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592) 껍질 문화

필자 (匹子) 2023. 11. 28. 09:39

한국의 도서는 표지부터가 화려하다저자의 이름필자들은 필자의 이름 뒤에 저 ()”, 혹은 지음이라는 구차한 꼬리말을 첨부한다얼마나 남의 책을 교묘하게 표절하였으면이다지도 구차한 꼬리말을 남발하는 것일까도대체 저자 약력이란 무엇인가학벌과 직위가 이름과 그 사람의 사상보다 먼저 인정받는 세상이기 때문일까왜 사진을 첨가하는가얼굴이 잘 생겼으면책이 더욱 가치 있게 변한단 말인가왜 이름석자만 번듯하게 달지 못하는가또한 책마다 부제가 첨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번역서일 경우책의 뒷부분에는 역자 소개까지 구차하게 덧붙여 있다출판사 측의 대답도 가관이다그렇게 달아야 책이 잘 팔린다나.

 

허나 생각해 보라책이란 오로지 내용의 훌륭함에 의해서 인정받아야 하지 않겠는가유명세가 특정한 책의 가치를 저울질할 수는 없다훌륭한 문학 작품을 창조하겠다는 결심은 고결하다그러나 최고의 시성이 되겠다는 자의 결심은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한 것일까훌륭한 논문과 저서를 남기겠다는 자의 결심은 눈물 나도록 멋진 것이다달성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이에 비해 학계에서 제일인자가 되겠다는 자의 결심은 얼마나 헛된 망상인가그렇게 믿는 사람은 어느새 후학이나 동학의 시기심에 의해 정신적으로 짓밟히게 된다.

 

대가 혹은 거장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무조건 그들을 존경할 필요는 없다다만 그들이 창출한 작품이 훌륭하다고 스스로 판단된다면오로지 그 작품만을 높이 평가하라세계적인 학자에 대해 기죽을 필요는 없다그저 그들이 쓴 저서에 대해 그냥 옷깃만 여미는 것으로 족할 뿐이다탁월한 학자가 되겠다고이름을 떨치겠다고 공언하지 말라그저 훌륭한 작품을 남기겠다고 다짐하면 족하다이창호를 닮아라언제 그가 바둑에 있어서 세계 제일인자가 되겠다고 공언한 바 있던가그저 그는 훌륭한 기보 (棋譜)를 남기겠다고 항상 일갈하곤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