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서는 표지부터가 화려하다. 저자의 이름. 필자들은 필자의 이름 뒤에 “저 (著)”, 혹은 “지음”이라는 구차한 꼬리말을 첨부한다. 얼마나 남의 책을 교묘하게 표절하였으면, 이다지도 구차한 꼬리말을 남발하는 것일까? 도대체 저자 약력이란 무엇인가? 학벌과 직위가 이름과 그 사람의 사상보다 먼저 인정받는 세상이기 때문일까? 왜 사진을 첨가하는가? 얼굴이 잘 생겼으면, 책이 더욱 가치 있게 변한단 말인가? 왜 이름석자만 번듯하게 달지 못하는가? 또한 책마다 부제가 첨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번역서일 경우, 책의 뒷부분에는 역자 소개까지 구차하게 덧붙여 있다. 출판사 측의 대답도 가관이다. 그렇게 달아야 책이 잘 팔린다나.
허나 생각해 보라. 책이란 오로지 내용의 훌륭함에 의해서 인정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유명세가 특정한 책의 가치를 저울질할 수는 없다. 훌륭한 문학 작품을 창조하겠다는 결심은 고결하다. 그러나 최고의 시성이 되겠다는 자의 결심은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한 것일까? 훌륭한 논문과 저서를 남기겠다는 자의 결심은 눈물 나도록 멋진 것이다. 달성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이에 비해 학계에서 제일인자가 되겠다는 자의 결심은 얼마나 헛된 망상인가? 그렇게 믿는 사람은 어느새 후학이나 동학의 시기심에 의해 정신적으로 짓밟히게 된다.
대가 혹은 거장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 무조건 그들을 존경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이 창출한 작품이 훌륭하다고 스스로 판단된다면, 오로지 그 작품만을 높이 평가하라. 세계적인 학자에 대해 기죽을 필요는 없다. 그저 그들이 쓴 저서에 대해 그냥 옷깃만 여미는 것으로 족할 뿐이다. 탁월한 학자가 되겠다고, 이름을 떨치겠다고 공언하지 말라. 그저 훌륭한 작품을 남기겠다고 다짐하면 족하다. 이창호를 닮아라. 언제 그가 바둑에 있어서 세계 제일인자가 되겠다고 공언한 바 있던가? 그저 그는 훌륭한 기보 (棋譜)를 남기겠다고 항상 일갈하곤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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