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움을 실천하는 일은 과거에 대한 분명한 평가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나쁜 사람을 일찍 데리고 가지 않는 법이다. 나치 전범 에리히 프리프케는 100살까지 살다가 2013년 세상을 떠났다. 인간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수에 대해 진정으로 참회하고, 피해자에게 뼈를 깎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을 때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에리히 프리프케는 2274건의 범죄를 저질러 1996년에서 이듬해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법관들로 인하여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런 우라질, 다수의 법관들은 부패했으며, 나치에 대한 동정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전 세계 사람들은 이러한 재판이 무효라고 외치면서 항의에 항의를 거듭하였다.
문제는 에리히 프리프케가 단 한 번도 사죄한 바 없다는 데 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언제나 정당했다고 당당히 밝힌 바 있다. 이것이 문제다.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않으려는 뻔뻔함과 오만함 - 그것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어쩌면 죄를 용서하고 벌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 아닐지 모른다.
이탈리아에서 종신형을 살던 나치 전범이 끝내 사죄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자 장례식과 주검 매장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바티칸 교회는 가톨릭 신자인 전범의 장례식 거행을 이례적으로 금지했고, 그가 50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했으며 묻힐 장소로 희망한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독일·이탈리아 도시들도 앞다퉈 주검 매장을 거부했다.
16일 <비비시>(BBC)는 나치 친위대 장교로서 1944년 14~75살의 이탈리아인 335명을 처형한 ‘아르데아티네 동굴 학살’에 가담한 에리히 프리프케가 11일 100살로 숨진 뒤 장례식과 주검 매장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15일 극우·반유대주의 성향의 가톨릭 분파와 나치 추종자들이 로마 교외 지역에서 프리프케의 장례식을 시도했으나, 반나치 시위대 500여명이 반발해 예식이 중단됐다.
네오 나치들이 1995년에 내세운 슬로건이다. 네오나치들은 프리프케를 영웅으로 간주하고 있다.
독일 태생인 프리프케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나치 장교로 복무하던 중 레지스탕스의 공격으로 나치 병사 33명이 숨지자 나치 한 명을 살해한 데 대해 10배로 보복하라는 상부 명령에 따라 이탈리아 공산당원 등 330명의 처형 명단을 작성했고, 이들을 총살했다. 그는 적어도 2명을 직접 쏴 죽였으며, 처형 명단 작성에서 실수를 저질러 335명을 끌고 간 탓에 5명의 억울한 희생자를 추가했다. 그는 나치 패망 이후 아르헨티나로 도피한 뒤 50년 가까이 지역 유지로 행세하며 평온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미국 <에이비시>(ABC) 뉴스보도팀이 1994년 그의 행적을 추적해 성사시킨 인터뷰에서 프리프케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자아냈다. 결국 프리프케는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로 송환돼 종신형을 받았다. 그는 희생자들을 “이탈리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고, “상부 명령을 따랐을 뿐”이란 뻔뻔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는 선고 당시 85살이란 고령을 이유로 가택연금으로 상대적으로 편안한 수감생활을 했으며, 단순 노쇠로 숨졌다.
프리프케의 장례식 논란이 자칫 나치 추종자들을 자극할 것을 우려한 독일은 그를 ‘익명 묘지’에 매장하는 것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데페아>(DPA) 통신이 16일 보도했다. 프리프케의 고향인 헤니히스도르프가 있는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내무장관은 언론에 “프리프케의 묘소가 네오나치들을 끌어모으는 곳이 되지 않도록 해결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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