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4

(명시 소개) 서로박: (2) 최영철의 시 "길" (해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행여 묵직한 주머니를 넉넉한 여비로 생각지 말게나 그 바람에 바삐 가야 할 길 얼마나 멀고 무거워졌겠는가 凹: 5행과 6행에서 갑자기 시적 화자가 등장합니다. 凸: 네, 시인이 직접 독자에게 무언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실 인간은 모두 태어난 다음부터 죽을 때까지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객일 수 있어요.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내려서 휴식을 취하거나 먹고 마십니다. 우리의 휴식은 어쩌면 고속도로를 지나치다 잠시 들르는 휴게소에서의 시간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凹: 아니면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사이의 대비라고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요? “주머니”가 묵직한 사람과 가벼운 사람들은 제각기 씀씀이가 다르니까요. 凸: 좋은 지적이네요.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원하든 원치..

19 한국 문학 2023.04.18

(명시 소개) 서로박: (1) 최영철의 시 "길" (해설)

凹: 오늘은 최근에 간행된 최영철의 시집 『멸종 미안족』(문학연대 2021)을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시작품 가운데 왜 「길」을 선택하셨는지요? 凸: 일순간 어떤 섬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길” 아니면 도(道)를 지적해주는 자극이라고 할까요? 작품은 인간의 삶 그리고 삶의 의미와 방향을 성찰하려는 독자들에게 자극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凹: 그것은 무엇이지요? 凸: 시를 해석하면, 본의 아니게 시구를 해부해야 합니다. 최영철 시인의 작품들은 어떤 성찰과 깨달음을 요청할 뿐, 시 분석을 요구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행간을 읽고 그 여백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분석을 자제하고, 행간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식으로 작품을 읽어야 할..

19 한국 문학 2023.04.18

(명시 소개) 최영철의 두 편의 시

길 최영철 인생이 달디달 때 술맛은 쓰고 인생이 쓰디쓸 때 술맛은 달았네 어느새 사랑에 취한 이에게 모든 길은 파묻혀 보이지 않아도 이윽고 사랑을 놓친 이에게 천지사방 모든 길이 망망대해였네 행여 묵직한 주머니를 넉넉한 여비로 생각지 말게나 그 바람에 바삐 가야 할 길 얼마나 멀고 무거워졌겠는가 먼저 길 떠난 이들이 모른 척 흘리고 간 여비가 차곡차곡 쌓여 저 멀고먼 협곡마다 반짝이고 있으니 나 이제 이 낯선 길 하나도 두렵지 않다네 ..................... 나리꽃 필 때 첫사랑의 정체는 소매치기였어 말 한 마디 없이 나와 너의 순정만 훔쳐 달아났지 나 잠깐 혼절해 있는 사이 그걸 어디 멀리 내다버린 줄 알았는데 이순(耳順) 어느 맑은 날 처음 수줍음 그대로 돌아 왔네 최영철 시집: 멸종 ..

19 한국 문학 2023.04.13

최영철 시인의 문장들

최영철 시인의 다음의 문장은 시인의 삶 그리고 집필 과정이 얼마나 힘드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 시인은 언어를 빚는 재능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태어난다. (31) 시인은 고통을 숙주로 찬란한 꽃을 피워내고 고통은 시인을 숙주로 만천하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영역을 확장한다. (32) 시인은 미망을 즐기며 미망 속에 있으려고 하는 존재, 번뇌를 즐기며 번뇌 속에 있으려고 하는 존재들이다. (31) 시인은 고통받는 모든 영혼이 구제될 때까지 부처가 되지 않기로 자청한 지장보살처럼 천국이 아닌 지옥에 머물기를 자청해야 한다. (36) 시는 고통을 관리하는 양식이다. 느닷없이 찾아온, 오랫동안 동행한 ..

19 한국 문학 2015.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