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플라톤의 '국가' (1)

필자 (匹子) 2018. 10. 24. 15:05

(1) 플라톤의 문헌『국가』: 친애하는 P, 오늘은 플라톤 (기원전 427 - 347)의 『국가 (Pολιθεια)』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작품은 기원전 380년에서 370년 사이에 집필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책으로 발표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 (1482 - 1484)의 라틴어 판이었습니다. 이 두툼한 책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떠한 계기에 의해서 완성되었는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국가』가 플라톤의 장년기에 집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중기 작품에 해당하며, 개별적 대화 그리고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교육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책은 도합 열 개의 장으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 장의 서술 형식은 플라톤의 초기 작품을 연상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첫 번째 장이 나중에 책에 첨부되었다는 것을 쉽사리 추측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

 

 

(2) 제 1장, 정의란 무엇인가?: 첫 번째 장을 살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계기를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벤디스 축제의 기간에 제자이자 플라톤의 동생인 글라우콘과 함께 아테네에서 피레우스로 여행을 떠났는데, 케팔로스 Kephalos라는 부자의 집에 거주하면서 여러 식객들과 정의에 관해서 토론하게 됩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프로타고라스, 이온, 에우튀프론, 라헤스, 카르미데스 그리고 뤼시스 등입니다. 대화는 무척 조심스럽게 전개되지만, 논객들은 제각기 자신의 관점에서 논제를 언급합니다. 그래서 정의에 대한 견해들은 서로 어긋나게 오고 가다가 결국에는 아무런 결론을 맺지 못하고 하나의 아포리아로 끝나게 됩니다. 이를테면 정의는 사회의 보편적인 선의 개념으로 이해되지만, 급진적 소피스트로 알려진 트라쉬마코스 Thrasymachos에 의하면 강자의 힘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후자는 마키아벨리 Machiavelli식의 권력론으로 정의가 무엇인지를 피력합니다.

 

(3) 정의로움에 관한 추상적 논증은 의미가 없다: 플라톤은 정의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메논 Menon」과 「고르기아스 Gorgias」에서 사용한 바 있는 새로운 문학적 방식을 도입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신이 과거에 언급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로써 플라톤은 정의에 관한 추상적 논증만으로는 모든 것을 충분하게 밝힐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 까닭은 정의로움은 플라톤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개개인들의 “행복감 Ευδεμονια”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플라톤은 미덕과 정의에 관한 소피스트들의 경박한 말장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의에 관한 문제는 “존재 지시적 endeiktisch”이고 통합적 가르침이라는, 이른바 보다 높은 관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친애하는 P, 이 점을 고려한다면 제 1권은 정의에 관한 아포리아를 교묘하게 반박하면서, 다른 문제를 제시하기 위한 서문과 다를 바 없습니다.

 

(4) 문제는 제도에 있다.: 상기한 입장은 두 번째 장의 첫 부분에 해당하는 글라우콘, 아다이만토스 그리고 소크라테스 사이의 대화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들 대화의 목적은 단순히 정의로움이 불의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대화자들은 오히려 인간이 행복감을 추구하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선 축복의 감정 내지 행복감의 본질을 밝히려고 하며, 나아가 그 작용 및 유용성을 해명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의향은 가령 『향연 Symposion』에서의 소크라테스의 연설 그리고 『파이드로스 Phaidros』에서 이미 나타난 바 있습니다. 행복감의 본질과 그 기능을 파악하는 작업은 어쩌면 인간의 능력으로 행해질 수 없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사고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즉 사람들은 정의로움의 현상을 개별적 인간들의 심리 영역 속에서 찾지 말고, 정의로움과 관련되는 모든 것이 발견될 수 있는, 어떤 규범적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델이 바로 도시 형태를 지닌 국가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결코 역사적 현실에서 발견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상 속의 이상적 모델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경험적으로 주어진 stochastisch” 게 아니라, 하나의 이상으로 “결정된 deterministisch” 모델입니다.

 

(5)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세 가지 계층: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 그리고 아다이만토스 사이의 대화는 제 3장에서 계속됩니다. 이들의 대화는 계층 국가내의 국가관을 위한 “교육 paideia”의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국가에는 세 가지 계급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농부와 “수공업자 Δεμιυργοι”의 계급, “파수꾼 Φλακες”의 계급 그리고 “지배자 Αρχοντες”의 계급입니다. 이들의 수는 많으며, 공동체를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직업을 행하며 살아갑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행복감과 관련하여 이들의 개별적인 삶에 관해서 세부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플라톤은 자신의 출신 성분 그리고 역사적 사회학적 조건을 고려할 때 처음부터 사회적 정의에 대해서 그다지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후의 학자들은 이 점과 관련하여 플라톤을 신랄하게 비판하곤 하였지요.) 둘째로 세 가지 계층으로 축조된 이상 국가가 건설되면 하층 계급 역시 자동적으로 행복한 삶을 맛볼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층계급 역시 교육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플라톤과 그의 제자들 

 

(6) 군인들을 위한 교육, 음악과 체조: 플라톤은 이상 국가 내에서의 교육과 관련하여 중간 계급인 파수꾼들에 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언급합니다. 파수꾼들, 다시 말해서 군인들은 플라톤에 의하면 용맹심과 분별력을 지녀야 할뿐 아니라, 철학적 식견도 지녀야 합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음악을 첫 번째 중요한 과목으로 택해야 합니다. 두 번째 중요한 과목으로서 플라톤은 체조 훈련을 제시합니다. 피교육자들은 음악과 병행하여 문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문학 교육에 있어서 어떤 제한 사항이 존재합니다. 예컨대 저자는 호메로스의 신에 관한 이야기를 절대로 (국가내의 인민들을 교육시키는 재료로) 사용하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신에 관한 이야기, 즉 신화들은 -인간에 의해 근접되기 어렵기 때문에- 결코 교육을 위한 모델로 채택될 수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신화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는 군인은 경박해지고 제어할 수 없는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므로, 군인 본연의 의무를 다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군인들 가운데에서 국가를 다스리는 자가 배출될 수 있다고 합니다.

 

(7) 세 가지 계층 사람들의 덕목: 네 번째 장에서 플라톤은 제각기 계층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덕목을 언급합니다. 지배자는 무엇보다도 지혜를, 파수꾼 (군인)은 용감성을, 수공업자는 사려 깊은 척도를 고수해야 합니다. 세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정의로운 품성을 지녀야 하는데, 오로지 이들이 정의로움을 지녀야만 계층 간의 결속이 다져진다고 합니다. 이를 따라서 정의로움을 위해서는 지배자는 “이성 logistikon” 내지는 철학적인 무엇을, 파수꾼 (군인)은 “용기 thymoeides”를, 수공업자는 “충동성 epithymēkon”을 제각기 고수해야 한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심성을 인간의 신체 내지 인종으로 비유합니다. 지배자는 인간신체의 머리에 비유될 수 있으며, 지혜를 사랑하는 그리스인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파수꾼 내지 군인은 인간 신체의 몸통 부위에 비유될 수 있는데, 남부 유럽 인종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농부 내지 수공업자들은 신체의 사지에 비유될 수 있는데,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북구 인종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어쨌든 정의로움은 국가의 조화로운 일원성을 가능하게 하는 무엇입니다. 조화로운 일원성은 사회의 구성원 모두를 합심하게 한다는 점에서 정의로움을 실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라고 합니다.

 

(8) 군인계급에만 해당되는 사유재산 철폐와 남녀평등: 다섯 번째 장은 (아주 현대적으로 들리는) 특성에 관한 국가 철학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파수꾼 (군인) 계급에 해당되는 사항으로서 두 가지 강령을 내세웁니다. 그 하나는 사유 재산 철폐이며, 다른 하나는 남녀의 동등한 권한입니다. 이는 당시의 도시국가의 상황을 고려할 때 과히 혁명적 발상을 지니고 있으며,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끼친 혁명적 영향력에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특히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놀랍게도 여성과 아이들이 공동체에 속하게 될 때까지 공동으로 교육시킵니다. 이러한 사항은 놀랍기 이를 데 없는 전대미문의 내용입니다.

 

(9)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 국가, 동굴의 비유: 이상 국가의 실현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배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플라톤은 변증법 (철학), 이념 이론 (윤리학), 체육 그리고 음악 등을 필수 과목으로 정해 놓습니다. 특히 일곱 번째 장에서는 유명한 국가 철학적인 비유로서 동굴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친애하는 P, 언젠가 나는 동굴의 비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당신에게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동굴 속의 노예는 자신이 처한 부자유를 인식하지 못하고, 노예의 삶을 천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로써 그들은 바깥의 밝은 자유의 공간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노예들이 어떻게 자신의 착각을 인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우매함을 극복하고 보다 지혜롭게 변하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의 “맹목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인간은 노예의 상태를 극복하고, “순수한 ‘선의 형체’의 투시 (Ιδεα τυ αγάθυ)”의 단계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10) 네 가지 좋지 못한 정치 형태: 플라톤은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의 장에서 네 가지 국가의 정체를 세밀하게 언급합니다. 즉 “금권 정치 Timokratie”, “과두 정치 Oligarchie”, “민주 정치 Demokratie”, “참주 정치 Tyrannis”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플라톤은 이러한 정치 제제 속에서 결코 정의가 자리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민주주의의 형태 속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민의 사고는 현자의 그것에 비해서 천하고 저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장에서 플라톤은 시인과 예술가를 비판합니다. 이들은 국가의 규율을 어지럽히는 체제 파괴적인 방해분자 Störenfried 들이므로 국가로부터 배제되어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마지막으로 정의를 찬양하고, 죽음 이후의 영혼의 삶에 관한 신화에 관한 언급으로 대화를 끝맺습니다.

 

파피루스로 보존된 국가의 문헌 

 

(11) 신화를 다루는 작가는 저열하고 체제 파괴적인가?: 친애하는 P, 여기서 다시금 플라톤의 예술론에 관해 요약하려고 합니다. 플라톤의 “시학”에 대한 언급은 세 가지 영역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예술이 얼마만큼의 진리를 담고 있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단언합니다. “예술과 포에지는 어떤 저열한 존재론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념들이 모사된 상 (구체적인 세계)에 대한 모사 상만을 표출시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예술은 플라톤에 의하면 오로지 간접적으로 아름다움의 이념에 참여할 뿐입니다. 현실의 현상에 대한 모방만을 일삼는 미메시스 (Μιμησις)로서의 예술은 궁극적으로 저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플라톤은 작용 미학적인 시각에서 예술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술은 열정을 표현함으로써 예술 수용자의 마음속에 열정만을 끓어오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호메로스 Homer는 현혹과 사기술로 가득 찬 신의 이야기를 남발함으로써 부정하고 탐욕적인 행동 양태를 촉진시킨다고 합니다. 상기한 두 가지 예술적 특성으로써 플라톤은 “작가는 기만하는 자”라고 단언했습니다. 플라톤의 시학적 사고는 문학 작품의 윤리성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문학 작품이란 국가의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지니고 있을 때 한해서만 존속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인은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12) 계층을 전제로 한 평등사상: 친애하는 P, 마지막으로 『국가』의 특징에 관해 다시 한 번 요약하기로 하겠습니다. 플라톤의 작품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등한 국가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평등은 오로지 철저하게 구분되는 세 개의 계층 구분 하에서 존재하는 사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신의 계층 내에서 평등할 수 있을 뿐, 다른 계층과 상하 구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계급은 세습되기 때문에 신분 상승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노예 제도 또한 용인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플라톤의 『국가』는 결코 유토피아의 사상을 담은 효시의 문헌으로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밖에 그것이 유토피아 사상을 담은 효시의 문헌으로 적당하지 않는 까닭은 플라톤의 국가의 상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이념적 범례이기 때문입니다. 문헌 속에 도사린 이러한 하자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작품은 평등한 삶을 실천하는 자들에게 좋은 지침이 되었습니다. 가령 토마스 뮌처 Thmas Münzer는 “모든 게 공동적이다 Omnia sint communia.”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잘못 받아들여서 농민 전쟁의 슬로건으로 활용했습니다. 이는 해석학적으로 엄밀히 고찰하자면 “하나의 창조적 오해 ein kreatives Mißverständnis”에 해당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