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9. 생시몽의 중앙집권적 유토피아 사상 (1821): 생시몽은 자본가 그리고 무산계급 사이의 갈등을 면밀하게 고찰하지 않고, 그저 국가 내지 상류층의 시각에서 하나의 바람직한 사회를 거시적으로 광활하게 설계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세부적 사항에서 여러 가지 하자를 드러내는 것은 필연적이 귀결일 것입니다. 이 장은 생시몽의 중앙집권적 시스템의 특성 그리고 산업의 발달을 위한 국가의 중앙집권적인 설계 등을 구명하고 있습니다. 생시몽의 취약점으로 우리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추상적 관계 설정, 엘리트 관료주의의 횡포 및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통찰력 부족, 여성문제에 대한 외면 등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10. 푸리에의 공동체, 팔랑스테르 (1829): 푸리에의 팔랑스테르는 비국가주의의 모델로서, 총 1620명 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노동과 향유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자생의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푸리에는 상인 계급을 혐오하였으며, 시민 사회의 일부일처제의 체제 또한 부자유와 착취의 온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본 장은 노동과 향유의 접목 가능성 그리고 1부1처제의 장단점 그리고 가족 파기로 인한 강등 등에 관한 문제를 추적합니다. 특히 푸리에는 노동과 향유의 일원화 그리고 성 해방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랑의 삶의 가능성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11. 카베의 유토피아, 『이카리 여행』 (1840): 카베의 유토피아는 생시몽의 그것과 함께 중앙집권적 사회 유토피아에 편입될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카베에 이르러 르네상스 시대의 유토피아에서 공통적으로 출현한 근검과 절제의 미덕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고도의 생산력을 통한 높은 수준의 삶이 바람직한 삶의 목표로 출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은 보다 발전된 과학 기술을 통한 향유의 삶, 가부장제, 사회주의 계획 경제 등에 관한 이카리 국가의 특성을 개관하고, 국가의 과도한 통제, 우상 숭배 그리고 분서갱유의 정책 등과 같은 취약점을 구명하고 있습니다.
12. 바이틀링의 기독교 공산주의 (1843): 바이틀링은 기독교 공산주의를 표방했는데, 그의 사고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사회주의 이론이 태동할 시기에 동시적으로 출현한 것입니다. 이 장은 기독교 공산주의의 특성, 이를테면 (생시몽의 전체주의 구도, 사회주의 조함공동체) 그리고 한계점 (비국가주의의 자율성 배제, 남녀평등에 대한 편견 등)을 체계적으로 지적하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특히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바이틀링의 혁명 운동의 실패 원인을 구명하는 일입니다. 이는 외적으로는 생시몽주의를 수용하고, 내적으로는 푸리에의 이론을 도입한 데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13. 데자크의 급진적 아나키즘 유토피아 (1858): 데자크가 설계하는 비국가주의의 유토피아는 한마디로 자치, 자활 자생을 투구하는 소규모 공동체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푸리에의 팔랑스테르와는 달리, 데자크는 위마니스페르 L‘Humanisphère 공동체를 통하여 체제의 규모, 일감 그리고 노동 시간 등에 어떠한 규정을 처음부터 인위적으로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데자크의 공동체는 푸리에의 그것에 비해 더 많은 자율성 그리고 공동체 실현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소규모 공동체가 국가 자본주의가 확장되어나가는 주위 여건과 마찰을 빚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4. 마르크스의 자유의 나라에 관한 유토피아 (1867): 마르크스의 자유의 나라에 관한 분석 그리고 마르크스 사상의 긍정적 유토피아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완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유토피아의 개념은 마르크스 사상에서 첨부되어 있는 19세기 초기 자본주의의 시대에 일회적으로 나타난 추상적 사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발전을 도모하려는 사회적 의향을 담은 역사철학적 갈망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것은 마르크스 사상이 추구하는 긍정적 의향 내지 전망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 사상은 가까운 목표와 먼 목표를 동시에 지향하는데, 이루는 이 두 가지 사항을 긍정적 의미의 구체적 유토피아로 이해하려 합니다.
15. 아나키즘과 비국가주의 유토피아 (1880년 이후): 본 장은 한편으로는 아나키즘의 사상적 맥락을 약술하며, 이에 근거하여 국가주의와 비-국가주의의 유토피아 모델을 해명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의 과업은 한편으로는 정치적 토대를 구명하는 세계관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토피아 모델에 관한 학문적인 물음을 통해서 밝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나키즘 운동은 체제로서의 국가가 개인에게 자행하는 횡포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국가주의”의 모델과 “비-국가주의”의 모델은 아나키즘의 사상적 단초와는 다른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유럽 전역에 사회적 경제적 측면의 변모를 추동하였습니다. 초기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은 유럽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켜나갔습니다. 고대에 널리 퍼졌던 질적 가치로서의 자연, 영혼적인 것 그리고 여성적인 것은 퇴보를 거듭하고, 그 대신에 합리성Ratio 그리고 수학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자본주의는 고대적 가치를 포함시키지 못하고, 철저히 배제했던 것입니다. 시장이 작동되었지만, 경제적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전환에 의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는 의미로 변화됩니다. 다시 말해서 시장은 물물 교환을 활성화시켜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대지주의 자본가의 이익 추구를 위해 작동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시장은 더 이상 자기 치유의 능력을 지닌, 사용 윤리를 실천하는 토대가 아니라, 마치 “암울한 악마의 방앗간dark Satanic mills”과 다름이 없습니다. 시장은 인간과 환경을 지속적으로 파괴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자유는 모조리 박살나기 시작합니다. (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Boston 1944, 33쪽). 여기서 말하는 “악마의 방앗간”이라는 표현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블레이크는 「예루살렘」이라는 시에서 산업혁명을 “암울한 사탄의 방앗간”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카를 폴라니는 블레이크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시장의 자유방임주의가 개별 인간의 경제적 삶에 얼마나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는가를 지적하였습니다. 국가와 정부 그리고 발전된 과학 기술은 이러한 전환을 작동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상기한 변화 과정은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을 고찰할 때 자본주의의 가장 끔찍한 영향으로 각인될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에 관한 서양인들의 사고는 궁극적으로 세 가지 모티프에서 태동하였습니다. 돈의 무한대의 증식과 이로 인한 폐해, 갈등과 전쟁이라는 여러 유형의 폭력 그리고 이기주의의 생활관 등에 대한 비판이 그것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서양의 유토피아는 -국가주의, 혹은 비-국가주의든 간에- 어떤 새로운 인간형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랑, 협동성 그리고 대아의 정신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서양인의 삶은 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개인을 넘어서는, “우리”의 안녕을 두레 공동체의 생활방식은 서양인에게 결여된 무엇을 부분적으로 채워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큰 자아를 도모하는 한국인들의 이타주의의 생활방식은 구분과 차단이라는 서양의 사고에서 파생되는 제반 유형의 갈등, 미움, 질투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생태 공동체의 실천이야 말로 미래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제 4권 그리고 제 5권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질 것입니다. 울력의 강동호 사장님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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