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a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서로박: (3)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2. 서문. 캄파넬라에서 디드로까지 (르네상스 시기 - 프랑스 혁명 전후)

필자 (匹子) 2025. 1. 8. 11:02

 

 

여러 유형의 유토피아는 대개 시기상조의 진리이다.” (Lamartine)

역사는 감금된 예언이다.” (Carlyle)

 

시기상조의 진리 -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애타는 갈망 속에는 마치 수정 (水晶)처럼 결정되어 있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결핍된 무엇입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에 결핍된 무엇을 갈구하는 인간은 언젠가는 그것이 충족되기를 갈망합니다. 주어진 삶이 쓰라린 고통을 안겨준다면, 유토피아는 어쩌면 -시인, 페터 후헬Peter Huchel의 표현을 빌면- “얼어붙은 강이 갈대의 목을 통해서” 숨을 쉬는 생명의 연장과 같습니다. (Peter Huchel: Werke Bd. 1, Frankfurt a. M. 1984, 154).

 

그렇기에 시기상조의 진리는 역사적 사실의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칼라일이 말한 대로 감금된 예언으로 가득 찬 무엇입니다. 가령 역사적 사실 속에는 어떤 교훈이 은밀히 도사리고 있습니다. 특정한 교훈은 주어진 당대에서 미처 인식되거나 실현되지 못하고, 대체로 미래로 향해서 연기되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어떤 갈망은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차단되고 제한되지만, 후세 사람들은 역사 속에 드러난 어떤 패배의 교훈이 미래로 이전되는 것을 예리하게 간파합니다. 피맺힌 역사를 통찰하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자는 틀림없이 과거 사람들의 내적인 갈망의 상 그리고 도래할 미래의 삶과의 연관성 등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 2권의 배경은 르네상스 이후의 시대부터 절대주의 왕정의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6세기에 이르러 신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가치 그리고 이에 대한 의식이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현세의 삶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사람들은 권력과 종교 사이의 어떤 정치적 유착관계를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상업이 활성화되자, 자본주의의 생산 양식이 주어진 현실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중세의 라티푼디움의 경제 구도가 파기되었으며, 거대한 국가의 토대가 정착되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시기에는 절대 왕정 체제의 기반이 다져졌는데, 이와 병행하여 사회의 저변에서 영향을 끼친 것은 경제적 생산양식이었습니다. 물론 절대 왕정 체제는 종교적 권력을 약화시키고, 대도시의 융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일시적으로 진보의 과정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르네상스 이후의 시기 유럽 내에서의 사회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습니다, 귀족과 사제 계급은 놀고먹으면서 과거와 다름 없이 일반 서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였던 것입니다. 권력의 가렴주구와 병행하여 대지주들은 소작농들에게 크고 작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참담한 현상은 토머스 모어 이후에 나타난 고전적 유토피아의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캄파넬라 그리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고전적 유토피아에서는 자유와 평등의 이상이 만인의 노동으로 규범화되어 있으며, 근검절약과 절제의 삶이 하나의 미덕으로 확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만인의 4시간 내지 6시간 노동의 규칙은 특권층의 기득권 그리고 빈부 차이를 없애려는 그들의 열망과 직결됩니다. 이로써 출현하는 것은 괴팅겐 출신의 철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이 지적한 바 있듯이 기독교적 이웃 사랑 대신에 “먼 곳의 사랑Fernstenliebe”, 그리고 “다른 세상에서 전해지는 미덕”이라는 가치였습니다. (Nicolai Hartmann: Ethik, De Gruyter: Berlin, 1962, 491) 시기상조로서의 진리가 시간적 차이를 전제로 한다면, 먼 곳의 사랑은 공간적 거리감을 의식하게 해줍니다. 16세기의 유토피아는 주로 지구상의 멀리 떨어진 공간을 하나의 국가 체제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고대의 축복의 섬에 대한 갈망과 관련됩니다. 이 시기에는 드물게 비국가주의의 유토피아 또한 출현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예로서 라블레의 「텔렘 사원」이 있습니다.

 

16세기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고결한 야생Bon-Sauvage”에 대한 기대감이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습니다. “고결한 야생”이라는 표현은 알론소 에르시아 이 수니가Alonso de Ercilla y Zúñiga의 서사시 「아로카나La Araucana」(1569)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미구엘 세르반테스는 언젠가 이 작품을 카스티야 언어로 집필된 세 편의 명작 가운데 한편이라고 평가한 바 있는데, 바로 여기서 장소 유토피아의 모델이 다시 한 번 서술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문화사적인 변화의 과정에서도 다양한 유토피아의 양상들이 지속적으로 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17세기와 18세기의 절대 왕정 시대의 유토피아가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적 유토피아와 완전히 구별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유토피아의 현실적 배경은 지구 반대편, 혹은 달나라와 같은 우주의 머나먼 곳으로 이전되어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찬란한 사회상은 절대 왕정의 폭력을 벗어나고 싶은 심리적 욕구를 반영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절대주의의 서슬 푸른 권력의 칼날 앞에서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폭군 처형에 대한 의향을 감히 발설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권력에 대한 저돌적인 저항 대신에 종교적 독단 내지 편협성을 비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의 토대를 보좌하는 사회적 세력이 사제 계급이었고, 종교적 관용을 고취시키는 노력 자체가 보수주의의 사제 세력을 점차적으로 약화시키리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18세기에 이르면 모어 이후에 나타난 장소 유토피아는 패러다임에 있어서 시간 유토피아로 의미 변환을 이룹니다. 찬란한 사회적 삶은 멀리 떨어진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바로 이곳”에서 능동적으로 건립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계몽에 대한 “시민 주체Citoyen”의 의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중세에 인정받던 “정태적 완전성perfectio”의 개념은 계몽의 시대에 “역동적 완전성 perfectibilité”의 개념으로 변화되었습니다.

 

1. 모어 이후의 르네상스 유토피아: 이 장에서는 토머스 모어 이후에 나타난 몇몇 유토피아 문헌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컨대 에벌린이 설계한 미지의 섬 『불파리아』, 슈티블린의 『행복 공화국』 그리고 도니의 『이성적인 세계』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에벌린과 슈티블린은 기독교에 입각한 중농주의 사회를 설계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아류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도니의 작품은 명시적으로 사유재산제도와 결혼제도를 철폐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이성적인 세계』는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에 나타난 유토피아 구상을 선취하고 있습니다.

 

2. 라블레의 텔렘 사원의 유토피아 (1551): 텔렘 사원은 프랑스 인문주의자, 프랑스와 라블레의 대작 『가르강튀아』 제 2권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라블레가 설계한 텔렘 사원은 노예 경제에 근거하는 이상적 소규모 공동체이지만, 사원의 사람들은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네가 원하는 바대로 행하라Fay ce que vouldras”입니다. 이로써 가난, 순결 그리고 복종이라는 수사의 삶은 지양되고, 사원 사람들은 풍요로움, 자유 그리고 자유 의지를 실천하며 생활합니다. 라블레의 텔렘 사원은 노예 경제에 바탕을 둔, 르네상스의 비국가주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안드레애의 『기독교 도시 국가』(1619): 안드레애는 자신의 책에서 왕궁, 교회 그리고 대학을 비판합니다. 이러한 단체들은 질투, 탐욕, 인색함, 나태함 등과 같은 온갖 악덕의 온상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안드레애는 법정의 횡포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문제는 마치 장발장처럼, 빵을 훔쳐 먹는 평민에게 사형이라는 극형이 처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비록 종교적 관용이 용납되지 않고, 남존여비의 특징이 도사리고 있지만, 안드레애의 기독교 도시 국가는 루터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이상을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로 설계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