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a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서로박: (2)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1. 플라톤에서 모어까지 (고대 - 르네상스 초기) 서문

필자 (匹子) 2025. 1. 6. 14:27

7. 스토아사상과 세계국가 유토피아: 스토아 사상은 귀족 학자들에 의해서 진척된 것으로서 공유제, 노예제, 전통적 가족제도 등의 개혁을 직접적으로 꿈꾸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스토아 사상은 개인의 내면적 자세에 관해 많은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능한 세계 국가에 관한 그들의 기대감입니다. 초기 스토아 사상가들의 경우와는 달리 파나이티오스와 같은 중기 스토아학자들은 기원후의 시점부터 특히 거대 로마제국에 합당한 찬란한 세계국가의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점에서 소규모 도시 국가의 차원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8. 이암불로스의 『태양 섬』과 헬레니즘 유토피아: 이 장은 고대의 문헌, 에우헤메로스의 『성스러운 비문』과 이암불로스의 『태양 섬』을 다루고 있습니다. 에우헤메로스는 축복의 섬, “판차에아”에서 출현한 축제의 이상 국가를 묘사하였습니다. 이상국가의 주민들은 신들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암불로스는 찬란한 남쪽의 섬을 설정하여, 강제 노동이 필요없는, 평등한 사회적 삶을 형상화하였습니다. 『태양 섬』은 가족제도의 폐지의 측면에서 도니 그리고 캄파넬라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지막 대목에서 필자는 고대 사회의 유토피아의 특성을 요약 정리해보았습니다.

 

9. 키케로의 『국가론』:키케로의 국가론은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한 마지막 문헌입니다. 여기에는 군주제, 과두제 그리고 민주제의 장단점이 언급될 뿐 아니라, 고대인들의 정치사상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고대인들이 고찰한 여러 가지 정치 제도는 오늘날의 의미와는 조금씩 다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장 「스키피오의 꿈」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훌륭한 덕목을 지닌 지도자에 대한 키케로의 갈망입니다. 정치적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불세출의 영웅이 내려다보는 광대무변한 우주론적 시각이라고 합니다.

 

10. 기독교 사상 속에 도사린 유토피아: 이 장은 에른스트 블로흐가 파악한 기독교 속에 도사린 사랑의 공산주의를 요약한 것입니다. 블로흐는 예수의 종말론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기독교 사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역동적 특성과 오메가로서의 묵시록을 강조하였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회적 제반 관련성 속에 은폐되어 있습니다. 지상의 천국으로서의 “하늘나라”의 방향은 갈망의 의향을 고려할 때. “한울나라” (윤노빈)의 방향과 거의 일치하는데,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유의 나라”의 방향과 거의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11.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른바 마니교에서 언급되는 선악의 이원론의 사상을 발전시켜서, 이른바 악마의 국가를 극복한 신의 국가를 설계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로마 제국은 이른바 중간 단계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파악한 국가의 이상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도 바울과는 달리 지상에 신의 국가를 탄생시키는 과업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파악하였습니다. 7이라는 숫자에 의미대로 해방의 일요일에 변화 내지 전복은 실제 현실에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2. 조아키노의 제 3의 제국에 대한 갈망: 조아키노는 오리게네스의 성서의 독해의 세 가지 방법을 발전시켜서, 기독교 사상 속의 역사철학적 의미를 도출해내었습니다. 그것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신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역사의 세 번째 단계인 성신,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면, 계급이 필요 없는 평등한 사회가 도래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시아사상과 천년왕국설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평등한 “제 3 제국”에 대한 갈망은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자들에게 굶주림을 떨칠 수 있는 찬란한 나라를 갈구하도록 작용했습니다.

 

13. 천년왕국의 사고와 유토피아: 천년왕국의 사고는 현대적 유토피아의 갈망의 상을 미리 선취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장소는 수동적이며 불변하는 상인데 반해, 유토피아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성취되는 결과로 이해됩니다. 천년왕국의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사고의 과정 내지 분석이 아니라, 비논리적으로 출현하는 상의 결합입니다.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인간이 의식하는 “지금 시간” 속에는 모든 기대감과 혁명적 의식이 응집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유토피아는 합리적 설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주어진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4. 뮌처가 실천한 천년왕국의 혁명: 이 장에서 필자는 독일에서 농민혁명을 주도한 토마스 뮌처의 삶과 사상을 조명했습니다. 뮌처는 신의 과업과 인간의 과업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신의 과업에 동참하는 일이 아니라, 오로지 사회정치적인 측면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밖에 없다고 천명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뮌처가 무조건 자신의 과업이 신의 뜻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믿지는 않았습니다. 뮌처는 실제 현실에서 신의 뜻을 외면하는 사악한 인간들에 대항하여 투쟁하려고 하였습니다.

 

15. 모어의 자유 유토피아: 『유토피아』는 주지하다시피 유토피아 문헌의 효시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모어는 인간의 세 가지 악덕인 나태, 탐욕 그리고 자만을 극복하고, 핍박당하는 인민의 행복을 극대화한, 찬란한 섬을 묘사하였습니다. 사유재산제도는 철폐되어 있습니다. 하루 6시간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자유의 실천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비록 노예제도가 존속되고 있지만, 만인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갑니다. 캄파넬라의 유토피아가 점성술에 입각한 질서의 유토피아라면, 모어의 유토피아는 연금술에 근거한 자유의 정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끝으로 사족의 말씀을 첨부합니다.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는 나의 정신적 자식입니다. 자식을 출산하기 위해서 꼬박 13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38 권의 저역서를 간행했지만, 출간할 때마다 마치 “병자가 밤중에 아이를 낳은 뒤에 황급히 불을 들어 살펴보는厲之人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것처럼 부끄러움이 앞섰던 게 사실입니다. 일천한 지식에서 비롯한 오류가 행여나 자식의 얼굴에 새겨져 있을까 꺼림칙했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출산일 하루만큼은 커다란 기쁨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집필 과정에서 국내외의 많은 분들로부터 커다란 도움을 받았습니다. 베풀어주신 그들의 은혜를 이 책으로써 결초보은하려고 합니다. 뮌헨의 독일문화원,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Friedrich Naumann Stiftung, 한국연구재단, 한신대학교 측의 도움이 컸습니다. 나의 책에 관심을 기울여준 도서출판 울력 측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이 앞으로의 유토피아 연구에 하나의 초석으로 작용하기를 바랍니다.

 

안산의 우거에서

필자 박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