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서로박: 당신에게, 나 자신에게

필자 (匹子) 2023. 10. 1. 07:03

지금부터 오르플리트 서한집에 실려 있는 글은 야누스적 방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향할 뿐 아니라, 나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나는 젊은 학생인 당신에게 글발을 보내려고 했습니다만, 나중에는 글발의 대상이 다원화되었습니다.

 

A. 다수를 이루고 있는 분들에게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식들이 더욱더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남보다 불행하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싼 등록금 지출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호랑이 굴에도 뛰어들려고 할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부모님들의 이러한 뜻을 따릅니다. 더러는 대학을 그냥 대충 다니고, 졸업장 따서 그럴듯한 데에 취직하여 행복하게 살려고 합니다. 나라면 무조건 이를 따르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무작정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학문보다 중요한 것은 삶이며, 먹고 사는 게 능사이기 때문입니다. 굶어본 사람이면, 이를 뼈저리게 느낄 것입니다. 그 밖에 나는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를 자를 많이 만났습니다. 학문에 몰두한다고 해서 인품이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문 탐구와 인품을 쌓는 일은 별개입니다. 가령 마음씨는 학문적 식견을 쌓는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지식은 약간 축적되지만, 몸은 늙어갑니다. 그러나 마음은 더 나아지지도, 더 늙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학문 외적으로 내가 여러분들에게 충고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여러분들에게 감히 권고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1. 가족과 친구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자, 2. 절대로 폭력을 사용하지 말자. 폭력에서는 언어폭력, 물리적 폭력 그리고 성폭력이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세 가지 신체 부위 (입과 주먹 그리고 생식기)를 함부로 놀려서는 아니 됩니다. 3. 교육비 의료비 등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노력하자, 설령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돈이 없어서 병들어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4. 병역의 의무를 철폐시키고, 자원입대 제도를 만들자, 5. 가까운 분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따뜻하게 대하자, 6. 믿음을 가지자. 여기서 믿음이란 특정 종교를 포괄하는 광의적 개념입니다. 7.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일에 많은 힘을 기울이자, 8. (여러분이 남자라면) 여자들을 우대하고 받들어 모시자, 남자들은 여성들이 밤에 혼자 다니기 두려워하는 것을 잘 모릅니다. 9. (돌)고래를 절대로 죽이지 말자, 고래는 자신의 정인을 죽인 사람을 10년 동안 기억한다고 합니다. 10. 자식을 낳으면, 사랑과 근엄함으로 키우자. 절대로 아이들을 때리거나, 욕설을 가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나는 따뜻한 마음으로 키워주고 보살펴준,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랑과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이를 갚지 못하는 것을 뒤늦게 안타까워합니다. 11. 사형제도를 철폐시키자. 나는 조봉암 선생이 법의 이름으로 처형당한 것을 지금도 애통해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서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한국 사회의 악습을 서서히 고쳐나가는 일입니다. 한국은 해외에서 바라보면 “부자의 천국”입니다. 한국의 상류층 사람들의 작태는 거의 끔찍할 정도입니다. 그들 가운데 현명한 자공(子貢)과 같은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일반 사람들이 이를 질타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것은 이상할 정도이지요.

 

B: 소수를 이루고 있는 분에게

 

당신은 고결한 뜻을 위해 가시밭길을 자청해서 걸어가려고 결심했군요. 일단 박수를 보냅니다. 대부분 사람이 “돈과 여자” 혹은 “돈과 남자”에 전력투구하고 사는 데 비하면, 자청해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 - 이것은 그야말로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일입니다.

 

K에게 몇 가지 행동 전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예술, 학문, 문학 등의 가시밭길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든 고통입니다. (잔인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중도 포기하거나 방향 전환하려면, 아예 시도하지 마세요. 혹시 남에게 가시밭길이 자신에게 꽃길로 비치지 않습니까? 상상 속의 삶의 현실이 실제 삶의 현실보다 찬란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무언가를 해낼 것입니다. (2)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재물에 집착하지 말고, 남의 시선에 개의치 마세요. 그렇다고 돈과 명예를 처음부터 포기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돈은 오로지 당신의 뜻을 위해 활용되어야 합니다. 물질적 가난을 오히려 행복으로 여기십시오.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심리적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부유한가를 느끼고 이를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남들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3) 선구자가 되십시오.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자는 일반인들이 추구하는 돈과 사랑 등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책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감추어져 있는 진리, 새로운 진리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세요. 예컨대 잊힌 문학과 사상 등을 연구하십시오. 남들이 소홀히 하는 것들 속에는 예술적, 문학적, 학문적 진리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4) 겸허하도록 애쓰십시오. 이는 예의범절에 유념하라는, 이른바 겸손해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을 모든 자연 앞에 낮추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 그리고 사물들은 우리의 은사입니다. 도(道)를 생각해 보십시오. 도는 한편으로는 길이요, 과정입니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 (首)를 아래로 내리는 행위입니다. 자신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게 도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남들과 자연의 아래로 낮출 때 세상의 가장 밑바닥의 문제, 감추어진 본질의 문제가 “어느 맑게 갠 날 아침 갑자기” 인식될 것입니다.

 

C. 나 자신에게

 

“서로박, 당신이 뭔데, 건방지게 젊은이들의 삶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려 하시오? 충고란 불필요한 것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인성과 당신의 처지는 나의 인성과 처지와는 다르지 않나요?. 그러니 퇴직한 다음에는 뒷방 늙은이로 조용히 입 다물고 살아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