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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그림의 '공간 없는 민족'

필자 (匹子) 2025. 3. 16. 09:49

한스 그림 (Hans Grimm, 1875 - 1959)의 소설, "공간 없는 민족 (Volk ohne Raum)"은 1926년 간행되었다. 아마도 이 작품만큼 파시즘이 표방하는 “피와 토양”의 이데올로기를 열렬히 찬양하는 소설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림의 작품은 독일 파시즘의 공격적인 성향을 정당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비록 작가는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 이 작품을 썼을 뿐, 나치를 위해서 쓴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말이다.

 

한스 그림은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상인이 되기 위한 연수를 받기 위하여 영국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다시금 남아프리카로 여행하였다. 이에 관한 경험은 그의 소설 "남아프리카의 중편" (1913) 그리고 "모래를 지나는 걸음" (1916) 등에서 잘 형상화되어 있다. 그림은 소설 󰡔공간 없는 민족󰡕에서 자유로운 남자들의 자유로운 삶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신비롭게 묘사하고 있다. 이로써 작품의 영웅들은 국가 내의, 보다 고결한 귀족 계급에게 모든 낯선 재화를 차지할 수 있는 제반 합법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인민 내지 민족 문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소설은 네 단원으로 나누어진다. 주인공은 베저 지역 출신이며, 농민의 아들인 코르넬리우스 프리보트 (Cornelius Friebott)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청년 시절 (1880년경)에서 시작되어, 1923년의 놀라운 죽음까지 이어진다. “고향 그리고 편협함”이라는 부제가 붙은 제 1단원은 주인공의 사랑과 우정 등을 다루고 있다. 산지기의 딸인 멜제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회주의자, 마르틴 베셀과의 우정 관계가 그것들이다.

 

코르넬리우스는 독일 해군에 입대하여, 아프리카 해안까지 배를 타고 여행한다 귀국 후 그는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한 일자리를 찾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채석장에서 일하다가, 결국 보쿰에 있는 광산에서 광부로 일한다. 얼마 후에 주인공, 코르넬리우스는 광부들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당국에 체포되고 난 뒤에 다시 풀려난다. 이러한 와중에서 그는 자신의 연인이었던 멜제네가 그 사이에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에 사로잡힌 코르넬리우스는 남아프리카로 이주하려고 결심한다.

 

“낯선 공간 그리고 방황의 길”이라는 부제가 붙은 제 2 단원에서 주인공은 독일 전투병으로 남아 전쟁 (1899 - 1902)의 참전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코르넬리우스는 자신의 친구인 사회주의자, 마르틴 베셀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수공업자가 되어 생활비를 벌려고 애를 쓴다. 주인공은 너무나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하다. 코르넬리우스는 어느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이를 감히 드러내지 못한다.

 

“독일의 공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제 3단원은 주인공의 아프리카 탐험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여기서 에르케르트 탐험대에 관해서 자세히 서술한다. 에르케르트 탐험대는 시몬 코퍼라고 불리는 호텐토트 족의 족장에 대항해서 싸운다. 이때 주인공 코르넬리우스 그리고 그의 사촌, 게오르게가 이 싸움에 동참한다. 코르넬리우스와 게오르게는 다이아몬드를 찾아서 헤매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들은 남아프리카의 어느 농장을 구매한다. 두 사람은 이웃 농장 주인의 딸, 그레타 보른을 동시에 사랑한다. 결국 그녀와 결혼한 사람은 게오르게였다. 신혼 부부는 행복하게 가정을 꾸민다. 코르넬리우스는 다시 독일을 방문하기로 결심한다.

 

제 4단원은 소설의 제목인 “공간 없는 민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코르넬리우스는 다만 방관자로서 사민당 (SPD)의 모임에 참가한다. 여기서 당원들은 독일의 경제 발전을 위한 식민지 쟁탈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다. 주인공은 이에 대해 반감을 지닌다. 왜냐하면 식민지를 차지하려는 노력은 주인공의 견해에 의하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인공의 민족주의-보수적 특성을 감지할 수 있다. 코르넬리우스는 부모가 남긴 유산 문제에 골몰한다. 그 사이에 그는 어느 젊은 처녀를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그런데 이 처녀는 주인공이 옛날에 사귀던 멜제네가 비밀리에 낳은 딸이었다. 이 사실을 코르넬리우스는 미처 깨닫지 못한다.

 

주인공은 다시 남아프리카로 되돌아간다. 그의 일감은 한편으로는 건설업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장 경영이었다. 조만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코르넬리우스는 자신의 농장을 무력으로 차지하려는 영국인들에 대항해 싸운다. 결국 주인공은 영국군의 포로로 수감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포르투갈 령의 앙골라에서 주인공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힘들게 탈영한다. 정글 지대의 포로 수용소에서 영국군을 따돌리고 도망치기란 정말로 힘든 것이었다. 이후에 코르넬리우스는 독일로 되돌아간다. 그는 멜제네의 딸과 결혼한다. 그후 주인공은 설교자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노동자의 돌에 맞아서 목숨을 잃는다. 이때는 1923년 11월 8일이었다. 다른 한편 주인공의 친구 마르틴 베셀은 남아프리카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가, 탄광의 광부들의 데모에 가담한다. 이로써 그는 영국인들에 의해 총살형을 당한다.

 

소설은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고 있지만, 예술적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1. 인물 묘사가 너무 빈약하고, 추상적이다. 2. 서술적 언어가 너무 인위적이고 고답적이다., 3. 소설 내의 문제점이 너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첨예하게 드러난다. 4. 주인공의 입장에 대한 설명이 너무 논문 형식을 띄고 있으며, 지정학에 종속된 감이 짙다. 5. 특히 영국군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는 독일인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격앙되어 있으며, 독일인에 대한 동정심이 과장되어 있다. 6.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학문적 거리감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7. 물론 작품 속에서는 부분적으로 훌륭한 대목이 많다. (가령 광산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남아 전쟁에서의 생생한 전투 장면, 아프리카에서 다이어몬드 찾기,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이국적 풍경 묘사 등). 그럼에도 소설의 내용은 천박하고 멜로드라마의 요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스 그림은 이 소설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마치 당의 서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품은 독일 전체 그리고 민족 이익을 위하여 씌어졌을 뿐, 어느 그룹을 위해서 집필된 게 아니었다. 비록 작가가 1933년 이후에 국가 사회주의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입장은 근본적으로 나치와 다르지 않았다. 한스 그림은 1932년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히틀러는 아무런 강제 규정이나 이와 유사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의에 의해서 나치즘을 추종하게 만들었다. 이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나아가 그림은 1954년 그의 논문 「어째서, 어디서 그리고 어디로」에서 소련에 대한 독일의 공격을 필연적인 행위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소련을 공격하지 않으면, 동쪽의 낯선 지역이 독일에 커다란 위협을 가할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