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a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서로박: (4)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2. 서문. 캄파넬라에서 디드로까지 (르네상스 시기 - 프랑스 혁명 전후)

필자 (匹子) 2025. 1. 9. 09:22

(앞에서 계속됩니다.)

 

4.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1623): 완벽한 국가주의의 질서 유토피아, 『태양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하루 네 시간 일하며 생활합니다. 하루 일과는 점성술에 의해 빈틈없이 짜여 있습니다. 사유재산은 용납되지 않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고문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체주의의 의혹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인간의 세 가지 악덕인 나태, 자만, 이기심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노예제도, 가족 제도가 철폐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신에 사형제도도 존속되고 있는데, 형이 집행되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5. 프랜시스 베이컨의 기술 유토피아 (1627): 베이컨의 작품 『노붐 오르가논』그리고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국가주의 시스템에다 과학 기술의 특성을 강하게 부각시킨 문헌들입니다. 베이컨은 궁핍함, 빈부차이, 과도한 세금 그리고 사회적 방종 등을 숙고하면서, 하나의 대안으로서 과학 기술에 근거하는 유토피아 사회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베이컨의 사회는 일부일처제의 가족 제도가 존속됩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학문 연마의 솔로몬 연구소가 가동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베이컨은 과학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인간의 지상의 행복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6. (요약) 계몽주의, 라이프니츠의「우토피카 섬에 관하여」(1688): 이 장은 계몽주의 사상과 유토피아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신론, 범신론 그리고 기계적 유물론 속에 도사린 혁명적 특성이 차례대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몽주의 사상에서 사회계약론 그리고 평등 사회에 관한 갈망의 사상적 단초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로써 계몽주의는 시민 주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데, 이 시기의 유토피아들은 시민 주체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언급되는 것은 라이프니츠의 잘 알려지지 않은 문헌 「우토피카 섬에 관하여De insula Utopica」(1688)입니다. 여기서 라이프니츠는 평등사상 그리고 학문과 기술이 중시되는 사고가 다루어져 있습니다.

 

7. 윈스탠리의 『자유의 법』(1652): 윈스탠리의 『자유의 법』은 주어진 현실의 직접적인 개혁을 강하게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르네상스 유토피아에서 나타나는 정태적 특성과 차별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윈스탠리는 지금 그리고 여기, 구체적으로 말해 17세기 영국 현실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여기서는 초기 자본주의 경제적 생산 양식에서 필연적으로 출현하는 빈부차이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자유의 법』은 소작농 보호를 위한 단위 조합 운동, 부동산의 공유화 정책, 권력의 분산 등을 중요한 관건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8. 베라스의 세바랑비 유토피아 (1675): 베라스가 설계한 유토피아는 무엇보다도 가난과 폭정의 대안으로 설계된 것입니다. 군주제와 민주제가 혼합된 국가, 세바랑비에서는 만인이 공동으로 일하고, 재화를 공동으로 분배합니다. 그들은 사유재산을 떨치고 공유제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실천되는 것은 세 가지 자연법적인 권리입니다. 그것은 자기 보존의 권리, 행복 추구의 권리 그리고 종족 보존의 권리를 가리킵니다. 베라스의 유토피아는 고전적 유토피아와 17세기 후반부의 자연법사상의 유토피아의 특성이 기묘하게 혼합되어 있습니다.

 

9. 푸아니의 양성구유의 아나키즘 유토피아 (1676): 푸아니의 『자크 사뒤르의 모험』은 새로운 거대한 대륙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남쪽 대륙이 오스트레일리아와 일치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남녀추니들입니다. 다시 말해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남녀 차이와 남녀 구별로 인한 제약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은 채 평등하게 살아갑니다. 푸아니의 작품은 종교의 권위 그리고 국가의 체제가 얼마나 개개인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지를 지적하였습니다.

 

10. 퐁트넬의 무신론의 유토피아 (1682): 퐁트넬의 『아자오 섬 이야기』는 절대 왕정과 패륜을 비판하기 위해서 떠올린 이상적인 공화국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치열하고도 섬뜩한 주제로 인하여 작품은 오랫동안 퐁트넬의 서랍 속에 묵혀 있어야 했습니다. 아자오 섬의 인민들은 종교가 아니라, 자연의 원칙에 입각하여 이성적인 판단을 도출해내면서 살아갑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예식도, 사원도 자이하지 않습니다. 사제계급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자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퐁트넬이 전근대적인 일부다처에 근거한 남존여비의 삶을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1. 페늘롱의 유토피아, 베타케 그리고 살렌타인 (1699): 페늘롱의 소설 『텔레마크의 모험』은 왕족의 교육서로 집필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두 가지의 유토피아 모델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베타케”로서 태고 시절의 원시 공산주의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면, 다른 하나는 “살렌타인”으로서 사회적 체제 내지 제도적 장치를 지닌 유토피아 모델을 가리킵니다. 전자는 아무런 법 규정이 필요 없는 무위의 아르카디아의 사회이며, 후자는 이와는 다른 체제와 법령을 갖춘 근대 사회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로써 페늘롱이 비판하려고 한 것은 당시의 절대 왕정 그리고 사유재산제도였습니다.

 

12.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의 유토피아 (1703): 라옹탕의 여행기는 고결한 야생의 삶이 어떻게 유럽의 계층 사회와 다른가를 시사해줍니다. 라옹탕은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결한 야생의 생활을 서술하였습니다. 그의 문헌은 국가의 폭력, 사유재산제도의 취약점, 권력자 그리고 사제계급의 가렴주구 등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라옹탕의 유토피아는 비국가주의의 모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가령 인디언 휴런 부족의 삶은 국가주의 대신에 자연 법칙에 의거하여 사회생활 그리고 성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13. 슈나벨의 『펠젠부르크 섬』(1731): 슈나벨은 찬란한 공동적인 삶을 꿈꾸는 계몽주의 유토피아를 묘파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숭상하는 선한 사람들은 펠젠부르크의 섬에서 자유와 평등의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없으며, 선량한 사람들만이 이곳에서 정착할 수 있습니다. 농업 중심의 경제 체제 그리고 가부장주의의 일부일처제가 특징적입니다. 슈나벨은 유토피아 사회의 정태적인 구도를 서술할 뿐 아니라, 펠젠부르크 유토피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구체적으로 묘파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강조되는 것은 시민주체의 자유로운 삶인데, 이는 유럽 사회의 탐욕과 투쟁 그리고 살인과는 대비되는 유토피아 사회입니다.

 

14. 모렐리의 『자연 법전』(1755): 자연법전은 “사회주의 사상을 선취하는 평등한 이상국가의 상”으로 명명될 수 있습니다. 모렐리는 공유물의 분배를 강조하였으며, 이윤 추구를 위한 상업을 금지하였습니다. 지배 권력의 횡포는 모렐리의 국가주의 유토피아에서는 처음부터 차단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모든 권력은 분산되어야 하며, 정치 제도 역시 처음부터 연방제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평등 국가는 가족제도에 있어서 가부장주의를 우선적으로 간주하되, 결혼 제도는 유연하게 실행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모렐리는 주장합니다.

 

15. 디드로의 「부갱빌 여행기 보유」(1769): 디드로는 부갱빌 여행기를 바탕으로 타히티의 섬의 사회 체제와 유럽의 사회의 그것을 일차적으로 비교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유럽의 정복 이데올로기, 강제적 성윤리 그리고 자연에 위배되는 기독교 중심주의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타히티 섬의 자연친화적인 삶, 자유로운 성 생활 그리고 평등한 사회 구도가 언급됩니다. 디드로의 문헌은 유럽인과 타히티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을 어떤 이상적 인간형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갱빌 여행기 보유」는 자본주의 이전에 출현한, 강대국의 식민지 쟁탈이라는 횡포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프란츠 파농의 반식민주의 저항의식을 선취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전합니다. 도서의 출판은 나에겐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로 필자는 한편으로는 저역서 발간을 통해서 고마운 분들에게 보은(報恩)하고 싶습니다. 빌헬름 포스캄프 교수님Prof. Dr. Wilhelm Vosskamp 그리고 고(故) 헬무트 푀르스 박사님Dr. Helmut Förs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밖에 많은 분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군요. 그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둘째로 필자는 저역서의 발간으로 미지의 독자들에게 봉사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지식 전수를 의도하지는 않습니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듯이, 독자들이 책의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고 그 내용을 더욱 발전시키기를 바랄 뿐입니다. 울력의 강동호 사장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리면서...

 

안산의 우거에서

필자 박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