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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뷔히너의 보이체크 (2)

필자 (匹子) 2022. 11. 30. 10:52

(8) 도대체 세상의 무엇이 임을 배신하게 하는가?

 

제 6장: 고수장이 드디어 마리의 방에 들어와서 은근히 성욕을 드러냅니다. 마리는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나중에는 그가 시키는 대로 옷을 벗고 성관계를 맺습니다. 제 7장: 보이체크는 골목에서 서성거립니다. 마리의 배신을 생각하자 순식간에 가슴이 쓰려옵니다. 과연 마리가 고수장과 살을 섞었을까? 보이체크는 이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제 8장: 보이체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의사를 찾습니다. 의사는 매일 강낭콩을 건네줍니다. 의사는 매일 강낭콩을 먹은 뒤에 환자의 뇌리에 떠오르는 환영을 주의 깊게 듣습니다. 보이체크는 박사에게는 마치 실험쥐와 같은 객체에 불과합니다. 제 9장: 장교와 의사가 거리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보이체크가 나타났을 때 두 사람은 주인공에게 화를 냅니다. 보이체크에게 은근히 마리의 통정 소식이 전해집니다. 주인공은 몹시 당황해 합니다. 제 10장: 학생들은 교수의 방에서 강의를 듣습니다. 박사는 보이체크를 데리고 와서 학생들 앞에서 실험 인간으로 곤욕을 치르게 합니다. 제 11장: 보이체크는 보초병의 숙소에서 친구에게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을 토로합니다. 제 12장: 술집에서 군인들이 젊은 여자들과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와 고수장도 있습니다. 보이체크는 고통을 억누르면서 두 사람을 바라봅니다. 제 13장: 주인공은 들판에서 기이한 명령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은 계집늑대 (마리)를 죽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제 14장: 야밤에 보이체크는 환각 속에서 들었던 소리를 동료에게 전합니다. 안드레스는 이를 무시하고 잠을 청합니다. 제 15장: 술집에서 주인공은 고수장과 마주칩니다. 서로 힘겨루기를 행하지만, 보이체크는 힘센 고수장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연적 戀敵으로부터 사랑을 되찾으리라는 욕구는 바로 이 대목에서 사정없이 꺾이고 맙니다.

 

(9) 타살은 자신을 살해하는 행위와 동일한가?

 

제 16장: 보이체크는 유대인 상점에서 단도를 구입합니다. 제 17장: 마리는 자신이 저지른 불륜 행각을 후회합니다. 고수장은 마리를 성적 노리개로 대했던 것입니다. 마리는 성서를 읽으면서 위안을 구합니다. 제 18장: 보이체크는 자신이 죽은 뒤에 유품을 전해주라고 친구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친구는 이를 병든 친구의 헛소리로 간주합니다. 제 19장: 마리는 집 앞에서 여러 소녀들과 할머니에게 동화를 들려줍니다.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별에 관한 동화였습니다. 보이체크는 마리에게 어디론가 가자고 요구합니다. 제 20장: 보이체크는 도시를 떠나 숲으로 마리를 데리고 갑니다. 마리가 그곳을 떠나려고 했을 때 보이체크는 칼을 꺼내서, 그미를 찔러 죽입니다. 제 21장: 멀리서 행인 두 사람이 비명소리를 듣고, 사건 현장을 찾습니다. 제 22장: 보이체크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술집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가 보이체크의 옷에서 피 자국을 발견합니다. 주인공은 황급히 그곳을 떠납니다. 제 23장: 거리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소문을 퍼뜨립니다. 도시 근교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제 24장: 보이체크는 연못 근처로 다가와서 칼을 찾습니다. 범행 도구를 감추는 게 좋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 25장: 주인공은 칼을 찾아서 연못 속에 던져버립니다. 제 26장: 사람들은 시체를 발견하여 마리가 어떻게 살해되었는가를 확인합니다. 좋은 살인, 진정한 살인,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요구할 수 없는 멋진 살인이야. 우리는 오랫동안 이러한 살인극을 접할 수 없었어.제 27장: 카를이라는 이름을 지닌 백치가 보이체크와 마리의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보이체크가 과자를 주겠다고 말했을 때 백치는 아기를 안은 채 도망칩니다.

 

(10) 작품의 특징 그리고 하층민에 대한 뷔히너의 애정 어린 시각

 

자고로 종래의 고전극은 대체적으로 유장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직조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뷔히너의 「보이체크」에서는 구어체가 많이 발견됩니다. 극작가는 의도적으로 이를테면 문법적으로 잘못된 표현, 불완전한 문장 그리고 외침 소리 등을 과감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사실과 다름이 없는 내용 그리고 극적 긴장감 등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등장인물들이 보이체크와 전혀 대화를 나누지 못할 정도로 대화의 핀트가 어긋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이체크와 주변 인물들 사이의 대화는 놀랍게도 전혀 소통되지 않습니다. 이는 주인공의 소외된 모습과 그의 고독한 내면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뷔히너는 여러 계층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작품 속에 대비시킴으로써 소통단절과 대화 부재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었습니다. 예컨대 박사는 어떠한 실수도 용인하지 않는 표준 독일어 문장을 사용합니다. 이에 반해서 보이체크와 마리가 사용하는 독일어는 하층민에 상응하게 오류 섞인 방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밖에 우리는 인명에 관한 사항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뷔히너는 주인공을 비롯한 하층민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보이체크”, “마리”, “안드레스”, 하녀 “케테”, 마리의 이웃여자 “마르그레트” 그리고 백치 “카를”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이들과는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름은 처음부터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수장”, “장교”, “박사”, “유대인”, “가게 소유주”, “교수” 등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극작가는 이들의 사회적 역할만을 중시했을 뿐, 이들의 개별적 특성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층민에 대한 뷔히너의 애정 어린 시각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11) 보이체크는 왜 마리를 죽여야 했는가?

 

보이체크의 살해 동기는 크게 세 가지 사항으로 언급될 수 있습니다. 작품은 개별적 장에서 이러한 살해 동기들에 대한 여러 가지 암시를 던집니다. 첫째로 보이체크의 살해 동기는 고수장에 대한 질투심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이체크의 능력은 미약합니다. 그것은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성적인 차원에서 고수장의 그것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는 제 15장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공격 성향의 방향을 애인에게 치환시킵니다. 종로에서 뺨 맞은 자가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보이체크의 살인 행위는 일종의 심리적 투사 投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보이체크의 살해 동기는 주인공의 심리적 장애에 기인하는지 모릅니다. 보이체크는 가끔 어떤 기이한 소리를 듣습니다. 이는 정신 병리학적으로 고찰할 때 환각 Halluzination으로 인해 나타나는 환청에 해당합니다. 환청 내지 환각은 정신 분열의 증상입니다. 의사는 주인공에게 항상 완두콩만 먹으라고 강요합니다. 이로써 그는 보이체크의 육체 속에 결핍된 영양 성분을 보충시켜주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육체적 상태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박사는 실험을 통하여 의학적으로 성공을 거두려고 의도합니다. 중요한 것은 완두콩만 먹고 생활하면 심리적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가? 하는 물음이 아닙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결핍된 영양 주인공을 심리적으로 비정상적으로 만들었고,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작품의 맨 처음에 주인공의 심리적 불안이 언급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셋째로 작품의 주제는 당시 사회의 심층적 문제와 관련되고 있습니다. 보이체크는 주위의 모든 인간으로부터 핍박당하며 살아가는 하층민이었습니다. 그는 주어진 사회로부터 해방되고 싶었습니다. 장교, 박사 그리고 고수장 등은 여러 측면에서 보이체크에게 감내하기 힘든 압박을 가했습니다. 마리에 대한 살인 행위는 주어진 계급 사회에 대한 하층민의 도전 내지는 상처 입은 채 살아가는 자의 저항의 제스처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보이체크는 마리를 칼로 찌르고 있다.

 

(12) 극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

 

친애하는 H, 당신은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설득력을 지닌다고 생각하는지요? 어쩌면 치정 살인극으로 단정하고 책을 덮는 것은 성급한 처사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주인공이 처한 사회적 배경 내지 종속 구도의 계급 사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장교, 박사 그리고 고수장 등은 인간으로서 절대로 행하지 말아야 하는 모욕적 언사를 보이체크에게 마구 퍼붓습니다. 장교는 천한 출신 운운하면서,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사생아를 낳게 한 보이체크의 행동을 부도덕하다고 규정합니다. 박사는 보이체크를 마치 생물실의 흰쥐처럼 취급하며, 완두콩만 먹으라고 강요합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돈을 벌려면, 보이체크로서는 박사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수장은 보이체크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사적으로 그를 모독합니다. 게다가 보이체크는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허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타인에 비해서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의 삶은 억압당하고 항상 타인의 발아래에 엎드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의 내면은 무의식적인 분노와 절망감으로 뒤엉켜 있었지요. 그럼에도 그는 지금까지 힘든 삶을 버텨 왔습니다. 오로지 마리와의 애정 관계가 내면의 버팀목이었지요. 그러나 마리는 보이체크의 버팀목을 산산조각 나게 행동했습니다. 마지막 버팀목이 사라지게 되자, 보이체크는 모든 사회적 중압감에 대해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주인공이 마리를 살해한 행위는 한편으로는 그 자체 자기 파멸의 행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억압 구조의 냉혹한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는 극단적 조처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