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만 4

로베르트 무질

"헤르만 브로흐 그리고 로베르트 무질이 없으면, 오스트리아 문학도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 정도로 무질이 오스트리아 문학에 기여한 바는 큽니다. 로베르트 무질은 1880년 오스트리아의 클라겐푸르트에서 공대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권고로 그는 오스트리아의 군사아카데미에 다녔으며, 이곳에서 기계 공학을 공부하여 엔지니어 자격 시험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23세가 되는 시기까지 그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행하는 범생이 아들이었습니다. 사진은 클라겐푸르트에 위치한 로베르트 무질의 생가입니다. "Am 6. 11 1880 wurde in diesem Haus der Dichter Robert Musil geboren." 이렇듯 작가는 생전에는 부와 명성을 누리지 못하다가, 죽은..

9 문학 이야기 2022.01.19

서로박: 마이어의 무효 선고받은 독일인

독일의 비평가, 한스 마이어 (Hans Mayer, 1907 - 1998)의 "무효 선고받은 독일인 (Ein Deutscher auf Widerruf)"은 두 권으로 이루어진 회고록인데, 1982년에서 1984년 사이에 씌어졌다. 마이어는 문예 이론가 내지 에세이스트로 살아오면서, 많은 풍파를 겪었다. 그의 회고는 작품 속에서 50년대부터 시작되어 1980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스 마이어는 계몽된 유대인 시민의 가정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법률학을 공부했다. 이 시기의 이야기는 제 1장 “물고기의 표시 속에서”에 자세히 서술되고 있다. 당시에 쿠르트 투콜스키 (K. Tucholsky)의 날카로운 산문은 그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었다. 마이어는 1923년에 게오르크 루카치 (G. Lukács)의 "역사와 계..

25 문학 이론 2021.02.03

서로박: 짧은 만남과 오랜 이별, 첼란과 바흐만 (2)

첼란과 바흐만, 그들은 언제나 헤어져 있는, 그러나 항상 마음속으로 함께 지내는 친구이자, 연인이자, 동료이자 반려였다. 1958년에 두 사람은 우연히 독일의 부퍼탈에서 다시 만납니다. 이때 두 사람의 마음을 격렬하게 스치는 것은 아직 꺼지지 않은 사랑의 훈풍,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흐만은 지난 6년 동안 마치 재능 있는 집시 여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동안 문학상도 여러 개 받았고, 여성 시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첼란은 그동안 지젤과 결혼하여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많은 재산이 있었으므로, 물질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문턱에서 문턱으로』라는 시집으로 저명한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부퍼탈에서 만난 뒤부터 첼란은 그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사..

9 문학 이야기 2018.04.16

서로박: 짧은 만남과 오랜 이별, 첼란과 바흐만 (1)

친애하는 J, 자고로 주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불가능한 사랑은 당사자에게 극도의 고통을 가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당사자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하고, 주어진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게 하기도 합니다. 파울 첼란 (1920 – 1970)과 잉게보르크 바흐만 (1926 – 1973)역시 죽는 날까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947년 초에 상대방에 대해 애호의 감정을 품습니다. 한 사람은 27세의 젊은 사내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21세의 처녀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불꽃은 순간적으로 격렬하게 타올랐지만, 주위의 거친 바람 때문에 마냥 꺼지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역사적 아픔 내지 비극적 상처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개인적 사랑은 어처구니없게도 깊은 역사적 상..

9 문학 이야기 2018.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