. 물론 히틀러 치하에 겪었던 고통이 그로 하여금 신중하게 행동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학생 운동 당시에 휴강하자는 학생들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이 자리에서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들어보기로 한다. 68 학생운동 당시에 아도르노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사회학을 열심히 강의하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갈 무렵 어느 여대생이 브래지어를 풀어헤치고, 젖가슴을 드러낸 채 손에는 테디 곰을 들고, 단상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아도르노는 상반신을 홀라당 드러낸 여대생의 놀라운 퍼포먼스에 그만 아연실색 하였다. 이때 그는 강연을 중단하고, 경찰에 신속하게 전화를 걸었다. 어느 여대생이 이상한 짓거리로 자신의 강의를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여대생의 퍼포먼스는 장난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여대생은 아도르노를 포함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이 신랄하게 소련을 비판하는 데 대해 노골적으로 항의한 것이다. 테디 곰은 소련을 (혹은 아도르노?) 상징하고, 드러낸 젖가슴은 "사랑해 다오."라는 의미를 지닌다. 여대생의 퍼포먼스의 의미는 그 자체 자명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소련을 너무 미워한다는 것이다. 물론 소련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고찰할 때 전체주의 국가로서 비난 당해야 마땅하지만, 60년대의 상황으로 고찰할 때는 하나의 어떤 하자를 지닌, 그러나 가능성을 시험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젊은이들에게 각인되었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결과론적으로 비판할 게 아니라, 주어진 시대의 상황 속에서 과거 사람들의 입장을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남한에는 얼마나 많은 반공주의자들이 마르크스의 동상에 침을 뱉고 있는가?)
아도르노는 지적으로는 탁월했지만, 일상의 행동에서는 어설픈 태도로 일관하였다. 진실로 그가 여대생의 기막힌 의도를 예리하게 간파했더라면, 경찰을 부르는 대신에, 자연스럽게 그미를 안아주면서, 선생으로서 그미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여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래야 그는 진정한 은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마치 불교의 고승이 자신을 유혹하는 여자에게서 등을 돌리는 대신에 아무런 감정 없이 그냥 포옹하듯이, 그렇게 아도르노는 행동해야 옳았다. 게다가 그미는 여제자가 아닌가? 아도르노의 행동은 아직 인간의 욕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성욕을 마냥 거부하며 목탁을 두드리는 신출나기 스님의 태도를 연상시킨다. 아니나 다를까, 아도르노는 평생 상아탑 속에 안주하였고, 현실의 실질적 개혁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하다가, 일흔을 채우지 못하고 아쉽게 세상을 하직하였다.
베스트엔트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의 캠퍼스 가운데 하나. 인문 사회 과학 분야가 이곳에서 연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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