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박설호: (2) 동학 그리고 에코 페미니즘

필자 (匹子) 2024. 9. 26. 11:09

(앞에서 계속됩니다.)

 

5. “플레타르키아” versus “플레타나르키아”: 김용옥은 민본(民本)이라는 개념을 분명하게 규정하기 위해서 “플레타르키아Pletharchia”라는 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데모스’는 보다 광범위한, 계층적 제한이 없는 ‘다중(多衆)’을 가리키며, ‘아르케’는 ‘지배’의 개념보다는 ‘본원’의 의미가 내재한다.”는 것입니다. (동경대전, I, 272). 이 단어는 “민중”, “무리”, “다수의 인간”에 해당하는 “πλήθος”에다 국가의 기능을 강조하는 “archia”를 결합한 조어입니다. 그러나 아르케는 지금까지 “본원”에 비해 “지배”라는 의미로 더욱더 많이 활용되었음을 도올은 좌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후자, “아르키아”의 경우 서양에서 민주주의를 결성하기 위한 주체의 인위성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서양에서 나타난, 다수의 힘을 강조하는 작위적인 국가라는 특징을 지닌다는 점에서 자발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운동으로서의 무이이화(無為而化)와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굳이 이 용어를 고수하고자 한다면, “플레타르키아”가 아니라, “플레타나르키아”를 사용하는 게 더욱 적합할 것입니다. 왜냐면 동학은 “다수의 인간”의 “지배archia”가 아니라, 자생, 자치 그리고 자활을 중시하는 “비-지배anarchia”, 다시 말해서 아나키즘 공동체 정신과 더욱 밀접하게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6. 수운 최제우가 받아들인 천서(天書)는 어떠한 책인가?: 김용옥은 최제우 연구의 세부 사항에서 놀랍고도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령 1855년 9월에 최제우는 어느 중으로부터 기이하게 이를 데 없는 천서(天書)를 받았는데, 김용옥은 이 책이 예수회 교단에 소속된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동경대전 II, 349쪽). 그런데 이러한 추론은 주영채에 의하면 한마디로 거짓이라고 합니다. 당시에 수운이 울산 여시 바윗골에서 받은 책은 다름 아니라 대종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천부경(天符経)”이라고 합니다. 필자는 이에 관해서 솔직히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다음의 사항은 분명합니다. 즉 한국인 고유의 한 사상은 세종대왕까지 유지되었으나,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명나라에 아부하기 위해서 고기(古記)를 불태워 없앰으로써 상당 부분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선 사상은 조선시대에 많은 부분 사장되었으며, 무속에 의해서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요약하건대 김용옥의 『동경대전 1, 2』은 내용과 의향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참신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 근원을 한국의 선인 사상이 아니라, 맹자의 민본(民本) 그리고 기독교 사상에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차라리 유불선이라는 동양 사상에서 어떻게 도교와 무속이라는 특징이 덧칠되었는지 하는 문제를 연구했더라면, 더 좋았으리라고 여겨집니다.

 

7. 김용옥은 개벽의 능동적 특성을 문헌학 연구로 증명해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올의 동학 연구는 한 가지 놀라운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개벽과 수신정기에 관한 놀라운 지적입니다. 동학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운 최제우가 개벽을 깊이 추구했다는 사실입니다. 개벽은 조만간 도래하게 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의 열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개벽은 개화와는 정반대되는 사고입니다. 개화가 지식인 중심의 서구화를 지향하는 반면에, 개벽은 민중 중심의 새로운 세상을 갈구하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은 저절로 열리는 게 아닙니다. 운세에 의해서 새로운 세상이 저절로 도래한다는 사고는 김일부의 정역 그리고 정감록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동학은 소극적 구원론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수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정지창: 동학과 개벽 운동, 한국 생명 평화사상의 뿌리를 찾아서 창 2021, 32쪽 이하). 여기서 말하는 자기 수련은 내단(内丹)을 추구하는 풍류도와 신도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현묘한 선도(仙道)와 직결되는 능동적인 자세입니다.

 

김용옥은 개벽을 갈구하는 인민의 강하고 능동적인 의지를 동경대전의 판본 연구에서 발견해내고 있습니다. 가령 동경대전은 원래 “수심정기(修心正気)”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김용옥에 의하면 나중의 판본에 “수심정기(守心正気)”라고 바뀌었다고 합니다. 능동적으로 마음을 수련하고 기를 바로 세우는 노력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수동적으로 마음을 지키고 기를 바로 세우는 노력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적 정황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여기서 김용옥은 문헌의 고증을 통해서 개벽에 대한 인민의 역동적인 의지를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8. 말과 글보다 중요한 것은 행위와 실천이다: 김용옥은 『동경대전』에서 너무나 문헌학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최제우의 문헌만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어째서 김용옥은 문헌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 동학 운동을 비밀리에 실천하면서 이어나간 최시형의 실천적 노력 그리고 녹두장군 전봉준의 저항 운동 그리고 이들의 가치는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동학에 관한 논의가 오로지 문헌에서 시작되어 문헌으로 끝난다면, 글과는 무관한 인민의 삶, 즉 여성, 노예 그리고 장사꾼들의 삶과 역사는 무작정 무시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책보다 중요한 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복음서가 아니라,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직접적으로 전해지듯이- 삶에서의 바른 행동과 “실천”이 아닐까요?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