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시

박설호의 시, '곤잘로 라미레스'

필자 (匹子) 2025. 4. 26. 09:35

곤잘로 라미레스 *

박설호

 

그대가 내게 선물한

남미 음악의 카세트에는

그대의 희망과 노여움

그대의 참을 수 없는

고독이 배여 있다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대 숨겨 주었다고

단도에 찔린 친구

피가 배인 볼리비아의

진흙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커피와 마리화나의 땅

허나 그대 아랑곳없이

투박한 인디언의

미소를 남기곤 했지

 

곤잘로 언제였던가

그대는 뮌헨에서 내게

에스파냐 글을 보여주었네

시방은 남의 식솔이 된

처자의 뒤엉킨 편지를

 

신(神)과 혁명 그리고

사랑 노래한 그대의

시(詩)들 하지만 유럽인들

횃불에 둘러앉아서

노래 부를 줄 모른다

 

서양의 꽃송이들 다만

그대의 남성을 사랑하고

순박한 여자바라기

그들의 차가운 가슴에

불 지필 줄 안다

 

그대 내게 선물한

남미 음악의 카세트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칠백 마르크의 생활비

망명의 눈물이 담겨 있다

 

.....................

 

* 곤찰로 라미레스 (1952 - ): 볼리비아 출신의 잘 알려지지 않은 독일 망명 시인

** 실린 곳: 반도여 안녕 유로파, 울력 2024.

 

 

곤찰로 라미레스는 인디언 혈통을 답습했다. 그의 눈빛에는 에스파냐의 흔적이 배여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은 비교적 공감하기 어려운 생경한 분위기를 자아낼지 모른다. 21세기 한국의 눈앞의 현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모색하는 자의 관심밖의 이야기일 테니까. 그러나 문학은 새로운 비판적 시각을 필요로 한다. 다른 한편 낯선 세상, 이질적인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지금 여기의 삶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냉정하게 고찰하는 힘을 키워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