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7

박설호: (3) 이종찬의 '훔볼트 세계사 自然史 혁명'

(앞에서 계속됩니다.) 다섯째로 자연사 연구가 예술의 영역과 상통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알렉산더 훔볼트의 자연사 탐구에는 사물의 근본을 발견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초기 낭만주의의 예술적 의향이 담겨 있다. 이는 어디서 발견되는가? 훔볼트의 학문 영역과 그 체계는 오로지 자연과학자의 차원에서만 재조명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자연사의 영역 (기후학,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선사학, 민속학, 고고인류학, 고생물학, 역사 지질학)의 영역뿐 아니라, 사회과학, 특히 정치 경제학의 영역에서도 과히 혁명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종찬 교수는 특히 프랑스어로 집필된 훔볼트의 문헌이 지금까지 훔볼트 연구에서 소홀히 다루어졌음을 지적합니다. 이 가운데에는 탁월한 문헌, 『누에바에스타냐 왕국의 정치 에..

12 세계 문화 2024.08.21

박설호: (2) 이종찬의 '훔볼트 세계사 自然史 혁명'

(앞에서 계속됩니다.) 셋째로 열대 지역의 탐구는 서구의 획일적이고 일방통행식의 학문적 접근 방법을 어떻게 수정할 수 있는가? 훔볼트가 열대 지역에 일방적으로 이전된다고 하는 서구 문명의 일방 통행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열대 지역의 토속적이고 원시적인 문화 속에도 서구 문명이 채택할 수 있는 어떤 새롭고 유효한 자양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콩고 아이티 혁명은 프랑스 혁명을 촉발하는 근본적인 의향으로 이해되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종찬 교수는 콩고 아이티 혁명이 프랑스 혁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서양의 역사학자들이 지금까지 외면한 하나의 독창적인 견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훔볼트 세계사 自然史 혁명』 제3장에서 치밀하게 거론..

12 세계 문화 2024.08.21

(명저 소개) 이종찬의 (2)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조선은 서양의 문물, 특히 과학 기술과 의학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이러한 것들은 무인(武人) 그리고 중인(中人)인들이 관여하는 ”천박한“ 내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종찬 교수님은 한국의 자연 과학의 역사를 논하면서, 조선의 의사, 허준을 언급합니다. 허준은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집필할 때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세부적으로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본초강목』에 소개된 수많은 약초의 가치에 매료된 사람들은 놀랍게도 유럽의 상인들이었습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은 서양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은 이시진의 책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식물학자 다윈은 이시진의 문헌이 자연의 선택을 명확하게 지적하였다고 서술하고..

1 알림 (명저) 2023.12.10

(명저 소개) 이종찬의 (1)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 박물관까지'

1. 친애하는 J, 오늘은 이종찬 교수 (이별빛달빛)님의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해나무, 2009)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2014년에는 『난학의 세계사』가, 2022년에는 방대한 문헌 『자연사 혁명의 선구자들』 이 간행되었습니다. 우리가 다루려는 책은 이러한 두 문헌에 대한 길잡이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필자가 이 자리에서 소개하는 책의 부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과학사가 이종찬의 유럽 일본 자연사 박물관 식물원 탐방기”. 이종찬 교수님은 의학 전공이지만 과학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횡단성의 학자입니다. 그는 방대한 문헌을 섭렵한 다음에, 이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기도 하였습니다. 2. 상기한 사항을 고려할 때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는 자연사 연구서일..

1 알림 (명저) 2023.12.10

서로박: (2)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앞에서 계속됩니다.) 8. 아메리카 토착민의 삶은 서구의 그것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장 작 루소의 다음과 같은 열정적인 전언이 실려 있습니다. 즉 드니 디드로Denis Dederot는 『부갱빌 여행기 보유』에서 오지에서 살아가는 토착 주민을 그야말로 찬란한 이상적 인간으로 묘사한 바 있는데, 이는 루소에 의하면 잘못된 처사라고 합니다. 선원, 상인, 군인 그리고 선교사들은 처음부터 신대륙에 관한 이모저모를 편견 없이 전해줄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 (1755) 그리고 『사회 계약론』 (1762)을 집필하면서 자연과 자연인의 가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생활방식을 갈망해 왔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은 인류학과..

12 세계 문화 2023.09.25

서로박: (1) 치카야 우 탐시의 삼부작 '바퀴벌레'

"아프리카의 내전은 본질적으로 세계대전이다." (이종찬: 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6, 476쪽) ........................... 1. 까만 눈동자에 맺힌 눈물: 콩고는 오랫동안 서구의 식민지로 억압당했습니다. 18세기부터 서구인들은 콩고 왕국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이곳 사람들은 백인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서구인들은 콩고인들에게 성서와 서양 의학 그리고 과학 기술을 전파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것들이 서로 주고받았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식민주의자들의 착취가 시작됩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수십만이 차출되어 노예 선을 타고 신대륙으로 떠났습니다. 19세기 초부터 아프리카 땅 전체가 서구인들의 식민지로 변했습니다. 콩고 사람들은 1877년..

33 현대불문헌 2023.09.07

박설호: (1) 욱일(旭日)의 맹점

1.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연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몇 년에 공표했는가? 하는 수능 시험의 문항보다 더 중요한 물음입니다. 언젠가 『조선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에디터 2001)라는 책이 간행되었습니다. 저자 이덕주는 이에 대한 해답을 무엇보다도 조선 후기의 역사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은 열강의 세력에 대항할 힘을 비축하지 못했고, 처음부터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의향 또한 없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납득할 만한 답변이 아닙니다. 왜냐면 대원군은 폐쇄적 외교 정책을 제외한다면. 여러 가지 바람직한 내부 정책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독..

2 나의 잡글 2023.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