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4) 폴커 브라운의 '체 게바라, 혹은 태양의 나라'

필자 (匹子) 2025. 2. 13. 09:12

 

(앞에서 계속됩니다.)

 

5. (부설) 쿠바의 경제 현실과 게바라

 

브라운의 작품에서 게바라와 카스트로 사이의 대화는 상징과 축약에 의해 다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60년대 초 혁명을 이룩한 쿠바는 수많은 난제를 안고 있었는데, 이 점에 관해서 극작품은 -문학의 특성상의 이유로- 구체적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장에서 실재했던 쿠바의 경제적 난 문제에 관해 약술하기로 한다. 이로써 우리는 옳든 그르든 간에 볼리비아에서의 무장 투쟁에 대한 게바라의 필연적 귀결을 유추하게 될 것이다.

 

쿠바의 혁명 정부는 중앙 기획 워원회 (JUCEPLAN)를 주축으로 하여, 세 가지의 경제 개혁을 단행한다. 1. 국유화 체제를 통한 농업 개혁 (INRA), 2. 탄광 개발을 통한 산업화의 추진, 3. 사회적 이익을 고려한 무역과 재화의 분배의 정책.  (역주: 이에 관해서 필자는 다음의 논문을 참조했다. Sergio de Santis: Bewußtsein und Produktion, eine Kontroverse zwischen Ernesto Che Guevara, Charles Bettelheim und Ernest Mandel über das ökonomische System in Cuba in: Kursbuch 18 (1969), S. 80 - 117.)

 

그런데 이러한 사업은 다음과 같은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첫째로 무엇보다도 미국의 무역 간섭은 쿠바 정부의 경제적 개혁에 가장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미국은 바티스타 정권을 물리친 카스트로 혁명 정부에 대해 통상 금지 조처를 내렸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로 하여금 쿠바 상품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둘째로 국내외에서 바티스타를 비롯한 기득권 층 내지는 반동적 지주 세력은 혁명 정부의 경제 정책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교묘한 방해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역주: 이에 관해서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가 1972년에 발표한 극 형식으로 된 기록문서, 󰡔하바나의 심문󰡕에 실린 카스트로와 반혁명 용병과의 대화를 참조하라. Siehe H. M. Enzensberger: Das Verhör von Havana, Frankfurt a. M. 1972, S. 233 - 235.)

 

이로 인하여 하바나의 정유 공장 및 수많은 사탕수수 밭은 화염에 휩싸였다. 셋째로 경제 외교상으로 고립된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와 무역 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역주: C. 라이트 밀스의 책에서도 거론되고 있지만, 쿠바 혁명 정부는 처음에는 중립을 지켰다. 미국 및 주위의 인접 국가들이 통상 금지 조처를 취하자, 쿠바 정부는 소련 및 비동맹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어진 여건이 쿠바 정부로 하여금 친소주의의 외교 정책을 조장한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소련을 비롯한 비동맹 국가들은 지리적으로 쿠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쿠바는 이들 나라와 정상적으로 통상하려면, 엄청난 수출 비용을 감수할 게 뻔했던 것이다.

 

그밖에 대부분의 생산품은 60년대 초에는 농산품, 즉 설탕이 주류를 이루었다. 중앙 기획 위원회는 사탕수수 재배를 너무 일찍 “식민지 산업”이라고 규정하며, 농업 부문에서 공업 부문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이로써 체 게바라 등으로 구성된 중앙 기획 위원회는 쿠바의 수많은 계절 실업자들의 노동력을 산업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쿠바 노동자들은 여름에 사탕수수 밭에서 일했고, 겨울에는 실업자나 마찬가지로 생활하였다. 그러나 (코발트와 니켈을 제외한) 원자재, 에너지 자원이 현저하게 부족했으며, 중앙 기획 위원회는 새로운 산업을 위한 전문 인력을 고용할 수 없었다. 더욱이 경제적 파급 효과, 쿠바의 특수한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은 산업화 정책은 쉽사리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예컨대 산업화 정책 뿐 아니라, 낙농업 등으로 전환하게 하는 농업 정책 모두 순조롭게 진척될 수 없게 된다. (역주: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낙농업을 영위하려면, 농부들은 가축의 사료를 조달할 수 있는 목초지를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기후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써 60년대 초반에 쿠바의 설탕 생산은 평년의 절반 정도를 겨우 웃돌게 되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쿠바 정부로서는 국가내의 정책만으로는 상기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단 게바라는 한 가지 유일한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중미 혹은 남미에서의 또 다른 혁명 국가를 탄생시키는 과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만약 제 2의 쿠바가 이룩되면, 게바라는 쿠바의 제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난관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6. 유럽 지식인들의 냉담성에 대한 비판

 

다시 브라운의 극작품으로 돌아가자. 만일에 「게바라 혹은 태양의 나라」에 막간극 (제 1장, 제 5장, 제 9장)이 실리지 않았더라면, 브라운의 극작품은 숙명론적인 역사극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막간극이 실려 있기 때문에, 역순에 의해 묘사되는 게바라의 행적, 특히 갈등과 희망 등은 독자와 관객에게 갈등과 모순 구조를 점층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보다 강렬한 주제 의식을 심화시켜 준다.

 

막간극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붐홀트와 베드레이이다. 이 두 인물은 실제 유럽의 지식인, 알렉산더 훔볼트와 레기스 데브레이에 대한 패러디이다. (역주: 빌헬름 폰 훔볼트 (1769 - 1859)는 잘 알려진 자연 과학자로서, 게오르크 포르스터,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등과 교우하였다. 그는 1799년과 1804년 사이에 베네주엘라, 쿠바, 콜롬비아, 에쿠아도르, 페루 그리고 멕시코를 거쳐 미국을 경유하여 유럽으로 되돌아 왔다. 그의 여행기 󰡔신대륙의 적도 지역에 관한 여행기 (Voyage aux région equinoxales du Nouveau Continent)󰡕는 총 36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방대한 문헌이다. 훔볼트는 처음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어리석고 냉담하며 게으른 인간들로 비난하였으나, 이들에 대한 그의 선입견은 나중에 서서히 변하게 된다. 레기스 데브레이 (1940 - )는 철학을 전공한 프랑스 작가로서 사회 혁명에 대한 이념을 신봉하며, 게릴라 무장 투쟁을 지지하였다. 1967년에 간행된 그의 책 "혁명속의 혁명 (Révolution dans la révolution)"은 남미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데브레이는 체 게바라를 지지하다가 1967년에서 1970년까지 볼리비아에서 옥살이하였다. 70년대 이후에 그는 좌익 혁명의 이념을 저버리고 프랑스 사회당에 가담한다. 1981년에서 1985년까지 미테랑의 제 3세계 문제의 자문 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재하는 인물 훔볼트와 데브레이에 관한 사항은 막간극의 주제를 고려할 때 주변적 자료 이상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등장인물들은 하나의 보편적 인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붐홀트의 행동은 유럽 우파 지식인들의 기회주의적 공격 성향 내지는 야만성을, 베드레이의 행동은 현실 도피적 추상성을 대변하고 있다.

 

미국 여행자 차림의 붐홀트는 멸망한 ‘태양의 나라’를 발견하기 위하여 땅을 파고 있다. 이에 비하면 체크 양복 차림의 베드레이는 암벽위로 올라가서 게릴라들의 모습을 관망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붐홀트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베드레이는 사회 개혁에 수수방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역주: 게바라의 면모는 오늘날 기껏해야 의상실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만 역사가들만이 마치 나방처럼 그의 유니폼의 천속에 안주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H. M. Enzensberger: E. G. de la S., in: Theater heute, 1/ 1978, S. 10.) 다시 말하면 전자는 지하에, 후자는 공중에 관심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땅위에서 발생하는 실제 삶 내지는 정치적 현장을 결코 중시하지 않는다. 이들의 대화에서 특이한 두 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두 지식인들은 자신의 선험적 사고에 집착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발언 역시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화는 전혀 의사소통을 이루지 못한다. 둘째로 두 사람은 상호 의사를 소통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끝없이 지껄이고 있다. 이는 올바른 실천의 능력이 결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극작품에서 게바라는 한계 상황에서 처절하게 행동하는 반면에, 막간극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희극적이며, 그들의 대화는 우스꽝스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제 5장에서 베드레이는 카스트로의 혁명 이론 및 브레히트의 발언을 인용하며, 암벽을 올라간다. 그리하여 그는 목이 잘려 머리통을 아래로 떨어뜨리게 된다. (GS. S. 143). 이는 하나의 비유이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 우리는 여기서 원칙 우선주의를 상정할 수 있다. 베드레이는 바람직한 이상의 원칙을 미리 설정해 놓고, 이를 현실에서 반드시 실현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둘째, 우리는 이론과 실천의 간극을 상정할 수 있다. 베드레이는 추상적 이상에만 집착할 뿐, 전혀 이를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머리통을 잃어버린 베드레이는 결국 반동적 유미주의를 견지하며, 아이헨도르프의 시를 읊고 있을 뿐이다.

제 9장에서 붐홀트는 머리통을 어느 발견된 시체와 접목시키며, 혁명가의 시체라고 거짓 주장한다. 결국에 그는 목이 달아난 베드레이를 사살하여, 몸통을 마구 뜯어먹고 만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클라우스 슈만은 막간극을 “사뮈엘 베케트 유형의 종말 극”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현대인의 사고와 행동에 대한 아포리아로서 추상화될 수는 없다. (역주: K. Schuhmann: Anmerkungen zu Volker Brauns 「Guevara oder der Sonnenstaat」, a. a. O., S. 33.) 첫째로 주인공 게바라와는 달리 붐홀트와 베드레이는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오랫동안 말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말을 제대로 실천할 줄 모른다. 만약 이들의 말이 행동으로 이전될 때, 그것은 -특히 붐홀트의 경우- 자기 파괴적으로 타인을 공격한다. 다시 말해 그들의 발언은 처음부터 나름대로의 이상을 지니고 있으나, 특히 붐홀트의 행동은 야만적으로 변하게 된다. (역주: 지엽적인 말이지만 두 인물은 프란츠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In der Strafkolonie」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교될 수 있다. 베드레이가 이기적이고 수수방관적인 연구 여행자와 유사하다면, 붐홀트는 기계적이고 행동적인 장교와 비교될 수 있겠다.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라. 김천혜: 프란츠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김광규 편, 현대 독문학의 이해, 서울 1983년, 334 - 336.) 둘째로 유럽의 (특히 서구의) 지식인들은 실제 현실로부터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직업이 죽은 사람들에 관해 탐구하는 작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식인의 한계 내지는 지식인들이 지니고 있는 의식의 편향을 상정할 수 있다. 셋째로 서구 지식인들의 사고는 게바라와 같은 제 3세계 운동가의 실천 행위를 완전히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럽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일방적 체험 영역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