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158

박설호: (3) 동학 그리고 에코페미니즘

(앞에서 계속됩니다.) 9. 동학의 정신은 무엇보다도 “양천(養天)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동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천(養天)”이라고 판단합니다. 하늘을 모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늘을 돌보고 키우는 일이야말로 동학 정신의 핵심 사항이라고 여겨집니다. 박준건은 시천과 양천의 상호 관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모심은 살아계시는 것을 섬김이다. 살아계시는 것을 섬기는 것은 고정적 보존이나 현상 유지가 아니라, 키움(養)이다.” (박준건: 동학의 모심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 민족문화, 2016, 202쪽.) 양천은 나 자신의 변화와 세계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마음을 정갈하게 가꾸려는 내단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신쌍전(誠身双全)의 자세입니다. 그밖에 양천 속에는 개벽과..

2 나의 글 2023.10.22

박설호: (2) 동학 그리고 에코페미니즘

(앞에서 계속됩니다.) 5. “플레타르키아” versus “플레타나르키아”: 김용옥은 민본(民本)이라는 개념을 분명하게 규정하기 위해서 “플레타르키아Pletharchia”라는 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데모스’는 보다 광범위한, 계층적 제한이 없는 ‘다중(多衆)’을 가리키며, ‘아르케’는 ‘지배’의 개념보다는 ‘본원’의 의미가 내재한다.”는 것입니다. (동경대전, I, 272). 이 단어는 “민중”, “무리”, “다수의 인간”에 해당하는 “πλήθος”에다 국가의 기능을 강조하는 “archia”를 결합한 조어입니다. 그러나 아르케는 지금까지 “본원”에 비해 “지배”라는 의미로 더욱더 많이 활용되었음을 도올은 좌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후자, “아르키아”의 경우 서양에서 민주주..

2 나의 글 2023.10.22

박설호: (1) 동학 그리고 에코페미니즘

“최시형의 경물(敬物)은 인류세의 시대에 노아의 후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주 내지는 비상 보트에 승선할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필자) ........................... 1. “도올은 동양학의 걸물이다.” (김경재): 젊은 시절 도올 김용옥의 『여자란 무엇인가』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목 자체가 처음에는 나를 불쾌하게 했습니다. “여자란 누구인가?”라고 묻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원래 “무엇”이란 사물, 객체 그리고 대상을 지칭하므로, 여자를 그런 식으로 규정하는 게 기분 나빴습니다. 그렇지만 책에는 여성 혐오와는 정반대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성의 문제는 하느님에 대한 따님의 인권을 회복하는 문제다.” 이 말은 열사람의 영웅, 일남구녀(一男九女)..

2 나의 글 2023.10.22

서로박: 청바지, 혹은 레비스토로스 유감

“여성이 ‘모두가’하고 말할 때, 그들은 ‘모든 사람’을 떠올리지만, 남성이 ‘모두가’하고 말할 때, 그들은 ‘모든 남성’만 의식한다.” (마리 폰 에브너-에셴바흐) 1. 동독 출신의 소설가, 크리스타 볼프는 작품과 연설 등을 통해서 환경-, 평화- 그리고 여성 운동을 자극해 왔습니다. 만약 볼프의 문학을 연구한다면, 필자는 당시 유럽의 시대 정신을 구명하고, 블로흐의 철학적 모티프를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1985년 여름에 뮌헨대학교 헬무트 모테카트 교수Prof. Helmut Motekat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자본주의 분단국가에서 남자로 자라난 당신이 사회주의 분단국가에서 활동하는 여성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면, 사고의 유연성을 키우고, 세계관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도서를 구매하..

2 나의 글 2023.10.05

서로박: 청바지, 혹은 레비스트로스

1. 신문을 펼치면, 이맛살 찌푸리게 하는 사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당신을 위해 편안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청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 네바다주에서 낡은 청바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약 12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몇 군데의 구멍을 제외하면, 아직도 얼마든지 착용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청바지는 일주일 후 인터넷에 소개되었습니다. 그것은 레비스트로스 회사의 가장 오래된, 귀한 제품으로 경매에 넘겨졌고, 4만 6천여 달러에 팔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긴 청바지의 제조업자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그는 룁 스트라우스라고 불리는 유대인 출신의 독일인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레비스트로스는 민속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는 동명이인입니다. 2. 18..

2 나의 글 2023.10.05

서로박: 당신에게, 나 자신에게

지금부터 오르플리트 서한집에 실려 있는 글은 야누스적 방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향할 뿐 아니라, 나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나는 젊은 학생인 당신에게 글발을 보내려고 했습니다만, 나중에는 글발의 대상이 다원화되었습니다. A. 다수를 이루고 있는 분들에게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식들이 더욱더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남보다 불행하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싼 등록금 지출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호랑이 굴에도 뛰어들려고 할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부모님들의 이러한 뜻을 따릅니다. 더러는 대학을 그냥 대충 다니고, 졸업장 따서 그럴듯한 데에 취직하여 행복하게 살려고 합니다. 나라면 ..

2 나의 글 2023.10.01

서로박: 이성 국가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타자를 이해하려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취해야 한다.” (장 작 루소) 친애하는 J, 타자를 이해하려면, 타자에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타자와 무조건 동일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판적 거리감이지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일이야 말로 학문 행위에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판단하지 말고, 이를 견지하되 타자에 접근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무엇을 깨닫고 자신의 태도를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송두율: 불타는 얼음, 후마니타스 2017, 116쪽 이하.) 윤평중 교수의 책 『극단의 시대에 중심 잡기』 (생각의 나무 2008), 그리고 『국가의 철학. 한반도 현대사..

2 나의 글 2023.09.19

서로박: 세 가지 망각, 너무나 치명적인 신드롬

“널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 그들의 권력, 신뢰하지 마! 너희의 마음, 텅 비워 있지 않도록 깨어있어라! 행여나 빈 마음, 이용당할지 모르니. 불필요한 일, 행하라! 너희의 입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노래 불러라!” (귄터 아이히: 「꿈」) 1. 모르는 게 약인가? L'ignorance est-elle bonne ? 망각 - 그것은 미덕이자, 불행이기도 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일상사 내지 가십거리는 뇌리에 떠올리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건망증은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정치가들은 마치 어리석은 자들을 달래 주려는 듯이 “유권자 님, 모르는 게 약입니다. 그러니 모든 걸 안심하고 내게 맡겨주세요” 하고 공언합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이득을 은밀히 챙긴 다음, 마음속으로 ”약 오르지, ..

2 나의 글 2023.09.15

서로박: (3) 부르디외, 나를 키운 건 8할이 잡지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12. 그래, 80년대 초에 비장한 각오로 한반도를 떠났습니다. 한 마리 볼품없는 “미운 오리새끼”는 아름다운 백조가 되어 유럽에서 찬란하게 날아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고 음식이 달라서 힘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 사람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빽”이 없다는 이유로 올바른 주장을 깔아뭉개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개별적 능력에 의해 합리적으로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유럽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선량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제도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팔이 안으로 굽는 부당한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미약하게 드러날 뿐이었습..

2 나의 글 2023.09.10

서로박: (2) 부르디외, 나를 키운 건 8할이 잡지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이 무렵 나에게는 잡지를 읽을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면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지식인들은 당락을 위한 상대 평가 그리고 경쟁 교육을 맹렬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SKY 대학생들을 수재들로 인정하면서, 시험을 통한 선발 그리고 능력주의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개개인의 능력 차이는 처음부터 시험을 통해서 가려질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시험은 처음부터 묻는 데 대한 대답만을 요구한다는 한계를 지닙니다. 명저 한 권 읽지 않고 시험만 잘 치르면 당락이 결정되고 수석과 꼴찌가 정해집니다. 이러한 사회는 기껏해야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수동적 관료만을 키워낼 뿐입니다. 창의력과 비판력은 무엇보다도 독서와 토론을 통..

2 나의 글 2023.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