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10

벤야민의 개념, '깨닫는 사고 Eingedenken'

Eingedenken 은 "회상"으로, 혹자는 "불망 不忘"으로 번역되곤 합니다. 혹자는 회억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혹자는 기억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단어는 자구적으로 고찰할 때 어떤 상념을 떠올리는 행위입니다. 홍윤기 교수는 메츠의 신학 사상을 번역할 때 이 단어를 "명심 銘心"이라고 번역한 바 있습니다. 명심이란 "마음에 새긴다."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gedeneken 이라는 단어에 접두어 ein- 이 첨가되었기 때문에 번역의 난해함을 부추깁니다. 우리는 언어학적 차원보다는 벤야민의 사고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사고가 이미 과거에 존재한 사고 내지 생각을 "재기억 remember, anamnesis"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Eingedenken..

3 내 단상 2023.12.14

서로박: 벤야민의 '기술 복제 가능한 시대의 예술'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 - 1940)의 「기술 복제 가능한 시대의 예술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은 1936년 프랑스어로 씌어져 "사회 연구를 위한 잡지"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1955년 아도르노 등이 편찬한 벤야민 전집에 독일어 축약문으로 간행된다. 벤야민의 예술 이론적 에세이는 예술과 복제 (재생산)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무척 중요한 문헌이다. 예술 작품은 과거에도 수작업에 의해서 (주조, 압착 등의 방법으로) 이미 재생산된 바 있다. 벤야민은 예술의 현격한 발전을 이룩한 새로운 시대가 19세기라고 규정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특히 사진 예술과 영..

25 문학 이론 2023.12.13

박설호: (2) 에른스트 블로흐 읽기 (III)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제 3부에 실린 글은 얼핏 보기에는 블로흐 연구와 무관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연구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독자들은 논의의 전개 및 방법론에 있어서 에른스트 블로흐를 유추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첫 번째 글 「이반 일리히의 젠더 이론 비판」은 미발표의 논문으로서 일리히의 저작물 『젠더』를 비판적으로 구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려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일리히의 과거 지향적 관점이 퇴행의 반동적 세계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젠더에 대한 일리치의 시각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추상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점입니다. 「원시 사회는 암반위에 있고, 문명사회는 절벽을 기어오르는가?」는 김유동 교수의 『충적세 문..

27 Bloch 저술 2023.04.22

서로박: 타우베스의 뒤섞인 정치 신학

야콥 타우베스는 기이하게도 파시즘에 동조한 독일의 법 철학자 카를 슈미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의식 있는 유대인 출신의 학자였지만, 카를 슈미트의 사상을 수미일관 추적하려는 자세에서 우리는 어떤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극단은 서로 통하는 법일까? 우리는 타우베스의 입장에서 어떤 학문적 매혹 그리고 유대인 정체성 사이의 모순점을 접하게 된다. 야콥 타우베스의 태도에는 기이하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려는 어떤 이율배반적인 특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에게서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주의를 부정하는 기이한 변절자의 면모가 엿보이는 것이다. 마치 사도 바울이 이전의 율법학자, 사울이라는 이름을 저버리고, 기독교에 개종했듯이, 야콥 타우베스 역시 유대주의 그리고 가톨릭 사상으로부터 서서히 거리감을 취했다. 유..

24 신학이론 2022.03.22

서로박: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 (1)

저항의 미학 한국어 판은 201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3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제 1권은 탁선미 교수에 의해, 제 2권은 남덕현 박사에 의해, 제 3권은 홍승용 교수에 의해 번역되었습니다. ............................. 친애하는 C, 유대인 출신의 작가 페터 바이스 (Peter Weiss, 1916 - 1982)는 동독의 하이너 뮐러와 함께 가장 위대한 20세기 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서독 출신의 극작가 가운데 바이스만큼 완강하고도 격렬하게 구서독의 보수성을 비판하고, 무디어져 가는 다원주의 사회의 체제 옹호적 경향에 메스를 가한 작가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페터 바이스의 작품이 잊혀진다는 것은 무척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3권으로 이루어..

44 20후독문헌 2021.02.05

발터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기원" (2)

에스파냐에 있는 벤야민의 묘비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기원을 철학적으로 상세히 규명해 보도록 하자. 벤야민은 알레고리 개념을 수미일관 추적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간과했던 “기술적 용어 (terminus technicus)”에 자신의 고유성을 부여하는 작업일 뿐 아니라, 알레고리 자체가 결국 인식 이론적 카테고리로 화하고 있다. 자고로 인간의 제한된 주관적 인식 능력 그리고 인식될 수 없는 객관적 진리의 내용 사이에는 분명히 간극이 있다. 이는 칸트 (Kant) 이후로 이어진 철학적 전통이기도 하다. 그러나 벤야민의 비평의 개념은 이러한 간극에 대해 하나의 이의를 제기한다. 인식은 무언가 지향하려는 소유와 같은 무엇으로서, 의향 없는 존재로서의 진리로부터 상당히 제한 당하고 있다. 이 경우 진리는 인식..

25 문학 이론 2020.07.06

발터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기원" (1)

발터 벤야민 (1892 - 1940)의 "독일 비애극의 기원"의 전편은 1925년에 씌어졌고, 1928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그는 본서를 교수 자격 취득을 위해서 집필하였으나, 거부당했다. (책의 첫 부분인) 인식론적으로 핵심이 되는 “인식 비판의 서언”은 1916년 발표된 언어학에 관한 논문 「언어 전체에 관하여 그리고 인간의 언어에 관하여」를 바탕으로 인식 이론 및 비평의 어떤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결국 바로크의 비애극에 적용되고 있다. 비평이란 -벤야민의 규정에 의하면- 예술 작품의 역사철학 및 인식 이론의 차원을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작품에 대한 하나의 무효 선언과 같다. 왜냐하면 비평은 작품 분석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다음과 같은 과업을 지니기 때문..

25 문학 이론 2020.07.06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서문

“사고는 한계를 뛰어넘는 일을 일컫는다.” (Ernst Bloch) “블로흐를 비판하지 않은 채, 그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은 하나의 배반이다.” (필자) “희망은 확신이 아니다. 희망은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위험에 대한 의식이다.” (Ernst Bloch) 1. 친애하는 B, 블로흐 읽기를 연속으로 간행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이후의 진행은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유토피아의 역사를 역사적 비판적 관점에서 기술하려는 의도는 세부 사항에 있어서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토피아의 연구에서 동양의 영역을 제외했음에도, 논의에 대한 고증 작업은 여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자고로 학자는 -소설가와는 달리- 자발적 착상만으로 펜이 굴러 가는대로 글을 쓸 수 없으며, 사고가 하나의 결론에 ..

27 Bloch 저술 2019.09.08

블로흐 읽기 (3) 목차

자연법과 유토피아 에른스트 블로흐 읽기 (3) 목차 서문 제 1부: - 사상의 보석은 아직 숨어 있다. 이 장에서 필자는 블로흐 사상과의 만남을 서술하고 있다. 필자는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배운 게 아니라, 자신의 독서를 통해서 블로흐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 - 유토피아의 정신, 1. 2. 이 장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초기 저작물 유토피아의 정신 제 1판 그리고 제 2판을 소개하고 있다. 20세기 초에 제 2판이 소개된 다음에 약 50년이 지난 다음에 제 1판이 발표되었다. -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 이 장은 블로흐의 토마스 뮌처 연구서를 요약하고 있다. - 문학과 환상에 관한 12개의 고정관념 통상적으로 문학은 리얼리티를 담아야 한다고 한다. 리얼리즘 문학은 진실되고, 리얼리즘 문학의 ..

27 Bloch 저술 2019.05.15

(서평) 원시사회는 암반 위에 있고, 문명 사회는 절벽을 기어오르는가?

다음의 글은 황해 문화 2012년 봄호 (통권 74호) 414 - 418 페이지에 실린 것이다. - 김유동 저: 『충적세 문명』 - 박 설 호 (한신대) 1. 김유동 교수의 『충적세 문명』은 학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문헌이다. 이 책은 만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명사를 천착하고 있다. 이로써 저자는 여러 문화 구조의 특성을 도출해내어 서로 비교하려고 한다. 연구에서 저자가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사실에 대한 역사학의 고증 작업” 뿐 아니라, “인간의 상상을 동원한 고대 문화의 흔적 내지는 징후 읽기”이다. 왜냐하면 선사 시대의 문화에 대한 검증은 문헌 연구 작업으로서는 무척 힘들고, 게다가 자료 선택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리 말하건대 김..

2 나의 글 201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