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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티크의 '윌리엄 로벨씨의 이야기'

필자 (匹子) 2022. 5. 26. 10:45

독일의 낭만주의 소설가, 루드비히 티크 (1773 - 1853)의 "윌리엄 로벨 씨의 이야기"는 세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으로서, 1795/ 96년에 익명으로 발표되었다. 주인공, 윌리엄 로벨은 영국의 부유한 집안 출신의 청년으로서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는 다소 유약한 심리 구조를 지닌 자로서, 타인의 유혹에 쉽사리 빠져드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에게 자기 의지가 부족해서 인지, 아니면 그가 섬세하고 공상적이며, 정서적 분위기에 약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예컨대 윌리엄 로벨은 이웃의 아름다운 처녀, 아말리 윌몬트에게 깊은 연정을 느낀다. 그러나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 건네지 못하다가, 그미를 떠나보내고 만다.

 

주인공에게는 에드워드 버톤이라는 친한 친구가 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아버지 월터의 요구에 따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등지로 여행을 떠난다. 친구는 말하자면 그곳에서 몇 년간 교양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윌리엄은 친한 친구마저 떠나보낸 데 대해 매우 우울했고, 그후 고독하게 지낸다. 이러한 우울한 정조는 주인공을 몇 년 뒤에 파리로 여행하게 작용한다. “수많은 배우의 도시”, 파리는 주인공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윌리엄은 우연히 밝고 명랑한 이탈리아 처녀를 사귄다. 그미의 이름은 로자였는데, 머리가 비상하고, 향락적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이후에 전개되는 거의 모든 일은 로자와 관계된다. 윌리엄은 로자를 통하여 나이든 백작 부인, 루이제 블렌비유를 알게 된다. 블렌비유 부인은 우아하게 생긴 과부였다. 윌리엄은 부인에게 깊이 빠져든다. 블렌비유 부인을 통해 윌리엄은 “인간 존재의 거대한 비밀인 육체적 쾌락”을 맛본다. “왜냐하면 오로지 관능성이야 말로 우리라는 기계 속에 도사린, 첫 번째 굴러가는 바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어느새 어른이 된 것처럼 느낀다. 가령 그는 육체적 욕망이 인간 개개인을 생동하게 만든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윌리엄은 여행을 계속하여, 로마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은 약간 천박한 계급 출신의 로잘리네라는 처녀였다. 로잘리네는 돈이 없어서 많이 배우지 못했는데, 눈동자만큼은 너무나 순수하고도 맑았다. 게다가 그미의 육체는 너무나 풍만하여 주인공은 거의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달 밝은 밤에 윌리엄은 로잘리네를 공터에서 만난다. 그는 결혼을 약속하며, 그미와 성 관계를 맺는다. 약 몇 달이 흐른다. 로잘리네는 결혼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윌리엄이 결혼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을 때, 그미는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윌리엄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로자와 재회한다. 로자는 주인공을 어느 비밀스러운 단체로 안내한다. 그곳을 다스리는 사람은 “안드레아 코시모”라는 남자였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윌리엄은 격렬한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안드레아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집에서 보았던 초상화 속의 어느 남자와 매우 유사하지 않는가? 며칠 후 윌리엄은 영국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접한다.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 했으며, 월터 버톤이 술수를 사용하여 아버지의 유산을 가로챘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주인공을 절망감에 빠지게 했다. 윌리엄은 황급히 영국으로 돌아간다.

 

윌리엄은 아버지의 죽음도 옛 친구, 에드워드의 아버지, 월터 버톤의 짓인지 모른다고 지레 짐작한다. 윌리엄은 아버지의 복수를 결심한다. 친구 에드워드를 독살하는 일이 바로 그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주인공은 작전을 변경하여, 친구의 여동생 에밀리를 유혹하여, 열 아홉 나이의 순결을 빼앗아버린다. 순결을 빼앗을 수 있지만, 내면의 그미의 사랑을 폭력으로써 획득할 수는 없다. 윌리엄이 에밀리의 순결을 빼앗는 데는 성공했으나, 주위로부터 얻게 된 것은 이웃의 냉대와 질시였다. 게다가 주인공은 아버지의 재산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한다.

 

주인공은 거의 알거지 신세로 파리에 도착한다. 그것에서 윌리엄은 카드 게임으로 삶을 연명해 나간다. 주인공은 순박하고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처녀, 로잘리네와 함께 했던 삶 그리고 그미의 자살을 계기로 세상 삶에 대해 커다란 애착을 느끼지 못한다. 세상사는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냥 기계 바퀴처럼 황량하게 굴러갈 뿐이다. 그렇지만 윌리엄은 조만간 모든 고립주의를 떨치려고 생각한다. “승리감을 구가하면서 사회의 상부에 서성거리고 있구나. 삶의 고통과 기쁨은 나를 떠나 있다. 우연과 임의로움이 내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윌리엄은 로마로 돌아간다. 귀향길에서 주인공은 강도를 만나, 파리에서 조금 번 돈을 모조리 빼앗긴다. 강도떼들은 그를 끌고 가서, 한 패로 일하자고 요구한다. 윌리엄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강도의 일원으로 일해야 한다. 비참한 환경 속에서 그의 마음을 지탱해 준 것은 언젠가는 비밀스러운 단체의 대표인 안드레아 코지모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내 존재의 열쇠를 지닌 자는 바로 안드레아일 것이다. 그는 내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삶의 자물쇠를 풀어줄 게 틀림없다. 나를 보다 드높은 세계로 인도하게 될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내면의 조화로움을 찾을 수 있게 될 거야.”

 

윌리엄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강도 집단의 구역을 몰래 탈출한다. 로마에 도착한 주인공은 천신만고 끝에 찾던 사람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죽어가고 있었고, 만남을 거부한다. 결국 안드레아는 유언장을 남기고 사망한다. 유언장에는 안드레아가 영국인이며, 워터루라는 이름을 지녔다고 씌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안드레아 코지모는 윌리엄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는데, 놀라운 야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인간에 대한 지배자가 되기 위하여 비밀스러운 집단을 결성하였다. 어느 날 안드레아는 로자라는 처녀에게 무언가를 명령한다. 그것은 바로 윌리엄 로벨이라는 영국 청년을 유혹하여 살해하는 일이 바로 그 명령이었다. 로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너를 패망시킴으로써 안드레아는 너의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었어.”

 

윌리엄은 충격에 휩싸인다. 자신에 관한 안드레아의 계획은 바로 친구 아버지, 월터 버톤에 대한 자신의 계획과 동일하지 않는가? 윌리엄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방황한다. 어느 날 칼 빌몬드라는 남자가 그 앞에 다가와서 결투를 신청한다. 윌리엄은 결투 끝에 총을 맞고 사망한다. 칼 윌몬트는 윌리엄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이 에밀리의 약혼자인데, 죽은 에밀리 버톤을 복수하려고 영국에서 지금까지 뒤를 추적했다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칼이 젊은 시절 주인공의 첫사랑 아말리 윌몬트의 남동생이었다는 점이었다.

 

"윌리엄 로벨 씨의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낭만주의의 전통과는 전혀 다른, 어떤 합리적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건의 진행 과정은 마치 거울 속에서 정 반대로 비치듯이 그렇게 다시금 주인공에게 역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이한 작품 구성 방식은 18세기 유럽의 통속 소설 내지 프리드리히 실러의 "영혼들의 무리 (Geisterschar)"에서 이미 나타난 바 있다. 참고로 한 가지 사항만을 덧붙이기로 하자. 티크의 소설 집필의 모범이 된 작품은 리처드슨의 "클라리사 (Clarissa)" (1748)였다고 한다. 실제로 소설의 주인공은 리처드슨의 작품의 등장 인물 로버트 로블락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