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규 6

서로박: 어슐러 르귄의 "어둠의 왼손" (1)

1. 인간의 어깨에는 상상의 날개가 달려 있다. 날개는 보이지 않지만, 갈망하는 자로 하여금 무한한 공간 그리고 무한의 시간 저편으로 떠나게 합니다. “우리에게 꿈이 없다면, 세상은, 과거와 미래는 얼마나 황량하겠는가? 꿈을 상실하느니 나는 차라리 고통과 불행, 피눈물의 삶을 송두리 채 저버릴 것이다.” (어슐러 르 귄) 대부분 사람들은 지금 여기의 현실만을 중시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자들이 그렇게 판단하지요. 이들은 가령 형이상학을 무가치한 학문으로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요. 실용주의자 가운데에는 회의주의자들이 참 많습니다. 가령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

36 현대영문헌 2021.07.05

(명시 소개)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공간. 김광규의 시「물오리」 (3)

날다가 죽어 털썩 떨어지는 오리는 얼마나 부러운 삶이랴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곳 그 먼 곳을 유유히 넘나드는 축복받은 새 나는 때때로 오리가 되고 싶다. 너: 앞에서 시적 자아는 “일어서도 또 일어서고 싶고/ 누워도 또 눕고 싶은” 욕구를 안타까운 몸부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나: 인간은 죽음을 의식하지만, 언제 죽는지 스스로 모릅니다. 이에 비하면 물오리는 삶과 죽음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날다가 죽어 털썩” 공중에서 떨어질 뿐입니다. 너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곳/ 그 먼 곳”이 이 시의 아포리아이자 핵심적 의미를 담은 장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어떻게 요약될 수 있을까요? 나: 첫 번째는 전기적 해석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 장소는 단순히 시인의 고향일 수 있어요. 외국 문학..

19 한국 문학 2021.06.22

(명시 소개)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 공간. 김광규의 시 「물오리」 (1)

너: 안녕하세요? 오늘은 김광규의 시 「물오리」를 토대로 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많은 시들 ㄱ운데에서 이 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나: 시, 「물오리」는 시인의 예술적 그리고 존재론의 사유를 가장 훌륭하게 반영한 작품입니다. 언젠가 루드비히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 Das Wesen des Christentums』에서 종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전지전능한 신의 상은 하나의 상상 공간에서 떠올린 판타지라고 말입니다. 마치 쥐 한 마리가 인간을 떠올리듯이, 인간은 자신과 가장 닮은 더 나은 존재로서 신을 상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인동형설Anthropomorphism”의 사상적 계기에 해당합니다. 너: 쥐 한 마리가 인간을 떠올리듯이, 인간이 신을 상상한다는 표현은 참으..

19 한국 문학 2021.06.21

(명시 소개) 김광규: 물오리

수직이 아니면서도 가장 곧게 자라는 나무 전기를 일으키지 않는 그 위안의 나뭇가지에 결코 앉지 않는 거룩한 새 오리는 눕거나 일어서지 않는다 겨울 강 물 위를 부드럽게 떠돌며 단순한 몸짓 되풀이할 뿐 복잡한 아무 관습도 익히지 않는다 눈 덮인 얼음 속에 가끔 물의 발자국 남기고 지진이 나면 돌개바람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죽음의 땅 위에 화석이 될 마지막 그림자 던지는 완벽한 새 오리가 날아왔다가 되돌아가는 곳 그곳으로부터 나는 너무 멀어졌다 기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고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 나는 아무래도 너무 멀리 와 이제는 아득한 지평을 넘어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무심하게 날개치며 돌아가는 오리는 얼마나 행복하랴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애써 배운 모든 언어를 괴롭게 신음하..

19 한국 문학 2021.06.21

서로박: 나를 매료시킨 세 권의 책들

아래의 글은 약 20년 전에 집필된 것인데, 다시 읽어보니 무척 감회가 새롭습니다. ................................ 친애하는 K, 당신은 나에게 학창 시절에 감명 받았던 책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자칭 열정적인 문학도였던 나는 남들에 비해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으므로 무슨 책을 소개할까? 하고 오랫동안 망설여야 했습니다. 당시에 나는 교지, 대학신문 가리지 않고, 잡문, 평문을 발표하여 원고료를 타먹곤 하였습니다. 너무 자주 글을 발표하게 되자, 학우들에게 “독식 (独食)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池高元” (거꾸로 쓰면 “원고지”라는 뜻^^)이라는 가명으로 글을 발표했으니까요. 고료가 나오면 나는 그 돈으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잡지 혹은 단행본 몇 권을 구..

2 나의 글 2021.02.20

(명시 소개) 김광규의 시, "생각과 사이"

생각과 사이 김광규 시인은 오르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르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르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르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르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르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르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르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르지 관청만 생각하고 학자는 오르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19 한국 문학 2019.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