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44

블로흐: 아비켄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10)

그런데 물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본질적으로 “잠재적 역동성의 존재”, 즉 수동적인 “가능성 속에 현존하는 존재”, 바꾸어 말하면 잠재적 능력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마치 형체로 출현한 세계의 물질처럼 어떤 주어진 여건에 따라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필수 불가결한 전제조건으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자신을 실현시키는 작용 형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오로지 능력입니다. 그것은 행위 속의 능동성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소재 없이도 얼마든지 영향을 끼치는 작용하는 존재는 신입니다. 신은 모든 사물을 움직이게 하지만 정작 자신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소재는 가능성의 상태에서 실현의 상태로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소재 스스로가 운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히려 ..

29 Bloch 번역 2020.03.17

블로흐: 아비켄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9)

2. 두 번째는 개별적 오성 그리고 보편적 이성에 관한 것입니다. 아비켄나는 후자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보편적 이성에 대한 어떠한 의혹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로써 그는 특권, 관습 그리고 믿음과 같은 편협함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개개인의 개별적인 오성은 수동적인 무엇으로 출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성은 자신과 결부되어 있는 개별적 육체의 행동양상에 의해서 결정되는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개별적 오성은 수동적입니다. 그 이유는 오성이 육체와 결부되어 있으며, 특히 소재의 수동적인 무엇, 수용하는 무엇 그리고 기껏해야 소재를 축적하는 일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보편적 오성은 능동적이라고 합니다. 혹은 그것은 고유한 형태로서 오성이 작용하는 에너..

29 Bloch 번역 2020.03.05

블로흐: 아비켄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8)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재를 “잠재적 역동성의 존재δυνάμει όν”로 규정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왁스와 같은 존재로서 그 자체 아무런 특성을 지니지 않는 무엇입니다. 다시 말해서 잠재적 가능성의 존재는 형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서 이를 드러내게 하는 존재입니다. 형태는 목표의 원인이고, 목표의 형체입니다. 그런데 엔텔레케이아는 여기서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소재로부터 배제된 “순수한 행위자actus purus”로서의 최상의 형태는 바로 누스입니다. 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순수한 사고의 신입니다. 바로 이러한 입장은 마치 헤겔 좌파가 그러했듯이 그가 사망한 직후에 첫 번째의 좌파의 효과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소요학파의 세 번째 수장인 스트라톤Straton은 소재..

29 Bloch 번역 2020.02.25

블로흐: 아비켄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5)

5. 생기 넘치는 자, 깨어남의 아들, 천체로서의 신 지식과 신앙 사이의 유희는 역사에서 기이하게도 몹시 우의적인 방법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우리는 가령 독일의 계몽주의 극작가, 레싱의 세 개의 반지에 관한 우화를 예로 들 수 있지만, 그밖에 상당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첫 번째 철학 소설 한 편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후자는 이븐 투파일Ibn Tufail의 『생기 넘치는 자, 깨어남의 아들』을 가리키는데, 이 작품의 줄거리는 유럽 문학에 전해져서 반지의 우화보다도 더 폭넓게 회자되었습니다. 이븐 투파일의 소설은 나중에 로빈슨 크루소를 내용으로 하는 일련의 문학 작품의 원전으로서 수없이 활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소설 자체는 사상적 근원을 고려할 때 아비켄나의 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소설의 제목 ..

29 Bloch 번역 2020.02.16

블로흐: 아비켄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4)

이 모든 것은 신비주의의 사상으로서 현세의 사항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주의는 아시다시피 사람들 사이에 필연적으로 어떤 기이한 동맹을 맺게 해주었습니다. 신비주의는 자연의 진리를 밝히려는 사고와 마찬가지로 교회 세력 그리고 독단론의 문헌에 대한 투쟁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초월을 지향하는 순수한 신비주의가 무작정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비주의자들은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서 열광적 신앙을 견지하지 않는다고 항변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범신론적으로 사고하는 신비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일반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도의 집중을 통한 명상을 제외한다면, 종교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종교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

29 Bloch 번역 2020.02.15

블로흐: 아비켄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3)

4. 신앙에 대한 지식의 관계 상기한 사항을 고려한다면 아라비아 철학자들이 자신의 사상을 신앙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물론 전해 내려오는 문헌에는 그들이 믿음에 관한 일반적 입장에 대해서 피력한 대목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을 충직하게 견지하겠다는 생각은 어떤 분명한 전제 조건에 의해서 축소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어른들은 아이들의 음식에 관해 별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싸구려 광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이, 아라비아 철학자들은 종교적 전언들을 단순히 혼탁한 사고가 뒤섞인 착상으로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아비켄나는 신앙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종교의 창..

29 Bloch 번역 2020.02.15

블로흐: 아비켄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2)

3. 상업 도시 그리고 헬레니즘의 토대 아비켄나는 의사로 활동했을 뿐, 평생 한 번도 수사로 봉직하지 않았습니다. 그 밖의 대부분 이슬람 사상가들 가운데 수사로 일했던 사람은 거의 드뭅니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 살았고, 주로 자연과학자로서 사고했습니다. 그래, 이슬람 사회 전체는 중세 유럽에서의 사회적 법칙과는 다른 사회적 정황 속에 속해 있었습니다. 물론 이슬람 사회가 봉건적 형태를 드러내었으며, 전쟁을 부추기는 사제 계급이 득실거리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당시 중동 지역은 문화적으로는 대가족 제도의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초기 시민사회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상업 자본이 주도적으로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사회의 근본적 동력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메카는 이슬람 ..

29 Bloch 번역 2020.02.13

블로흐: 아비켄나와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1)

“발전은 ‘물질로부터 형태의 추출eductio formarum ex materia’이다.” (아비켄나 – 아베로에스) 1. 결코 같지 않다. 모든 영특한 사고는 아마도 일곱 번 깊이 숙고한 다음에 출현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동일한 사고를 언제라도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시간 그리고 다른 상황 속에서 떠올린 동일한 사고가 더 이상 동일한 의미를 드러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사람만 변해 있는 게 아니라, 사고의 대상으로 떠올려야 하는 사물 역시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변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특한 사고는 언제나 그 자체 신선한 의미를 드러내는 무엇이며, 하나의 새로움으로서 보존되어야 합니다. 동쪽 지역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이들의..

29 Bloch 번역 2020.02.12

블로흐: 물질 개념의 역사 (2)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문제점이 명징하게 표현되리라고 여겨집니다. 즉 철학 사상의 거대한 방식이 어째서 지금까지 물질 이론과는 거의 무관하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물질 이론은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로 철학의 역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습니다. 나의 글이 다루려고 하는 내용을 고찰하면, 우리는 아마도 다음의 사항이 분명하게 밝혀지리라고 확신합니다. 즉 지금까지 관념론자들은 나름대로 물질을 깊이 연구해 왔는데, 바로 이러한 관념론 속에 물질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수많은 유산이 은폐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적대적으로, 신화적으로, 계층적으로, 엑스타시 내지 판타지의 특징으로써, 그게 아니라면 어떤 다른 껍질로 포장한 채 말입니다. 많은 시스템이 대부분의 경우 그러하듯이, “은폐된 물..

29 Bloch 번역 2020.01.15

블로흐: 물질 개념의 역사 (1)

물질을 구명하려는 오랜 (학문적) 과정은 끝난 것 같지만,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수많은 난제가 여전히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기계주의의 사고는 아직도 오랫동안 더 나은 무엇과 교체되지 않고 있습니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역사에 나타난 모든 사건은 내적으로 기계주의의 운동을 완전히 멈추도록 작용한다. (...) 이를 위한 첫 번째 과업은, 학문의 첫 번째 과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일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엥겔스는 루드비히 뷔히너, 그리고 오이겐 뒤링이라든가, 이러한 유형의 자유사상가의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경박한 사고에 대해 단호한 자세로 어떤 경멸감을 표명하였습니다. 젊은 마르크스 역시 “물질 이론 d..

29 Bloch 번역 202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