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9. 동학의 정신은 무엇보다도 “양천(養天)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동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천(養天)”이라고 판단합니다. 하늘을 모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늘을 돌보고 키우는 일이야말로 동학 정신의 핵심 사항이라고 여겨집니다. 박준건은 시천과 양천의 상호 관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모심은 살아계시는 것을 섬김이다. 살아계시는 것을 섬기는 것은 고정적 보존이나 현상 유지가 아니라, 키움(養)이다.” (박준건: 동학의 모심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 민족문화, 2016, 202쪽.) 양천은 나 자신의 변화와 세계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마음을 정갈하게 가꾸려는 내단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신쌍전(誠身双全)의 자세입니다. 그밖에 양천 속에는 개벽과 유사한 신생, 갱생 그리고 부활의 함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고로 세상을 변화를 갈구하는 자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마음가짐을 일차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바꾸어 말해서 유약한 아이(하늘의 아들 그리고 딸)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가르치는 것은 변화와 개벽에 대한 준비작업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기서 교화(教化) 그리고 봉양이라는 희생정신이 태동하게 됩니다. 하늘의 자식들을 키우고 먹이며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특히 여성들의 일감이 최우선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해월 최시형은 “아이를 때리지 말라,” “나무의 새순을 꺾지 말라,” “여자와 아랫사람을 무시하지 말고 받들어 모셔라.” 등과 같은 전언을 남겼습니다. “젖이란 사람의 몸에서 나는 곡식이요, 곡식이란 천지의 젖이니라.” 이러한 전언이야말로 “에코 페미니즘”과 연결되는 동학의 의미라고 여겨집니다. 오늘날 환경 여성 평화 운동을 고려할 때 진정한 개벽은 무엇보다도 –윤노빈이 추론하고, 김지하가 주장한 바 있듯이- 최시형의 양천(養天)을 실천하는 데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환경 여성 평화 운동은 무엇보다도 임을 키우고 보살피는 노력을 통해 구체적인 동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진정한 “신학theology”은 어쩌면 생태적 “여성신학thealogy”에서 만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 (두 번째 결론) 선(仙)의 정신: 동학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고조선 시대에서 이어져 온 동이족의 생활관 그리고 선인 사상에 관해 깊이 천착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선 사상에 무속(巫俗)이라는 기이한 성분이 마구 뒤섞이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연계하여 주영채 선생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그 자체 의미심장합니다. “동예의 제천 의식, 부여의 영고 등 북을 치고 춤을 춘 목적은 하느님을 모시기 위한 것이지, 무당 풍속의 목적이 아니다. 무속은 한나라가 한사군을 설치하면서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차제에 한 사상에 무속이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도교에 깊숙이 침투했는지를 학문적으로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이 동학에 이르는 한국의 사상적 궤적에 암운을 드리우게 한 무속에 관해서 세밀하게 구명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 여겨집니다. 안타까운 것은 -김상일 교수도 지적한 바 있듯이- 도올이 예컨대 동학 운동에 관한 표영삼의 입장에 집중할 뿐, 이세권의 “하날님”에 관한 시각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세권은 동학 운동과 천도교와 관련하여 집요하게 “하날님” 사상을 따르면서 손병희의 견해에 비판적인 칼날을 겨누었습니다. (다음의 문헌을 참고하라. 이세권: 동학사상 경인문화사 1987.) 그는 손병희가 천도교가 에너지로서의 기를 과도하게 중시하고, 전지전능한 인격신을 경시한다고 집요하게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11. “플레타르키아”가 아니라, “크톤아나르키아Chthonanarchia”가 중요하다.: 필자는 여기서 “크톤아나르키아Chthonanarchia”라는 조어를 떠올립니다. 이것은 지구 중심의 자치 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민본”의 개념 속에는 어떤 유형의 일방적 사고로서의 남성중심주의가 은밀히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동학의 민본 사상의 의향은 근본적으로 서양의 휴머니즘의 그것과는 다른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서양의 휴머니즘은 “시민 주체”라는 선택된 주체로서의 남성적 의향에 의해서 발전해 왔습니다. 여성적인 무엇, 영혼 그리고 성적인 무엇은 철저히 도외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휴머니즘은 산업 혁명과 연계되어 부(富)를 확장하게 하고, 야생을 파괴하며, 생태계를 교란하게 한 출발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약초를 재배하던 수많은 여성은 마녀라는 이유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동학은 김정근 교수가 지적한 대로 “각자위심(各自為心)에서 벗어나 동귀일체(同帰一体)를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김정근: 풍류 정신의 사람, 김범부의 삶을 찾아서, 선인 2014). 공동체 속에서 우리의 안녕을 도모하고, 협동하는 마음가짐을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이것이 선도이자 풍류 정신에서 촐발한 대아(大我)의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차별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성은 “민(民)”의 개념에서 배제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김용옥이 생각하는 “플레타르키아”에는 여성이 자리할 공간은 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늘, 인간 그리고 땅을 모시는 것은 여성 운동의 핵심적 관건이라는 것을 고려해 보세요. 해월은 돌보아야 할 대상을 경천(敬天), 경인(敬人) 그리고 경물(敬物)로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경물”입니다. 최시형의 경물 사상은 오늘날 노아의 후손들이 고수해야 할 에코 페미니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류세의 시대에 노아의 후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주 내지는 비상 보트에 승선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며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에코페미니즘, 창비 2020, 25쪽), 나아가 상극 원한 그리고 재앙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해당하는, 증산 강일순의 천지 공사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12. 여성은 흙이고 토양이며, 물질의 근본 (mater)이다.: 스위스의 신화학자, 바흐오펜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여신들을 떠올리면서 모든 풀과 나무에게 결실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늪을 유추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나일강의 물을 머금은 흙 말입니다. 물을 머금은 토양은 스위스 연구자의 뇌리에는 자유롭게 성생활을 누리면서 모든 열매를 생산하는 여성, 특히 창녀로 각인되었지요. 신의 존재는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도 천체와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인간 중심적 사고가 태동하였지요. 흙과 지구에 해당하는 지령(地靈, chthonische Seele)은 서양의 세계관에서 기껏해야 사악한 존재 내지는 여성의 사악함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분명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Johann Wofgang von Goethe, Faust, der erste Teil, V.460 – 461.) 근대에 이르러 마녀로 몰린 여성들이 주로 행했던 일감은 약초에 관한 지식을 섭렵하는 것이었습니다.
13.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차제에는 인내토(人乃土)의 사고를 포괄해야 한다. 사실 ‘인내천“이라는 개념은 손병희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손병희는 최시형이 생각하던 인간과 만물을 포괄하는 하늘의 개념을 오로지 인간으로 국한시키고 말았습니다. (백승종: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 들녘 2019, 85쪽.) 21세기에 해당하는 인류세에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천체도 아니고, 인간도 아닙니다. 오히려 땅, 흙 그리고 지구가 가장 절실한 물질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질(mater)은 세상의 사물을 산출해내는 모체(mother)로 이해되었지요. 약초를 재배하고 질병을 치유하며 토양을 가꾸는 주체가 바로 여성입니다. 지구는 여성들이 약초를 키우는 토양입니다. 토본주의의 가치는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정립되어야 합니다. 고대와 중세에 중요한 것이 하늘, 상부, 점성술 그리고 신학이었다면, 르네상스 이후에 중시된 것은 한마디로 인간, 지상, 연금술 그리고 인간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류세를 맞이하여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지구, 하부, 지질학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벽은 오늘날 무작정 긍정적 의미의 종말론으로 해석될 수만은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살림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기후 위기의 상황에서 평화, 페미니즘 그리고 생태 공동체야 말로 인간 삶의 파국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대안이 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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