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4

(단상 592) 껍질 문화

한국의 도서는 표지부터가 화려하다. 저자의 이름. 필자들은 필자의 이름 뒤에 “저 (著)”, 혹은 “지음”이라는 구차한 꼬리말을 첨부한다. 얼마나 남의 책을 교묘하게 표절하였으면, 이다지도 구차한 꼬리말을 남발하는 것일까? 도대체 저자 약력이란 무엇인가? 학벌과 직위가 이름과 그 사람의 사상보다 먼저 인정받는 세상이기 때문일까? 왜 사진을 첨가하는가? 얼굴이 잘 생겼으면, 책이 더욱 가치 있게 변한단 말인가? 왜 이름석자만 번듯하게 달지 못하는가? 또한 책마다 부제가 첨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번역서일 경우, 책의 뒷부분에는 역자 소개까지 구차하게 덧붙여 있다. 출판사 측의 대답도 가관이다. 그렇게 달아야 책이 잘 팔린다나. 허나 생각해 보라. 책이란 오로지 내용의 훌륭함에 의해서 인정받아야 하지 않겠는..

3 내 단상 2023.11.28

(단상. 533) 시인은 당대에 무명이다

카를 슈피츠베크의 "가난한 시인"이라는 유화 작품이다. 시인은 비 새는 다락방에 머물면서 우산을 쓰며 살아간다. 1. 예술에 있어서 당락은 의미가 없다. 예술 작품은 상대적으로 평가될 수 없다. 낙선작이 당선작보다 더 나을 수 있다. 2.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427년에 디오니소스 연극 축제에서 수상작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당시 수상작은 필로클레스의 "아이스킬로스의 조카"라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수상작은 잊혀졌고,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후세에 명작으로 회자되었다. 3. 두보는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후원자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야 했다. 그의 명성은 그가 죽은 뒤에 알려졌다. 이태백과 쌍벽을 이루는 시인이라고. 4. 시인 횔덜린은 30년 넘게 튀빙겐의 어느 탑에서 칩거하면서 살았다. ..

3 내 단상 2022.05.06

책, 도서, 책이라.... K 교수를 생각하며

언젠가 K 교수를 만났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 교수인 그는 일본 재벌의 아들이었는데,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계간지를 간행하는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도서 원고를 내미는 나에게 일갈했다. "당신이 무슨 유명세가 있나요? 우리 팀, 토론회에 참석하여, 무언가 기여하면, 출판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1. 껍질 문화. 한국의 도서는 표지부터가 화려하다. 서점에 가 보라. 그곳에서 양서를 찾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드물기는 하지만 양서는 있다. 2. 양서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아마 경험한 사람만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양서를 찾는 게 (시간이 흐를수록) 마치 고산준령에서 산삼 찾기에 해당한다면, 이는 실로 비극이다. 3. 저자의 이름. 필자들은 ..

2 나의 글 2021.09.25

처음 투표하게 된 J에게

1. 친애하는 J, 이제 당신은 선거권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서 선거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주위에는 온갖 현수막이 나돌고, 아줌마들이 길가에 서서 90도 각도로 인사합니다. 이 무렵이면 행인들은 분에 넘치는 칙사 대접을 받습니다. 현수막에는 후보자의 이름만 뎅그렁 적혀 있습니다. 그가 어떠한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다시 들러리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해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2. 선거는 항상 평일에 치러집니다. 그렇기에 일하는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투표장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일부 정치가들은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째서 우리는 수요일에 선거를 치러..

2 나의 글 2021.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