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치케 2

(단상. 498) 정치 테러 대신에 투표 참여를 !!!!!!!

1968년 4월 11일 독일의 젊은 네오나치는 베를린에서 학생 운동가, 루디 두치케에게 세 발의 총을 쏘았습니다. 이때 두치케는 쓰러졌습니다. 뇌에 커다란 손상을 입은 그는 그 여파로 몇 년 후에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끔찍한 테러의 주범을 누구보다도 독일 정부와 악셀 슈프링어 재단으로 돌렸습니다. 악셀 슈프링거 재단이 발간하는 빌트BILD 신문은 학생 운동을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악마화하는 데 열을 올렸던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볼프 비어만은 시작품, "두치케에게 향한 세 개의 총알Drei Kugeln auf Dutschke"에서 보수 정부, 국회의원 그리고 언론이 안타까운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로부터 57년 후에 비슷한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했습니다. 2024..

3 내 단상 2024.01.06

서로박: 루디 두치케

(루디 두치케는 아내 그레텐과 1968년 1월 10일 태어난 아들 "호세아-체" (예언자 호세아와 체 게바라의 합성 이름)와 함께 체고로 가서, 1968년 4월 9일 프라하 대학 강당에서 연설하였다. 사진의 왼쪽에는 두치케의 머리 부분이 보인다.) 루디 두치케는 1968년에 학생 운동을 이끌었던, 놀라운 지식인 운동가였습니다. 그는 불과 28세의 나이에 83세의 에른스트 블로흐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어느 몰지각한 우익 청년에 의해서 세 발의 총상을 입었지요.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두치케의 뇌가 손상되었습니다. 시인, 볼프 비어만은 「루디 두치케에게 향한 세 발의 총성」에 관한 발라드를 불러서 독일 내의 우파, 어용 지식인 그리고 재벌들을 통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언어 장애에 시..

2 나의 글 2022.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