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유럽 정치

틸로 자라친의 '독일은 없어질 것이다'

필자 (匹子) 2015. 10. 30. 15:57

(때로는 하자를 지닌 책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더 이상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훌륭한 책, 좋은 책에 관해서 침묵을 지킨다. 가장 불행한 여인이 잊혀진 여인이듯이, 가장 불행한 것은 탁월한 책이 외면 당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 책의 제목을 "독일은 멈추고 있다."로 번역했는데, 이는 오역이다. 무엇을 멈춘단 말인가? abschaffen 이라는 단어는 "철폐하다" "없애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이다. 게다가 독일인들은 현재형의 문장으로 미래를 표현한다.)

 

2010년에 독일에서 간행된 책 한권이 무려 120만부나 팔려나갔습니다. 소설이 아니라, 전문서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한 반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틸로 자라친 (1945 - )의 『독일은 없어질 것이다 Deutschland schafft sich ab』라는, 다소 도전적인 제목을 지닌 책을 가리킵니다. 자라친은 연방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독일의 경제 그리고 사회보장제도 등에 관해서 나름대로의 의견을 개진해온 보수 논객입니다. 현재 유럽의 사회보장을 위한 비용은 자라친의 견해에 의하면 과도하게 징수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과 연급생활자에게 좋을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그리고 고도의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엘리트들에게는 엄청난 손실이라는 것입니다. 틸로 자라친의 견해는 히틀러의 정책 하나를 연상시킵니다. 제3 제국 당시에 히틀러는 경제적 효용 가치를 따지면서, 체제비판자, 정서 장애인 그리고 실업자 등을 모조리 강제수용소에 가둔 적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인간은 인간이고, 능력 없는 인간은 사회적 쓰레기라는 발상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며, 그 자체 비인간적입니다.

 

 

 

 

 자라친은 그의 책 『독일은 없어질 것이다』에서 이슬람권 출신의 재독 외국인들과 이들의 사회적 통합을 논하고 있습니다. 현재 독일인들은 자식을 많이 낳지 않는 데 비해서 아랍 국가, 특히 재독 터키인들은 자식을 많이 낳습니다. 터키인들은 예컨대 여섯 명의 자녀를 낳고, 독일 시정부로부터 자녀 수당을 받는데, 이 자녀 수당으로 여덟 식구의 최소한의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언젠가는 이들의 인구가 증가되어, 독일 내에서 커다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자라친은 자신이 결코 인종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가령 유럽 국가 출신의 사회적 동화의 노력, 비 유럽국가, 가령 중국, 베트남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 사람들은 독일에 정착하여,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독일인과 결혼하여, 독일인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자라친의 견해에 의하면 독일은 가급적이면 외국의 유능한 인재를 받아들여서, 이를 사회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무작정 “외국인 나가라!”라는 식의 구호를 외치는 것은 어리석은 자세라고 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2011년 이후에 상당부분 채택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베트남 출신의 독일 보건 복지부 장관으로 근무하던 필립 뢰슬러이다. 그의 정계 진출은 독일 내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랍 출신 사람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슬람 문화를 무조건 고수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사회적 통합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아랍 출신의 독일 체류자들 가운데 약 20 %의 사람은 자라친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존재라고 합니다. 독일로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유능한 외국인 인재들이 독일인으로 귀화하여 살아가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자고로 사회적 통합은 사회적 통합의 성과에 의해서 성패가 좌우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아랍 출신, 특히 터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동화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독일에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젊은 터키 남자들은 결혼 대상으로서 (독일 여인이든 다른 나라의 여인이든 간에) 독일에 거주하는 여성을 선택하지 않고, 터키로 건너가서, 터키 여성을 아내로 데리고 온다고 합니다. 이는 통합의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합니다. 자라친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통합을 싫어하는 외국인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독일 국가는 통합을 위해서는 자식들로 하여금 머리에 두건을 쓰고 다니도록 가르치는 터키 기성세대를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유럽에는 이렇게 두건을 쓰고 다니는 여성들이 참으로 많다.

 

독일인들은 외국인들이 독일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지만, 두 가지 사항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 하나는 독일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부활절에 공공연한 장소에 양을 잡아먹는 터키 사람들의 식습관입니다. 터키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사람의 숫자는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알아야 합니다. 즉 외국인 법에 관한 한 프랑스와 독일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항 말입니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서 프랑스 여성과 결혼한 아랍 남자는 프랑스 국적을 취득합니다. 그런데 독일인과 결혼하여 10년 독일에서 살아온 한국 여자는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 어렵습니다. 사적인 예이지만, 내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독일인 친구에게 “독일의 외국인 법이 혈통 중심이라 너무 까다롭다.”고 푸념을 터뜨린 적이 있습니다. 이때 독일인 친구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한국의 외국인 법이 독일의 그것보다도 더 까다롭다.” 각설 시간이 흐른 뒤에 독일과 프랑스는 외국인 정책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제제가 심해지는 반면에, 독일에서는 외국인의 체류에 대해서 비교적 온건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바라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다시 자라친의 책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자라친의 주장에서는 세 가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첫째로 자라친은 터키 인들을 전체적으로 매도하고 있는 경향을 드러냅니다. 이슬람교도 가운데 평화주의자들이 상당히 많은 것처럼, 터키 사람들 가운데에도 독일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젊은 계층의 남녀들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거의 독일 사람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들이 감히 독자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까닭은 견해 차이로 인하여 부모와 정을 끊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세계관의 차이를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자라친의 판단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실용주의적 사고 내지 엘리트 의식입니다. 그는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 재화 등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외국인만을 받아들이고, 능력 없는 외국인들을 국외로 추방시키는 것만이 능사인가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은 유능함이 아니라, 선이라든가 이타주의가 아닐까요? 셋째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자라친의 주장 속에는 이슬람 과격 테러에 대한 혐오감이 내재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알카에다 조직과 터키 사람들 모두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자라친의 주장 속에는 독일에 사는 독일인들의 다수의 생각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실 터키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독일 인구가 감소하게 되면, 고도의 과학 기술을 이끌 인재들의 수는 독일에서 현저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이는 독일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라친의 이러한 진단을 틀리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는 섞이고 뒤섞이는 법입니다. 독일인들은 무조건 일류 엘리트 국가, 최고의 선진 기술 등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고수하려는 자세 자체가 하자를 지니고 잇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의 모든 산업 구조는 극동 지역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아닌가요? 또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독일은 인종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국가가 아닙니다. 대학살 사건 이후 독일과 독일인은 유대인과 유대 문화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인종적 종교적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가령 네오 나치와 베를린에 거주하는 터키 출신의 젊은이들 사이의 잠재적 대립은 언젠가는 돌출하여 사회적으로 나쁜 파장을 불러올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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