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국가에 관하여" (1)

필자 (匹子) 2022. 2. 15. 16:35

친애하는 J,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 354 - 430)와 그의 대표적 저작물 『신의 국가에 관하여 De civitas Dei』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당시는 매우 어수선한 시기였습니다. 비록 기독교가 323년에 공인되었다고 하더라도, 기독교 교회는 작은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기원후 410년에는 이교도 민족인 “서 고트”인들이 로마를 침공하였습니다. 비록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아니었지만, 전쟁은 로마 도시를 어느 정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때 로마인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고대의 신들을 더 이상 숭배하지 않고, 기독교 유일신을 신봉했기 때문에 찬란한 영화를 누려온 로마가 몰락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이었지요. 당시의 지식인들은 로마의 쇠망의 이유를 찾으려고 했는데, 상당수가 기독교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나중에 에드워드 기번 Edward Gibbon의 『로마제국 쇠망사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쇠퇴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지요.

 

나중에 용병들의 반란이라든가, 동로마 제국과의 결별 그리고 게르만 족의 침입 등이 로마 제국의 몰락에 대한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지만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의 침체 현상이 기독교 때문이라는 견해를 한마디로 일축하기 위하여 본서를 집필하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원후 4세기의 인물입니다. 예수가 사망한 다음에 사도 바울은 기독교 교회를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원시 기독교의 사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사도 바울은 타수스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생전에 예수를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를 전파하려면, 주어진 권력과 타협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예수는 묵시록을 신봉하면서 자연의 어떤 대재앙에 의해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주어진 사악한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믿음을 고수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 전복에 관한 예수의 믿음을 고수하면, 권력자는 이를 좌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 사상의 방향을 내세 중심으로 그리고 내면 중심으로 환치시켰습니다. 다시 말해서 중요한 것은 현세가 아니라, 내세이며, 외부 현실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정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기독교의 종파는 수많은 영지주의를 낳았고, 정통 기독교는 약 3백 년 동안 이러한 영지주의의 경향을 이단으로 매도해 왔습니다. 당시의 기독교 종파는 유럽 사회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등에서 완전히 확고한 토대를 다지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종파로 분화되어 나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원후 354년 로마 제국의 힘이 쇠락하기 시작할 무렵에 북아프리카의 카타스테 (현재는 알제리의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무척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총명함을 드러내었으며, 아버지가 신봉하던 마니교에 침잠하기도 합니다. 친애하는 J, 원래 위대한 종교인치고 어느 순간에 놀라운 신앙의 경험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기독교에 개종하게 되었는가? 하는 내용을 그의 『고백록』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86년에 밀라노에서 알리피우스와 함께 어느 친구의 집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날 혼자 정원을 거닐고 있다가, 지난날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뽕나무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이때 신이 나타나 “책을 거머쥐고 읽어라 Tolle lege”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로마서」 제 13장 13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취하며,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 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하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마십시오.” 성서의 말씀은 바로 지금까지 방탕하게 살아온 자신을 조용히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날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기독교에 귀의하여 평생을 보냅니다.

 

이제 『신의 국가에 관하여』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책은 총 22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책으로서 기원후 413년에서 426년 사이에 집필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비교적 말년의 시기에 자신의 대표적인 문헌을 완성한 셈입니다. 첫 번째의 10권은 기독교가 과연 로마의 황폐화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다른 종교가 로마에 끼친 영향 등을 비판적으로 추적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불행한 사건의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키케로 Cicero는 자신의 책 『공화국에 관하여 De re publica』에서 로마 제국을 국가의 이상으로 묘사한 바 있는데,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에는 정의로움이 자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은 처음부터 로물루스의 형제 살인에 의해 건립된 나라라고 합니다. 기원전 4세기 로물루스는 자신의 친동생 레무스를 살해하고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이 나라가 바로 로마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형제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지상에 자리하고 있는 제국의 유형적인 특징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도래한 뒤부터 이러한 전쟁 사건은 현저하게 감소합니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는 게르만족이 기독교를 신봉한 뒤부터 타민족을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마찬가지로 로마인들 역시 기독교가 합법적으로 용인된 이후로 과거와는 달리 행동을 취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의 고결한 힘이었다고 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