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림 (명저)

(명저 소개) 이종찬의 (1)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 박물관까지'

필자 (匹子) 2023. 12. 10. 09:29

1. 친애하는 J, 오늘은 이종찬 교수 (이별빛달빛)님의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해나무, 2009)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2014년에는 『난학의 세계사』가, 2022년에는 방대한 문헌 『자연사 혁명의 선구자들』 이 간행되었습니다. 우리가 다루려는 책은 이러한 두 문헌에 대한 길잡이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필자가 이 자리에서 소개하는 책의 부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과학사가 이종찬의 유럽 일본 자연사 박물관 식물원 탐방기”. 이종찬 교수님은 의학 전공이지만 과학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횡단성의 학자입니다. 그는 방대한 문헌을 섭렵한 다음에, 이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기도 하였습니다.

 

2. 상기한 사항을 고려할 때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는 자연사 연구서일 뿐 아니라, 자연사 박물관에 관한 본격적 탐방기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놀라운 것은 열대학과 관련되는 자연사의 연구가 지리학, 생물학, 지질학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민속학과 문화사 그리고 문학 예술과 묘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이 교수가 걸어온 길이 범인(凡人)이 함부로 선택할 수 없는 가시밭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대부분 의대 학생들이 의학을 전공한 다음에 병원을 차려서 오로지 돈을 벌려고 작심하는 데 비해서, 그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학문의 길로 접어들어, 열대 탐험 내지는 자연사를 구메구메 탐구하였습니다.

 

3. 두 번째는 이종찬 교수님이 자연사 내지는 자연 과학의 흐름을 하나의 폐쇄적인 관점에서 추적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시기에 간행된 책 의학의 세계사』 (몸과 마음 2009)에는 놀라운 문장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예술은 역사의 은유이다.” 말하자면 인문학, 역사 그리고 동서양의 문화적 예술적 특징은 이종찬 교수님에 의하면 역사적 현실 그리고 자연사의 흐름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세계를 바라보는 폭넓고 개방적인 시각이 없이는 감히 찾아낼 수 없는, 바람직한 학문의 방법론입니다. 모든 지식은 오로지 문헌에 입각한 게 아니라, 역사의 흔적, 다시 말해서 박물관의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종찬 교수님은 여러 나라의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학문적 진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여행은 감각의 번역이다." (202쪽) “여행이 삶의 영원한 샘물인 교양으로 내 몸의 피와 살이 되려면, 독서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91쪽) 이 말은 젊은이라면 누구나 새겨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독서 없는 여행은 경박할 정도로 무의미하고, 여행 없는 독서는 현실감이 빠져 있는 추상적 사고만을 습득하게 할 뿐입니다.

 

4. 인용문을 거론하기로 합니다. “루소는 자기 스스로를 식물학자로 생각했고, 달랑베르는 수학자였을 뿐 아니라, 수준이 높은 음악 애호가였다. 볼테르는 자신이 천문학과 뉴턴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 식견이 높다는 점에 자긍심을 가졌다.” (18쪽) 19세기부터 정신과학은 자연 과학과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가 전문화될수록, 학문 영역은 구분되고 분화되어 폐쇄적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오늘날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한 가지 연구 분야에 파묻혀 다른 것을 거들떠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폐쇄적인 학문 연구는 인간과 세계의 관계론을 정립하는 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학자는 시종일관 윰합을 추구하는 제네랄리스트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5. 프랑스의 민속학 연구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2008년 100세의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종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논평합니다. “나는 프랑스 지식사회에서 일약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한 『슬픈 열대』보다는 『야생의 사고La Pensée Sauvage”에 더 주목하고 싶다. (...) 레비스트로스는 식물, 동물, 광물에 대한 원주민의 탁월한 해석과 인식을 책 전체를 통틀어 강조하고 있다. (...) 치통이 생기면 딱따구리 주둥이와 입을 맞추고, 고열이 생기면 바짝 말린 딱따구리 가루를 코로 들이마시는 원주민에게 자연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34쪽 이하). 여기서 우리는 문명과 야생에 관한 저자의 견해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문명을 긍정적으로, 야생을 부정적으로 단언하는 방식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야생에서 어떤 소중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문명과 야생은 결코 분할될 수 없으며, 문명은 야생에게, 야생은 문명에게 얼마든지 놀라운 의미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지론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과학과 예술, 문명과 야생, 동양과 서양 사이의 역사적 상호관계를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6. 프랑스와 라블레는 주지하다시피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학자이자 소설가입니다. 필자는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제2권에서 라블레의 텔렘 사원의 유토피아를 논한 바 있습니다. 라블레와 관련하여 이종찬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몽펠리에 의과대학을 졸업했던 라블레는 1531년 히포크라테스를 그리스 원전으로 읽었다. (...) 그는 히포크라테스를 통하여 ‘우주의 자연력들을 몸의 자연력으로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식물이 인간의 몸에 부여하는 치유의 기능을 알게 되었다.“ (57쪽) 말하자면 라블레는 식물이야 말로 인간이 자연의 치유력을 회복하는 우주의 매개체라는 놀라운 진리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위한 모든 영양은 식물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를 구분하곤 합니다. 그런데도 몽펠리에 식물원에 하필이면 인문학자이자 소설가인 라블레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은 무척 놀라우며, 현대의 과학자들이 가습에 새겨야 할 사항이라고 여겨집니다.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서면, 괴테에게 사상적 영향을 끼쳤던 헤르더가 말한 것처럼, 여행자들은 ‘돌에서 수정으로, 수정에서 금속으로, 금속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짐승으로, 짐승에서 사람으로’ 변해가는, 대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 앞에서 겸허해진다.“ (75쪽) 지금까지 학문은 모든 것을 구분하고 나누는 데에만 급급했을 뿐, 상호 관련성을 따지고 협력하려는 의향을 거의 포기해 왔습니다. 이종찬 교수님이 인용한 피히테의 발언은 오늘날 신유물론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것입니다. 헤르더는 다음의 사항을 암시했습니다. ”물질은 죽은 게 아니라, 살아 있다. 물질의 내부에서 그리고 물질의 외부와 내부의 기관들에 순응하면서 수천의 살아있는 다양한 힘들이 작용하고 있다.“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문성재 역, 현실문화, 2020, 233쪽). 우리는 인류세의 위기에서 태동한 신유물론의 사상적 단초를 누구보다도 헤르더에게서 얻을 수 있습니다.

 

(2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